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성당(홍성지구) 본당설립 : 2021.01.12
주보 성인 :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
+ 요한 복음 14,15-21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께서는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말씀의 향기>
사도들이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사도 8,17) -오남한 루카 홍주성지 전담
피부가 트면 무엇을 바르죠? 로션. 허면 우리네 마음이, 영이 트면 무엇을 발라야 하겠습니 까? 성령을 바르십시오. 성령을 청하란 얘기입니 다. 성령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고, 만질 수 없는 것을 느끼게 하며,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합 니다. 영원히 살도록 하늘을 꿈꾸게 하고, 당장 죽을 것 같은 것을 살게 하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입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이제 당신의 제자들을 세상에 남겨 두고 떠나려 하니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이제 스승이 떠나면 제자들은 오합지졸이 될 것이고, 교회는 풍비박산이 날 것입니다. 당신의 업적도 말씀도 이제 끝장이 날 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도 없고 확신도 없는 제자들에게 보호자이신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 다른 협조자를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라고.
성령은 그 자체로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의 능력이 시기에 약한 제자들을 강하게 해주셨으며 또 어리석은 그들을 지혜롭게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성령은 제자들이 어떻게 선교하며, 교회를 성장시킬 것인지를 직접 도와주셨습니다. 사실 성령과 함께라면 안 되는 것이 없고 또 못할 일도 없습니다. 믿는 이들은 그래서 성령의 은혜 안에서 살아야 합 니다. 늘상 성령을 청해야 하며 희망해야 합니다.
믿는 이들 안에 성령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는 실로 기름 없는 자동차요, 알맹이 없는 빈 깡통과도 같이 생기 없고 무기력한 사람이 됩니다.
성령을 받으면 제자들처럼 부족한 사람들도 위대한 인생으로 빛나게 됩니다. 아무리 무지하고 천한 사람도 하느님의 능력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그것은 실로 하느님의 선물이면서 동시에 위대한 사랑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그릇이 깨끗해야 은혜의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가 필요하고(사도 2,38), 또한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요한 20,23). 더러운 내 몸이 썩을 것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는 하느님께서 아무리 소나기 같은 은혜를 내려 주신다 해도 담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네 마음의 문의 손잡이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기에, 내 손으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혀야만 진리의 영께서 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는 달라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령을 받고 새사람이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가득 찬 사람, 확신에 힘이 넘치는 사람,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를 보호하고 협력 하러 오실 분이기에 보호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어서 불러주기를 기다리십니다. 마치 119 대원들처럼 주야 24 시간 대기하며 그렇게 기다리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성령께 얼마나 기도하고, 얼마나 매달리고 얼마나 청하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로 성령을 청합시다. 아멘.
아직도 여전히 또한 앞으로도
시노달리타스(1)
아직도 시노달리타스?
시노달리타스(sinodalitas)라는 생소한 어휘가 교회 안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지 벌써 5년째이다. 국제 신학위원회의 『La sinodalità nella vita e nella missione della Chiesa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시노달리타스)』 가 한국어로 번역된 2019년 이래로 지금까지 마치 습관이 되어버린 것처럼 수없이 반복되어 말하고 있는 시노달리타스이다. 더구나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하 는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를 위한 지역교회 차원에서 진행된 교구 시노드를 경험하며, 교구를 막론하고 한국천주교회 전체가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운영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라파엘 루시아니(R. Luciani)에 따르면 시노드는 시노달리타스를 가장 명확하게 경험할 수 있는 장(場) 이다. 따라서 시노드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단순하게 시노드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여 최종 결의안과 문헌 작성에 기여했다는 것이 아니라 시노드 안에서 상호 경청과 공동 식별, 그리고 공동 결정의 과정 속에서 시노달리타스를 경험하며 체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현실도 과연 그러한가? 교구 시노드를 통해 마땅히 배우고 체득했어야 하는 시노달리타스는 실제 우리 교회 안에서 어느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가?
이러한 유형의 질문과 성찰은 왜 ‘아직도, 여전히 또한 앞으로도’ 시노달리타스를 계속해서 언급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를 알려준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직까지 시노달리타스와 가깝지 않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시노달 리타스가 교회의 신원과 정체성, 그리고 사명과 활동의 본질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제라르 로세(G. Rossé)와 세바스티아노 핀토(S. Pinto)는 사도행전에서 아홉 차례나 그리스도교를 ‘길’(ὁδός:호도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시노달리타스를 교회 공동체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취사선택(取捨選擇)이 가능한 옵션이 아니라 ‘같은 길을 함께 걷는’(σύνoδοι:쉬노도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유전자에 새겨진 고유한 특성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고 사도적이며 ‘시노드적’이고 반드시 ‘시노드적’이어야 한다. 시노달리타스는 교회를 교회답게 하고 사제를 사제답게, 수도자를 수도자답게, 그리고 평신도를 평신도답게 한다. 따라서 시노달리타스를 아직도 말하는 것은 교황 프란치스코의 개인적인 열의나 이 시대의 상황 때문이 아니라, 제삼천년기만이 아니라, 성령께서 강림하셨던 오순절 이래로 하느님께서 기대하시는 교회 공동체 건설의 신적 명령에 응답하는 것이다.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한산주임-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미사>
44. 미사 해설 - 성찬 전례(8) : 감사 기도에 대해서 (2)
지난 시간에 이어 감사 기도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초기 교회에서는 감사 기도를 위한 특별한 기도문이 없었고, 주례자가 복음에 맞추어 감사의 표현양식을 만들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보다 잘 정리된 기도문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전례예식을 다듬는 과정 속에서 교회는 일정 형식의 성찬 기도문을 제시하게 됩니다. 우선 감사 기도의 구성에 대해서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79항을 통해서 이해해 봅시다.
79. 감사 기도를 이루는 주요 요소는 아래와 같이 나눌 수 있다. 1) 감사 : 감사는 무엇보다도 감사송에서 표현된다. 사제는 거룩한 백성 전체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고, 구원 업적 전체에 대하여, 또는 그날과 축일 또는 그 전례 시기의 특별한 신비에 대하여 감사를 드 린다. 2) 환호 : 회중 전체가 하늘의 천사들과 성인들과 일치하여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한다. 이 환호는 감사 기도의 한 부분으로써 교우들이 모두 사제와 함께 바친다. 3) 성령 청원 : 성령의 힘을 내려 주시기를 비는 특 별한 기원으로, 교회는 사람이 바친 예물이 축성되도 록, 곧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도록 간구하고, 또한 이 흠 없는 제물이 영성체 때 이를 받아 모시는 이들에 게 구원이 되기를 간청한다. 4) 성찬 제정과 축성문 :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만찬 때에 몸소 제정하신 희생 제사는 그분의 말씀과 행위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행하신 똑같은 신비를 끊임없이 거행하라는 명령을 남기셨다. 5) 기념 : 교회는 사도들을 통하여 주 그리스도께 받은 명령을 이행하며 그분을 기억하는 기념제를 지낸다. 그분의 복된 수난과 영광스러운 부활과 승천을 기억한다. 6) 봉헌 : 교회, 특히 지금 여기에 함께 모인 교회는 이 기념제로 흠 없는 제물을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봉헌한다. 교회는 신자들이 흠 없는 제물뿐 아니라 그들 자신도 바치기를 바란다. 신자들은 중재자이신 그리스 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또한 이웃과 나날이 한층 더 완 전히 일치하여,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시게 해야 한다. 7) 전구 : 이 기도에서 하늘과 땅에 있는 온 교회가 하나 되어 성찬례를 거행하고 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교회와 교회의 모든 구성원을 위하여, 곧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통하여 구원에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제사를 봉헌한다는 사 실이 드러난다. 8) 마침 영광송 : 이 기도는 하느님께 바치는 찬양을 표현한다. 교우들은 아멘이라는 환호로 이 기도를 확인 하고 마친다. |
다음 시간에도 감사 기도에 대해서 설명이 이어집니다.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 사목국 차장-
천주교대전교구 성령쇄신봉사회
(1) 가톨릭 성령쇄신운동
신부님! 새얼센터는 뭐하는 곳인가요? 왜 거기에 가셨나요? 누군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설명을 하려고 하니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신령한 언어를 하고 찬양을 하고...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톨릭의 개신교 부흥회 같은 거! 라고 이야기하면 바로 이해를 하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제가 너무나 부끄럽고 싫었습니다. 이제야 답을 찾았습니다. 새얼 센터는 대전교구의 성령학교다! 이제야 좀 개운합니다. 가톨릭의 성령운동은 1967년 미국의 듀케인 대학교 가톨릭 학생회 모임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당시 대학생들이 모여서 성령강림이 초대 교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왜? 지금은 성령이신 하느님을 초대교회 신자들처럼 체험하지 못할까?”라는 청원을 가지고 성령 송가를 바치며, 성령강림 사건의 체험을 청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피정을 하게 되는데, 현시되어 있는 성체 앞에서 예수님의 현존의 강한 체험을 하게 되고, 자신을 예수님께 맡기며, 어떤 고난이라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한다는 기도를 마음에서부터 진심으로 하게 됩니다. 또 다른 학생은 기쁨이 넘쳐흐르고, 신령한 언어로 기도를 하고, 찬양을 하며, 다양한 성령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령운동은 점차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은총은 삶의 쇄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쇄신 운동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김기범 시몬 신부 성령쇄신봉사회 전담-
이충무의 숨은 행복 찾기(56)
입바른, 입빠른, 입발린
늘 ‘말’이 문제입니다. 생각과 말과 행위 중에 우리 삶에 가장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건 아마도 ‘말’ 일 겁니다.
생각은 쉽게 잘 드러나지 않아 자주 부딪힐 일이 없고, 행동은 한 번 움직이면 돌이킬 수 없어 웬만하면 자제합니다.
하지만 말은 늘 생각보다 한발 앞서 나가고, 행동하지 않아도 행동한 것처럼 입에서 거침없이 튀어나올 때 가 종종 있습니다.
‘말’로 짓는 죄가 있다면 그건 대개의 경우 ‘입바른’ 죄, ‘입빠른’ 죄, ‘입발린’ 죄 가운데 하나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입바른 말’은 사전적으로 ‘거침없이 남의 잘못이나 시비를 따지는 바른말’을 뜻합니다. 바른말임에도 이 말이 문제가 되는 건 주로 태도 때문입니다.
‘거침없는 태도’는 오만함에서 비롯됩니다. 진정으로 바른말을 하려면 오만할 때가 아니라, 겸손할 때 해야 합니다. 바른말은 공격의 언어가 아니라, 도움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입빠른 말’은 ‘남에게서 들은 말이나 자신의 생각을 참을성 없이 지껄이는 말’을 의미합니다. 이 말이 문제가 되는 건 ‘참을성 없음’에 있습니다.
‘참을성 없음’은 경솔함에서 비롯됩니다. 직접 보고 겪지 않은 걸 말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최대한의 ‘느림’ 입니다. 설익은 밥처럼 설익은 말을 소화할 사람은 없습니다.
‘입발린 말’은 ‘마음에도 없이 겉치레로 하는 말’을 뜻합니다. 이 말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오로지 ‘겉치레’만 있기 때문입니다.
‘겉치레’는 공허함에서 비롯됩니다. 수레가 비어 있으면 요란해지듯, 마음 안에 진정성이 부족하면 부족해질수록 입으로 나오는 말은 더욱 요란해질 뿐입니다.
한 말씀만으로도 충분한 주님의 말씀을 따라, 말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오늘 하루를 시작해 보고 싶습니다.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 건양대교수-
<1분 교리>
Q) 성체 조배(聖體朝拜)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나요?
A) 성체는 성당 내 감실(龕室) 안, 혹은 본당에 따로 꾸며진 성체조배실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찾아가 인사드리고 기도드리는 것을 성체조배라고 합니다.
성체조배를 할 때는 ① 조용히 조배실에 들어가 ② 반절로 성체께 예의를 표한 후 ③ 자리에 앉아 성호를 긋고 ④ 조용히 성체를 응시하며 기도를 바칩니다. 이때 시간 제약은 없으며 기도는 여러 가지로 자유롭게 드릴 수 있습니다.
⑤ 기도할 때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인지하며 그분께서 우리에게 응답해 주시는 말씀을 조용히 기다립니다. ⑥ 모든 기도가 끝나면 성호를 긋고 ⑦ 깊은 반절을 한 다음 ⑧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배실에서 조용히 나옵니다.
-글. 사회복음화 분과 제공-
올 여름 더위
찬미 예수님! 5월인데도 더위가 만만치 않습니다. 오늘은 올여름 더위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매년 기온상승으로 봄과 가을은 짧아지고 여름은 길어지는 것은 최근 몇 년 동안 계속인 거 같네요. 올해 여름 날씨의 기상예보가 있어서 오늘은 알려드릴까 합니다.
다음은 리포트 내용입니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릅니다. 시민들은 그늘을 찾아 더위를 피해 봅니다. 서울은 낮 기온이 30도를 넘기면서 올해 가장 더웠습니다. 대구 등 영남지방도 33도 안팎까지 치솟는 등 전국 대부분 지역에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올여름은 이런 강한 더위가 길게 이어지겠습니다. 특히 7,8월 기온이 예년을 웃돌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불볕더위의 가장 큰 원인은 봄철 동북아시아를 덮은 눈의 양입니다. 한반도 북쪽 지역과 티베트고원에 쌓였던 많은 눈이 갑자기 녹으면서 대부분 맨땅을 드러냈습니다. 여름철 한반도 상공에 더운 고기압을 발달시키는 전조 현상입니다. 대서양도 불볕더위를 부추기는 진원지로 지목했습니다.
[ 조경숙/기상청 기후예측과장 : "대기가 순환하고 있어 우리나라와 멀리 있는 북대서양의 해수면 온도 패턴에 따라서 대기 파동 효과가 발생하는데 여름철 동안 동아시아에 고온 현상을 발생시킬 수도 있습니다."]
장마 초반인 6월에는 집중호우에 대비해야 합니다. 7월과 8월은 강수량이 평년보다 적거나 비슷하겠지만, 6월의 강수량은 평년보다 많을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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