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3년 주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2023년 6월 4일(가해)

모든 2 2023. 6. 5. 13:00

 

괴정동성당(대전서부지구)

본당설립 : 1977.2.7/주보 성인 :성 베드로

 

 

+요한 복음 3,16-18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은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씀의 향기>

 

우리의 삶은 오늘도 '신비롭다'  - 김경식 미카엘 당진 주임

 

  오늘은 ‘지극히 거룩 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교회에서 많이 듣게 되는 말 중의 하나가 ‘신비’가 아닐까 합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관해서도 ‘신비’라는 단어가 함께합니다. ‘신비’는 그저 모르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체험하거나 깨달은 것이지만 정확히 이해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말합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를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관해서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아우구스티노가 삼위일체론을 쓰다가 너무도 막막해서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는데, 어떤 아이가 모래 사장에 작은 구덩이를 파고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퍼서 그 구덩이에 붓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노가 아이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묻자, “이 구덩이에 바닷물을 다 옮기려고요!”라고 대답했고, 이에 아우구스티노가 “그건 되지도 않을 일”이라고 하자 아이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주교님께서 고민하시는 삼위일체 신비는 이보다 더 어렵 지요!”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한 많은 설명들이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삼위일체의 신비를 명확하게 설명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신비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신비는 문고리 잡는 것만큼이나 분명하고 확실한 것이다.” 즉, 신비는 인간의 언어로 온전히 표현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 ‘신비’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 요한 4,16). 그래서 삼위일체의 신비는 ‘사랑의 신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의 온갖 것들을 사람이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시어 사도들이 구원의 신비를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신 일이었습니다.

 

  옛사람들에게 하느님은 저 높이 계시는 분이셨고 감히 고개를 들어 쳐다볼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되어 우리 곁에 오신 예수님은 오히려 섬기러 왔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목숨까지 바치셨습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살아계시면서 우리가 늘 하느님과 함께 하도록 하십니다. 하느님은 이제 더 이상 ‘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이렇듯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는 것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 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 요한 4,11).

 

 

공동의 집

 

궁동본당 활동보고

"누이이며, 어머니인 지구 생태계가 울부짖고 있습니다."(찬미받으소서 2항)

 

  지구는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다른 피조물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그들을 지키고 보호할 소임을 받은 관리인입니다. 따라서 우리 또한 지구 생태계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지구의 주인인 양 무절제하게 개발하고, 생산하고, 소비하고, 버리는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연을 거슬러 저지른 죄를 뉘우치고 속죄하는 생태적 회개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이에 본당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바탕으로 작지만 큰 발걸음을 내딛고자 노력 중입니다.

 

  본당에서는 교구장 주교님과 주임 신부님의 사목 지표에 따라 생태적 회개를 위해 <찬미받으소서 회칙 통독반>을 운영하고 있으며, 생태적 감수성과 공감능력향상을 위해 전 신자를 대상으로 월 1회 기후위기 관련 동영상을 상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성교육의 실천을 위해 주간 생태환경 실천 사항을 주보에 공지 해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부터는 본당 내에서 일회용 컵 및 종이타월(화장실) 사용을 금지하고 텀블러, 손수건, 장바구니를 지참하고 다니는 개인별 필수 실천 운동과 불필요한 1회용품이나 종이 영수증 거부하기, 좋은 물건을 구매하고 오래 사용하기, 분리수거 잘하고 물건 재활용하기, 적정량 만 요리해서 먹고 음식물 쓰레기 만들지 않기와 같은 덜 버리기 운동(Less waste)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환경을 보호하고 자원의 선순환을 위해 우유팩과 아이스팩을 모아서 우유팩은 화장지로 교환하여 활용하고, 아이스팩은 재사용을 위해 기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2030 전기에너지 자립, 2040 탄소중립 실현 목표를 위 해 본당 내 햇빛발전소 설치를 추진 중이며, 현재 불휘 햇빛발전협동조합과 함께 사업성 검토를 진행 중입니 다. 햇빛발전소 설치와 병행하여 본당 건물에 대한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검토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습니다. 작지만 소중한 우리의 실천이 이 세상을 바꾸어 나갈 수 있으리라 확 신합니다. 지금보다 에너지를 아끼고 검소하게 사는 것은 분명 힘들고 불편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의 결과가 우리와 다음 세대의 행복한 삶을 보장한다면 그 불편은 분명 거룩한 불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 다. 교구 내 모든 공동체의 연대와 공유로 모두 함께 거룩한 불편에 동참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이 세상의 피조물들에 주인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 다.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입니다”(찬미받으소서 89항).

 

-김창환 필립보 궁동본당 사회복음화분과-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46. 미사 해설 - 성찬 전례(10) : 감사기도에 대해서(4)

 

2) 성찬 제정과 축성문 (1)


102. 아래의 기도문에서 주님의 말씀은
        마디마다 또렷하게 발음한다.

스스로 원하신 수난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는
사제는 제대 위에서 빵을 조금 들어 올리고 계속한다.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사제는 허리를 조금 굽힌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사제는 축성된 빵을 받들어 교우들에게 보이고
성반에 내려놓은 다음, 깊은 절을 한다.

 

  성찬 전례 중 감사기도는, 성령청원기도에 이어 성찬 제정과 축성문으로 이어집니다. 이 기도문은 공동체가 제물로 바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성변화를 이루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성찬 제정과 축성문은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행하신 말씀과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로 구성된 이 기도문은 형식적인 봉헌, 단순한 기억, 기념의 차원을 뛰어넘어 거룩한 신비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미사는 그 자체 로서 매우 거룩한 시간이지만, 특별히 성변화가 이루어지는 감사기도, 특히 이 성찬 제정과 축성문은 성변화의 기적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가오신 그리 스도의 현존을 만나게 하기에 소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마르 14,22-24).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행하셨던 말씀과 동작을 통하여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과 함께 다시 봉헌 됩니다. 최후의 만찬 때의 그리스도의 시간과 기도는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기념됩니다. 곧 그리스도의 현존이 이 성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선포되고 이 선포는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주님을 따라 걷는 신앙인들에게 원동력을 제공합니다. 정리하자면, 이 예식은 단순히 재현이나 예식의 형태가 아닌 성변화라는 거대한 신비가 사제, 곧 축성된 봉사자를 통해 우리에게 선포됩니다. 그래서 보편교회는 이 부분에서 사제가 성찬 제정과 축성문을 마디마디 또렷하게 발음하여 미사전례에 참석하는 이들에게 분명하게 전달하고, 거룩한 시간임을 인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나아가 교우들은 이 기도문이 드러내 주는 신비에 집중해야 합니다. 다음 시간에도 설명이 계속됩니다.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 사목국 차장-

 

 

천주교대전교구 성령쇄신봉사회

 

<4> 성령묵상회

 

  성령묵상회는 성령의 능력 안에 사는 삶을 통해 참된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새롭고 충만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도와주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통해 묵상회 참가자들이 그리스도와 인격적 관계를 맺도록 돕고, 그 관계를 더욱 새롭고 깊게 가지도록 도움을 줍니다.

 

  묵상회 참가자들이 성령의 활동을 받아들여 그들을 통해 일하시는 성령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보다 충만하게 그리스도와 결합하도록 도와주며, 삶을 통해 영적성장과 선교 사명을 이루도록 도와줍니다. 성령묵상회의 구체적인 운영방식은 소개강의를 포함하여 주 1회씩 모두 8주간 실시하는 것이 원칙이나, 내용을 축약하여 1박 2일 및 2박 3일 또는 5주간의 과정으로 단기간에 실시하고 있습니다. 교육 내용은 소개강의를 시작으로, 제1주 하느님의 사랑, 제2주 구원자이신 예수, 제3주 새 생활의 원천이신 성령, 제4주 하느님의 선물을 받으려면(회개), 제5주 성령 충만을 위한 안수 기도, 제6주 성장의 비결, 제7주 그리스도 안의 일치라는 주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성령묵상회는 기간이나 장소(교구, 본당), 또는 수강대상에 따라 교구단기 성령묵상회, 교구상설 성령세미나, 본당 성령묵상회, 젊은이 성령묵상회, 청소년 성령묵상회, 시니어 성령묵상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분류할 수 있으나, 그 목적이나 프로그램 내용은 차이가 없습니다. 과거에는 성령세미나로 불렸으나 2005년부터는 성령묵상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김기범 시몬 신부 성령쇄신봉사회 전담-

 

 

 

<이충무의 숨은 행복 찾기(57)>

 

어른의 품격

 

  수업에 지각한 학생이 교실 뒷문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섭니다. 숨은 가쁘고 땀이 뻘뻘 흐르는 걸 보니 분명 초초한 마음으로 정신없이 달려왔나 봅니다.

 

  그 학생을 보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거 봐, 거 봐, 내가 뭐랬어? 일찍 일찍 서두르라고 했지? 게으르면 몸이 고생하는 거야. 다음에도 이러면 그땐 혼날 줄 알아?”

 

  그런데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한 선생님은 전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다음엔 늦지 않도록 해. 하지만 혹시 또 이런 경우가 생기면 그땐 절대로 서두르지 마라. 그러다 넘어지면 큰일난다. 공부보다 건강이 우선이야.”

 

  두 분 모두 지각이 습관이 될까봐 염려하시는 말씀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르게 들릴 겁니다. 한쪽은 질책으로, 또 다른 한쪽은 배려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학생의 다음번 행동의 변화입니다. 질책과 배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학생으로 하여금 지각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힘이 있을까요?

 

  얼마 전 미술관에 전시 중이던 조소 전시 작품이 유치원생에 의해 파손된 일이 뉴스에 올라왔습니다. 호기심에 잠깐 만져 본 건데 값비싼 작품 하나가 그만 부서지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뉴스에 보도된 것은 유명작품의 파손 때문이 아니라, 파손된 작품에 대한 조각가의 반응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변상은커녕 오히려 부모와 아이가 얼마나 놀랐을지 걱정이 된다며, 작품이 파손된 것에 대해 아이에게 이해는 시켜 주시되 혼내지는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해왔습니다.

 

  그러면서 그 작품이 나타내고자 했던 것이 ‘꿈을 가지고 헤쳐 나가는 씨앗의 성장’이었다며 아이들이 바로 그 씨앗이므로 아이가 이 일로 어떤 상처도 입지 않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어느 영화의 명대사가 떠오릅니다. 그 대사를 인용해 저도 이렇게 마무리 해 보고 싶습니다. “품격이 어른을 만든다!”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 건양대교수-

 

 

<1분 교리>

 

Q-1) '삼위일체'란 무엇인가요?

A) 삼위일체란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으로 계신 하느님은 한 분의 지체이시다."라는 표현입니다. 즉, "본성으로 보면 한 분이시지만 역사 안에서 인간에게 드러나시는 방식에 있어서는 삼위로 나타나신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는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인간 역사의 시간 안에 친밀한 표현을 삼위를 통해 나타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Q-2) 삼위일체는 구원의 역사 안에서 어떻게 활동하시나요?

A) 삼위일체 안에서 제2의 하느님의 존재는 모든 것의 시작이며 근원이시고 제2위의 본질인 성자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신 독생자이시며 제3위의 특징인 성령은 성부에게서 성자를 통하여 '발출되신 분'으로 교회 안에서 그 활동이 드러나십니다.

 

  이런 관계로 삼위는 각기 구원의 역사 안에서 고유하고 합당한 활동을 가지며, 특히 인간과 고유한 관계를 맺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