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3년 주보

거룩히 지극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2023년 6월 11일(가해)

모든 2 2023. 6. 17. 12:43

 

대동성당(대전동부지구)

본당설립 : 1966.9.19/  주보 성인 : 루르드의 성모

 

 

+ 요한 복음 6,51-58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질실로 질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말씀의 향기>

 

성체의 삶은 다른 이에게 먹힐 밥이 되는 것이다 -정성용 세례자요한 강경주임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말씀을 듣고 병자들의 치유를 원했던 군중에게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신명기의 말씀을 역설적으로 확인시켜 주십니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은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내야만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하느님이 내려 주시는 만나를 먹고 므리바의 샘물을 마신 야곱의 후손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믿음을 키웠습니다.

 

  부활 제2주간의 독서에서 성 가우덴시우스 주교는 말합니다.

  “빵은 많은 밀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밀알은 바수어져 가루가 되고 가루는 물로 반죽된 다음 불로 구워져 빵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피인 포도주는 많은 포도를 모아서 십자가라는 포도 압축기로 만드신 것입니다.”

  다른 이에게 먹히는 생명의 빵이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성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중국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일행 14명은 40여 일의 항해 끝에 금강의 강경 땅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그들 중 4명은 한국 교회의 자랑스러운 순교 성인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다블뤼 주교님은 20여 년의 고달픈 여정을 마치고 4명의 동료들과 함께 갈매못에서 순교하시고 서짓골에 묻히셨습니다.

 

  뜻하지 않게 일본 나가사키로 유해가 옮겨지는 과정에서 다블뤼 주교님은 조선에 첫발을 디뎠던 강경에 유해의 모습으로 다시 찾아오셨고(1882년 3월 23일), 이곳에서 블랑 주교님의 유해 확인과 봉인 절차를 밟으신 후 나가사키로 옮겨졌습니다.

  그래서인지 강경성당 마당에 전시되어 있는 「탄생」 영화 제작에 쓰였던 라파엘호가 새롭게 느껴졌고, 우리 신앙 선조들이 살았던 성체의 삶을 되새겨 봅니다.

 

 

아직도, 여전히 또한 앞으로도

시노달리타스(3)

 

시노달리타스가 꿈구는 '함께'의 모습

 

  시노달리타스는 하느님의 백성이 ‘함께 걷는 여정’으로 여정을 떠나기에 앞서 먼저 ‘함께’하는 데에 우선적 가치와 순위를 부여한다. 왜냐하면 시노달리타스가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에서 샘솟아 친교로 생명을 얻고 친교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노달리타스의 ‘함께’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를 담아내고 드러낸다. 실제로 ‘함께’한다는 것은 그저 단순한 의견의 종합과 협의의 수준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 여정을 걷는 동반자들의 만남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우선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며, 신자들을 만나는 것이고,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복음의 기쁨』 8항에 따르면, 이러한 만남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그 시작으로 한다. “풍요로운 우정으로 꽃피우는 하느님 사랑과 만남으로써, 또는 그 사랑과 새롭게 만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고립감과 자아도취에서 벗어나게” 되어 다른 이들에게 그리고 세상을 향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도미니코 마로네(D. Marrone)는 루카복음이 잃어 버린 예수님을 찾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마리아와 요셉의 발걸음을 ‘Synodìa’(시노디아: 여정의 공동 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 근거하여, 시노달리타스를 사람들 안에 그리고 세상 안에 계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예수님을 찾아서 함께 나가는 발걸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시노달리타스가 말하는 ‘함께’는 하느님의 사랑에 마음을 열어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른 이들과 함께 하고, 그들을 거부감 없이 여정을 함께 걷는 길동무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며, 이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형제적 친교를 통해 이루어진다. 기능과 역할만을 강조하며 부속품처럼 여기는 합병이나 획일화를 추구하며 무조건적으로 강요되는 물리적 형태의 병합이 결코 아니다. 미켈레 줄리오 마샤렐리(M. G. Masciarelli)에 따르면 시노달리타스의 ‘함께’는 ‘가까이 다가감’과 ‘거리를 유지함’을 모두 포함하는 세련되고 정교한 개념이다. ‘함께’ 한다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 누구도 돕지 못하고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며 또한 이 ‘가까이 다가감’은 숨 막히게 하고 질식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편안하게 숨을 쉬면서 창의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올바른 공간을 제공하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함께’는 ‘함께’해야 할 대상을 바로 보게 하고 바로 알게 한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어 다른 이를 배척하지 않고 자신과 똑같은 하느님 자녀의 품위와 존엄성을 지닌 인격체로 받아들이며 공감대를 형성하여 어우러지게 한다. 그 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익명(匿名)과 무명(無名)으로 남지 않고 본래의 자기 자신을 완성할 수 있다.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한산주임-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47. 미사 해설 - 성찬 전례(11) : 감사 기도에 대해서(5)

 

2) 성찬 제정과 축성문(2)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성찬 제정과 축성문의 특징은 최후의 만찬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동작과 행위를 고스란히 재현하는데 있습니다. 실제로 로마 미사 경본, 전례 예규에서도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102. 아래의 기도문에서 주님의 말씀은 마디마디 또렷하게 발음한다.” 그만큼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이 예식을 거행하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와 시간을 담아내는 것이 이 부분의 핵심입니다. 성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기에 다른 말로 대체될 수 없고, 그 어떤 연주도 이 부분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보편교회는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사제가 감사 기도를 바치는 동안에는 다른 기도나 노래를 하거나 오르간이나 다른 악기를 연주하지 말아야 한다(구원의 성사, 53항).

  따라서 사제는 미사 경본에서 제시한 대로 침착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기도문과 행동에 집중하고, 동시에 교우들도 그리스도의 현존을 의식하며 이 예식에 참여해야 합 니다. 왜냐하면 이 예식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시간과 장소로 육화 되어 오시는 은총의 시간이고, 최후의 만찬에서 행해졌던 거룩한 예식이며, 신비의 영역이 완성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본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경우, 중요한 때임을 알 리기 위해 직접적인 상징으로 종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이 종소리는 교우들에게 지금이 매우 중요한 때임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보편교회에서 제시하고 있는 종에 대한 지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필요에 따라 봉사자는 축성 바로 전에 종소리로 신자들에게 신호를 한다. 마찬가지로 성체와 성작을 높이 들어 보일 때 그 지역 관습에 따라 종을 칠 수 있다. 향을 쓸 경우, 축성 다음 성체와 성작을 교우 들에게 높이 들어 보일 때 봉사자는 성체와 성작을 향하여 분향한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150항).

 

  이에 따르면 “성령청원:축성기원”이 이루어지는 때 (감사 기도 2양식을 기준으로 사제가 “간구하오니”라고 말하며 두 손을 제물 위로 덮을 때), 그리고 성체와 성혈이 담긴 성작을 들어 높일 때 종을 친다고 설명합니다. 몇몇 공동체에서 ‘종은 언제 치는 것입니까?’라는 질문과 ‘종을 치는 횟수’에 대해서 질문을 하십니다. 보편교회에서 제시한 부분을 토대로 답변드리자면, 종을 치는 횟수에 대해서는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보편 교회에서 제 시한 것을 토대로 유추한다면 성령 청원 때와 거양성체, 거양성혈 때 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지역 관습” 또는 공동 체마다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의해야 하는 사실은 종을 치는 형식보단 종을 치는 순간이 미사 중 가장 거룩한 순간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미사 중 종소리가 울리는 것은 우리가 마음을 모아야 할 때임을 기억하고 바라보는 것이 전례의 정신에는 더욱 합당한 것 아니겠 습니까? 다음 시간에도 설명이 계속됩니다.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 사목국 차장-

 

 

천주교대전교구 성령쇄신봉사회

 

<5> 성장묵상회

 

  성령 안의 성장묵상회는 성령묵상회 이수자를 대상으로 이들의 신앙성숙과 영적성장을 위해 실시 하는 심화과정으로서, 성령묵상회의 후속 프로그램 성격으로 실시합니다. 성령묵상회가 회개를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세례 때 받은 내 안의 성령께서 활동하시도록 깨우치는 데 초점을 둔다면, 성장묵상회는 신앙생활, 즉 기도생활, 성사생활, 말씀생활을 적극적으로 영위함으 로써 개인의 영적성장을 키워나가는 데 초점을 두고 실시합니다. 성장묵상회는 이러한 영적성장을 위한 신앙생활을 성령 안의 생활에 더 맛 들이고 성령 안의 삶을 성숙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과거에는 아래와 같이 총 8주간에 걸쳐 성령세미나로 운영되었으나, 현재는 상황에 따라 5주간 혹은 2~3일의 성령 안의 성장묵상회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2000년 이후 질적 향상을 위해 다양한 형태로 변화를 모색하며 전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1박2일 침묵 묵상회로 진행되었습니다.

 

  많은 신자분이 피정의 시간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성령과 함께 하는 성장묵상회는 ‘성령 피정’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김기범 시몬 신부 성령쇄신봉사회 전담-

 

 

 

<이충무의 숨은 행복 찾기(58)>

 

일주일을 다른 사람으로 산다면 누구의 삶을?

 

  출퇴근길에 주로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듣습니다. 음악과 함께 알찬 내용의 정보나 이웃들이 살아가는 정겨운 이야기를 듣는 일은 한결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종종 라디오를 통해 예상치도 못했던 선물을 받게 됩니다. 며칠 전 출근길에서도 한 청취자의 사연을 통해 기분 좋은 ‘깨달음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특정한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연관된 사연을 받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날의 주제는 “만약 일주일만 다른 사람으로 살아 본다면 누구의 삶을 살고 싶은가?”였습니다.

 

  여러 사연이 소개되었는데 그중에 한 아이 엄마가 어린 아들에게 그 질문을 해 봤더니 뜻밖의 답이 돌아 왔다는 이야기가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아이가 만화 영화의 주인공이나 게임 속에 등장하는 멋진 캐릭터의 삶을 살고 싶어 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아이는 엉뚱하게도 ‘외할머니’라고 대답했다고 합니 다.

 

  그리고 이유를 묻자 아이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늘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해주시는 할머니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실까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맨날 뭐든 다 좋아하신대... 그래서 할머니가 진짜 좋아하시는 음식이 뭘까 꼭 알아보고 싶어서 일주일만 할머니가 되어 살아 볼 거야.”

 

  누가 어린 아이들을 철없다고 했을까요? 할머니의 사랑이 느껴져 할머니께 뭔가 해드리고 싶어 일주일만 할머니로 살아 보고 싶다는 이 대답보다 더 찡한 답이 또 어디 있을까요?

 

  사랑은 매우 단순합니다. 받아 보니 좋아 나도 주고 싶은 것, 사랑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받아서 좋으니 계속 더 많이 받으려 하고, 주면서 아까우니 준 것 이상으로 받기를 바라는 건 누가 봐도 사랑이 아닙니다.

 

  돈 한 푼 안 드는 상상을 하면서 돈으로도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꿈꾸는 사람. 그런 사람은 일주일이 아니라 일 년 내내 수시로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 보는 기쁨의 신비 안에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건양대교수-

 

 

 

<1분 교리>

 

Q-1) 성체성사란 무엇인가요?

A)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은총이 가장 큰 성사로서 천주교회의 제자이며, 우리 영혼의 양식이 되는 성사입니다.

 

Q-2) 영성체 준비는 어떻게 하나요?

A) 세례성사를 받은 신자만 성체를 영할 수 있으며, 고해성사를 받아 대죄가 없는 상태여야 합니다. 

또한 영성체를 영하기 전 한 시간 전부터는 음식을 먹지 않도록 하는데, 이를 공복재(空腹齋) 혹은 공심제(空心齋)라고 합니다.

 

Q-3) 제병과 제주는 언제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되나요?

A) 성찬례 때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며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하신 말씀을 반복하는 순간에 빵과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됩니다.

 

Q-4) 성체는 어떻게 받아 모시나요?

A) 왼손을 위로하여 성체를 받아 오른손으로 모시면 됩니다. 모시는 방법에는 성체와 성혈을 함께 모시는 양형(兩形) 영성체와 성체만 받아 모시는 단형(單形) 영성체가 있습니다.

 

 

형광등과 LED

 

  찬미 예수님!

  갈수록 더워지는 시기입니다. 특히 올여름은 더위가 심하고 비가 오는 날이 많다고 하나 아마도 고온다습한 기후일 거 같은데요. 오늘은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형광등과 LED조명의 차이점을 알아보고 배출 방법에 대하여 적어볼까 합니다.

 

  LED 조명은 발광 다이모드를 이용한 조명 기구입니다. 형광등은 빛을 내기 위해서 열을 발생시키는 반면, LDE 조명은 전기가 직접 반도체를 빛으로 전환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전력량 절감과 조명밝기의 우수성으로 최근 LED을 많이 사용하시는데요. 실제로 LED는 형광등의 50%, 백열등의 20%의 전력만 소비해 빛을 낼 수 있습니다. 전력 소모가 적으므로 전기소비량도 최대 50& 절감할 수 있고, LED조명은 수명도 백열전구의 50% 절감할 수 있고, LED 조명은 수명도 백열전구의 50배, 형광등의 6배 이상 갑니다. LED 조명의 평균 수명은 3만-5만 시간입니다.

 

  조명 기구의 배출 방법을 살펴보면 형광등은 우리가 오래도록 사용한 제품이므로 지금도 잘 배출하고 있지만 다 사용한 형광등은 아파트 단지의 수거함이나 주민 센터가 각 구역별로 마련한 배출장소에 버리시면 됩니다. 단 형광등이 깨지면 그 속에 있는 해로운 수온이 공중에 날릴 수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서 배출해야 하며 형광등이 깨진 경우 신문지에 싸서 일반 쓰레기봉투에 버리셔야 합니다.

 

  LED는 내부의 반도체 칩을 통해 작동하기 때문에 폴리스틱뿐만 아니라 알루미늄, 구리, 은, 등 재활용 가치가 높은 유가금속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직 회수 방법이 없어서 재활용하지 못하고 일반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일반 쓰레기 봉투에 배출하여야 합니다. 이 역시 깨질 수 있으므로 신문지에 잘 싸서 배출하여야 합니다. 수거하는 것은 사람이 하므로 깨진 유리가 손을 다칠 수 있습니다.

 

-글, 사회 복음화 분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