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성찰
첫 단계 : 시간과 장소 마련하기
일상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굳이 특별한 장소와 시간을 찾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먼저 던져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생각지 못한 때에 무심히 지나려던 곳에서 그분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시간과 장소가 아닌데도 말이죠. 그러니 이건 나의 의도적인 안배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체험들을 돌아보고 또 그렇게 살기 위해 더더욱 시간과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한 만남들이 스쳐가는 인연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라면 내 생의 어느 순간에는
우연하게 라도 돌아보기 마련이고 때로는 그 생각에 골몰하느라 자신이 방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잠시 잊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나도 모르게 자신의 시 공간을 내놓는 것이지요.만일 그렇게 돌아본 사람이나 체험이 소중하다고 느껴지면 마음속에 간직했다가 때를 보아 다시금 펼쳐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내가 비교적 펼쳐보기 좋은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겠지요.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만남을 돌아보려고 하는데 때마침 의식성찰을 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하느님 체험을 했던 때와 장소는 비록 당시에 특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의식성찰을 통해 바로 특별한 순간과 자리가 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내가 죄를 범한 때와 장소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물론 의식성찰은 과거의 체험을 돌아보기 위해서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먼저 나를 찾아오십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를 놀래키실 때도 있지요. 그렇게 수시로 나를 찾아오시는 분을 위해
시간과 자리를 마련해 놓는 것은 현재 그분을 더 잘 만나기 위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의식성찰을 생활하고 싶다면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고민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루 중 방해받지 않고 15분 정도 집중할 수 있는 때는 언제이고 장소는 어디인가요?
짧은 거리를 왔다 갔다 걷는 것이 집중하기 쉽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앉아서 하고 싶다면 어떤 자세가 나을지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이러한 마음 씀씀이가 이미 기도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둘째 단계 : 감사하기
지난 한 주 동안 시간과 장소를 마련하는 연습을 해보셨나요? 보통 자신에게 알맞은 것을 찾기까지, 그리고 습관을 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죠.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그 자체가 기도라는 것을 계속 떠올리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껏 주님을 위한 무대를 만들었다면 이제 주님과 춤을 출 차례입니다.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요? 저는 여러분께 감사로 시작 할 것을 권해드립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이 현재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 놓여 있어서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으면 다행일 지경인데 어떻게 감사를 하냐고 반문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스스로 어떤 감정을 느껴야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그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감사는 의지적인 행위이기도 합니다. 즉 감사는 그러한 감정을 인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한번 잘 돌아봅시다. 우리가 미사에 참석할 때 매 순간 그 전례적 의미에 충실한 감정으로 임합니까?
말씀의 전례를 시작하기 전에 반성의 기도를 올리면서 항상 마음이 아픈가요?
대영광송을 바치면서 항상 기뻐하고 흠숭하는 마음이 드나요?
그럴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분명 있습니다.
그렇다면 감정과 표현이 일치하지 않으니 가식이고 억지일까요?
물론 이상적으로는 일치하는 것이 좋겠지요.그러나 우리는 엄연히 그렇지 못한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드리는 통회의 기도나 감사의 찬미는 오히려 더 큰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가 정말 내 죄로 인해 마음이 아프면 저절로 참회하는 기도가 나오고 정말 기쁘면 저절로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또한 우리가 마음의 위안을 받고 있으면 기도를 몇 시간 연속으로 해도 시간이 가는 줄 모릅니다.
그런데 내 감정이 그렇지 않다고 해서 통회와 찬미,기도를 중단한다면 하느님은 결국
자신에게 있어 스스로 내킬 때나 만나는 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의식성찰을 감사로 시작하는 것은 나와 하느님의 관계에 초점을 두려는 노력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으시더라도 실망하지 마시고 하느님께 감사의 인사를 건네십시오.
그리고 하느님께서 지금 성찰을 하고 있는 자신을 자비롭게 받아주시고 있음에 감사하십시오.
이는 미사 때 드리는 감사기도의 말씀처럼 우리의 찬미와 감사가 그분께 보탬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구원에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단계 : 성령을 청함
주님께 감사한 것들을 떠올리셨고 그 감사함까지 표현하셨다면 이제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해주시기를 청하십시오.
사실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는 것은 의식성찰뿐만 아니라 모든 기도에서 필요합니다.
그 이유를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로마8.26-27)."
성령께서는 이렇게 우리의 기도를 이끄십니다. 그러나 의식성찰에서 성령을 청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나의 삶을 자신의 눈이 아닌 하느님의 눈으로 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늘 여러 애착과 걱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런 우리 자신이 보는 세상과 나의 모습은 뿌옇기만 합니다. 이는 벳싸이다의 소경이 에수님께 한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마르8,24)."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잘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겸손되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어지는
의식성찰의 과정들은 기도가 아니라 내 판단들의 나열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하고있으니,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41)"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을 청하는 것이 좋을까요?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마음속으로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오소서,성령님,새로나게 하소서."를 외우시는 것도 좋고
"성령님,당신의 빛으로 저를 보게 하소서."하는 식으로 직접 기도문을 만드셔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되도록 짧고 단순하게 청하고 자신의 침묵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킨다면 마음속으로 바치는 기도문뿐만 아니라 간단한 동작으로 표현하셔도 좋습니다.
우리 자신은 보통 하루종일 내가 보는 세상에 갇혀 삽니다. 순간순간 깨어 의식하려고 해도 그 순간뿐일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 어떤 수사님은 하느님을 의식하는 훈련을 하려고 신발 속에 자그마한 돌멩이를 넣고 다니기도 했는데
그러고 나서 깨닫게 된 것은 하느님을 의식한다는 것이 단순히 지속적으로 떠올린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의식성찰은 하느님의 눈으로 자신과 이웃,그리고 세상을 새롭게 보고,새롭게 결심하는 기도입니다.
이에 따라 내 자신이 변화되는 것,그것이 바로 하느님을 의식하는것이라 하겠습니다.
넷째 단계 : 돌아보기
성령을 빛을 청하고 나서 이제 그 빛 안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상상력을 쓰는 관상기도가 주님의 사건 안에
초대받아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의식성찰은 나의 사건 안에 주님을 초대하고 모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기도할때 이렇게 선을 긋듯이 구분 지을 수는 없습니다.
굳이 여러분이 이해를 돕자면 그렇다는 것이지요.
먼저 지난 성찰을 마친 시점부터 시작하여 지금 성찰을 시작하기 직전까지의 생활을 쭉 떠올려 봅니다.
보통 시간적 순서대로 살펴보지만 저절로 떠오르는 인상 깊은 체험들이나 사건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먼저 보십시오.
그분께서 이끄신다는 느낌이 있을 때 내가 정해놓은 방식이나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따라 갈 수 있는 마음을 청해보시길바랍니다.
이때 나의 생활을 지나치게 세세히 돌아보느라 시간을 다 보내지 마십시오.그리고 잘 하고 있는지 혹은 빼먹은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일단 내려 놓으십시오.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를 평가하는 시험감독관이 아닙니다.
대신 하나의 사건이라도 깊게 보고 머무르는 것에 더 집중하십시오. 그럴 때에 내 삶의 패턴이 좀 더 명확하게 보이고
내 자신이 언제 하느님과 함께 했고 함께 하지 않았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냐시오 성인께서 영신수련에 소개한 성찰이 철저히 자신의 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사실 당시 시대 분위기를 보면 이 말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가볍게 여기는 성향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유익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초점을 두는 것이 옳을까요?
나의 죄일까요? 아니면 하느님의 동반일까요?
여기서 옳고 그른 것은 없습니다. 이는 마치 귀납법이 옳으냐,연역법이 옳으냐 하는 말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지요.
나의 죄에도 불구하고 함께 해 주시는 하느님을 의식하는 것과 함께 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초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는 나자신을 의식하는 것은 결국 같은 이야기입니다.
다만 죄에 초점을 둘 때에 많은 이들이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자신을 부정적인
모습으로만 돌아가는 경향이 있어서 조심스러운 것뿐이지요.
실제로 생활을 돌아보면서 헷갈릴 때 의식성찰의 목적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십시오.
내 삶 속에서 하느님을 친밀하게 만나는 순간들을 늘리고 지금 이 순간도 그 시간이 되기 위해서가 아닌지요?
다음주에 이야기할 단계는 이 점을 다시금 확인시켜 둘 것입니다.
다섯째 단계: 담화하기
여러분은 기도가 하느님과의 대화라는 말을 이미 여러 번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도 이 의식성찰 연재를 시작하면서 그런 말을 했었지요.이와 같이 기도는 곧 하느님,예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묵상한답시고 아무리 좋은 생각을 많이 해도'담화(談話)'를 통해 주님께 말을 건네면서
관계를 맺지 않으면 그것은 기도라 할 수 없습니다.
영신수련에서는 상상력을 쓰는 관상기도를 할 때 기도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도록 초대하는데
담화는 이런 대화와는 좀 다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담화란 보통 관상기도를 마치기 전에 성부 하느님,성자 예수님,
성모 마리아 중에 한 분,혹은 차례대로 세 분께 자신이 기도를 통해 얻게 된 깨달음이나 하게 된 결심을 아뢰고
이에 필요한 은총이나 전구를 청하는 것을 의미하지요. 의식성찰의 담화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내 삶의 패턴을 하느님의 눈으로 돌아본 후에 그 과정 안에서 알게 된 것들을
주님과 나누고 다시 새롭게 살아갈 은총을 청하는 것이지요.
담화를 할 때에는 '정말 이 자리에 예수님께서 계신다고 마음으로 느끼며 말을 건네는가?'하는 점이 가장 관건이 됩니다.
그분의 현존을 확신하고 느끼면 기도는 저절로 되기 마련이지요.
사실 우리가 기도 안에서 주님께 말을 건넬 때 여러 단계의 느낌이 있습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벽에 대고 말하는 것과 같은 느낌,동물에게 말하는 느낌,식물인간에게,싫어하는 사람에게,
좋아하는 사람에게,그 중에서도 중요한 사람에게 말하는 느낌등이 들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께 말을 건넬 때 어떤 느낌을 받으십니까?
여러분에게 있어 그분의 현존은 어느 단계입니까?
그분의 현존을 느끼고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면 그리고 그 느낌이 아주 중요한 사람에게 말하는 것 같다면
그 담화는 조금씩 혹은 일순간에 나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많은 이들을 치유하실 때처럼 말이죠.
예수님처럼 짧은 순간 동안에 타인의 인생을 바꿀만한 대화를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50년을 함께 살고도 단 한 번도 진정한 대화를 못한 채 헤어지는 부부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담화할 때 많은 말보다도 단 한마디라도 깊은 마음을 담아 주님께 건네보십시오.
그리고 이를 위해 때때로 복음서를 펼쳐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을 건네셨는지를 묵상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의식성찰을 마무리하며
의식성찰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고나서 지금까지 각 단계를 하나씩 짚어 보았습니다.이제 마무리를 할 차례입니다.
영신수련에서 관상기도를 염경(念經)으로 끝맺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식성찰도 주의기도로 마칩니다.
이는 마음과 정신 안에서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반성과 대화의 줄기를 다시 한데 모으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게 해주는 준비기도이기도 합니다.우리가 예수님께서 스스로 봉헌하신 몸을 모시기 전에 필히
주의기도를 암송하듯이 나의 삶을 다시금 주님께 봉헌하기 위해 주의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의식성찰의 방법과 흐름을 보신 소감이 어떠신지요?
연재 2주차에 간단히 전반적인 소개를 해드리면서 15분 정도 시간을 할애하시라고 권해드렸는데
시간에 너무 얽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하루를 마감하면서 바쁜 생활 중에 잠시라도 주님께 머무른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몸에 좀 배었다고 느끼실 때 하루를 반으로 나눠 성찰 시간을 한 번 더 갖는 것도 좋겠습니다.
의식성찰을 하다가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성찰 후에 기록해 두시면 하느님과 나를 알아가는데에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특별한 깨달음이나 느낌이 없다 하더라도 매일 성찰 내용을 간단히 한 단어나 문장으로 남겨두면 자신의 영적 리듬을 파악하기에 용이합니다.
그래서 저도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영적 일기를 추천하는 것처럼 성찰 일지를 권하고 싶습니다.
성찰 일지는 단순히 자신의 영적 흐름을 깨닫는 것을 도와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어떤 특정한 죄악을 멀리 하고 싶거나 영적 진보을
이루고 싶을 때 자신이 현재 개선되고 변화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잘 알게 해줍니다.
저는 그동안 의식성찰에 관하여 알고 있는 바를 부족한대로나마 정리해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의식성찰은 창조의 기도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서 그 후로 손을 떼신 것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에도 끊임없이 창조하고 계시지요.그것은 우리들 각자의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한사람,한사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창조하고자 하십니다.
의식성찰은 결국 내가 오늘 하루 얼마만큼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했던 창조에 동참하였는가를 돌아보는 시간인 것이죠.
아무쪼록 저의 보잘것 없는 연재를 통해 여러분 모두 이러한 시간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기를 희망해봅니다.
-예수회 조성재(요셉)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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