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그리고 시

실비아 플라스의 시

모든 2 2021. 11. 9. 02:29

 

유아론자의 독백/실비아 플라스

 

나?

나는 혼자 걷는다,

자정의 거리가

발아래서 빙빙 회전한다,

눈을 감으면

이 꿈꾸는 집들은 모두 사라진다.

내 기분에 따라

박공벽 위로 천상의 양파 같은 달이

높이 걸려 있다.

 

나는

멀리 감으로써

집을 오그라뜨리고

나무를 축소한다. 내 표정이 띠는 염격함은

자신이 어떻게 작아지고,

웃고,입 맞추며, 술에 취하는지 알지 못하고,

내가 눈을 깜박이기라도 하면

죽게 될 것임을 상상하지 못하는

꼭두각시들을 허공에 매달아놓는다.

 

나는 기분이 좋을 때

풀잎에 녹색을 부여하고

하늘을 파랗게 꾸미며, 태양을

황금빛으로 만든다.

하지만,기분이 우울할 때,나는

색깔을 거부하고 꽃의 자태를

금하는

절대 권력을 지닌다.

 

나는

네가 생생하게 내 곁에

나타나는 것을 안다.

내 머릿속에서 네가 나온 것임을 부인하며,

육체가 실재함을 증명하기에 충분히 강렬한 사랑을

네가 느낀다고 주장하며,

너의 모든 아름다움,모든 재치는,나의 사랑이며,

바로 나에게 받은

선물임이 분명하긴 하지만,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에서)

 

 

사산아/실비아 플라스

 

이 시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슬픈 진단이다.

그들은 발가락과 손가락이 충분히 자랐고,

작은 앞이마는 정신 집중으로 부풀어 올랐다.

그들이 사람처럼 걷지 못했다면,

모성애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 나는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형태나 편 수나 모든 부분에서 적합하다.

그들은 절인 물 안에 얌전히 앉아 있다!

그들은 나를 향해 웃고 웃고 웃는다.

하지만 여전히 허파는 채워지지 않고 심장은 작동하려 하지 않는다.

 

돼지 같거나 물고기 같아 보이지만,

돼지가 아니고, 물고기도 아니다.

빛을 보았다면 훨씬 나았을 것이고, 그것이 그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폐기되었고, 그들의 어미는 심란해져 죽은 거나 다름없다.

그들은 멍청하게 쳐다볼 뿐, 그녀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워더링 하이츠/실비아 플라스

 

수평선이 나를 둘러싸네, 기울어지고

이질적이고, 항상 불안정한 장작 다발처럼.

성냥이 닿으면, 수평선은 나를 따뜻하게 해줄 거야.

그리고 그들의 고운 선은 빛날 거야

대기가 주황색으로 변할 거야

멀리서 지평선의 중심이 증발하기 전에,

창백한 하늘은 탁한 색깔과 함께 무거워질 거야.

내가 다가서면 마치 줄줄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수평선은 사라질 뿐이야.

 

여기엔 양의 심장이나 풀잎 끝보다

키가 큰 생명체가 하나도 없어, 그리고 바람은

운명처럼 마구 쏟아지지, 구부러지고

모든 것이 한 방향이야.

난 느낄 수 있어, 바람이 애쓰고 있어

내 열기를 식히려고 해.

만약 내가 히스 뿌리에 세심히

주의를 기울인다면, 뿌리들은 나를 초대해

자기들 사이에서 내 뼈를 희석시키려 하겠지,

 

양들은 자기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지,

날씨처럼 회색빛인

그 더러운 양털 구름 속을 뒤지며,

눈동자의 그 검은 구멍으로 나를 이끄네.

그건 공간으로 전송되고 있는,

하찮고 어리석은 소식,

양들은 할머니처럼 변장하고 서 있어.

곱슬거리는 가발 그리고 노란 이를 하고

매섭고, 냉정하게 음매애.

 

나는 바퀴 자국과 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고독처럼 맑은

물은 다가가.

텅 빈 층계는 잡초로 시작해, 잡초로;

창틀과 문틀은 경첩이 뗴어져 있어.

사람 사이에서 오직 공기만이

이상한 음절 몇 개를 기억하고 있네.

공기는 그 음절들을 신음하듯 암송하지:

검은 돌, 검은 돌.

 

하늘은 내게 기대네, 수평선들 가운데

유일하게 똑바로 서 있는 내게,

풀은 미친 듯이 머리를 부딪치고 있어.

너무 미묘해

평생 그런 무리 속에서:

어둠이 그것을 두렵게 해.

이제, 지갑처럼 좁고

어두운 계곡에서, 집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작은 변화처럼 반짝인다.

 

실비아 플라스 시인, 소설가

'신화‘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 미국의 대표적 여성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1932년 매사추세츠에서 보스턴대학의 생물학 교수이자 땅벌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오토 플라스와 아우렐리아의 딸로 태어났다. 독일계였던 아버지는 실비아가 여덟 살 때 당뇨병으로 유명을 달리하는데, 이 사건을 실비아의 삶과 작품 세계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이 된다. 1950년 장학생으로 스미스여대에 입학한 실비아는 이미 400편이 넘는 시를 썼으며 자신에게 깊은 감명을 준 많은 서적의 목록을 소유하고 있었다. 1952년 <마드모아젤>지 공모전에 단편 <민튼 씨네 집에서 보낸 일요일>이 입상하면서 작품이 게재되었고 1953년부터 <마드모아젤>의 객원편집기자로 활동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이때의 경험은 1963년에 발표한 자전적 소설 <벨자>에 묘사되고 있다. 충격요법과 심리요법을 병행한 치료 기간을 거친 후 실비아는 학업을 계속하는 한편 문학적으로도 성공을 거둔다. 1955년 스미스대학을 졸업한 실비아는 풀브라이트 스칼라십으로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하게 된다. 1956년에 영국의 시인 테드 휴즈와 결혼하고 1957년-58년까지 모교인 스미스대학에서 영문학 강사로 재직한다. 1960년 4월에는 딸 프리다가 태어난다. 같은 해 10월에는 실비아의 첫 번째 시집인 <거상>이 영국에서 출판된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대단히 정교하고 치밀하게 씌어졌으며 실비아의 고독한인생의 미로를 명백하게 계시하고 있다. 영국 데본의 작은 마을에서 살던 실비아와 테드는 아들 니콜라스가 태어난 해인 1962년 10월부터 별거에 들어간다. 이때의 고통은 오히려 실비아의 시 세계에 생명을 불어넣은 듯 그녀는 그 무렵 한 달에 서른 편의 시를 써내는 열정을 보여주다가 마침내 1963년 2월 11일 가스오븐에 머리를 처박고 자살함으로써 서른 살의 천재 여성 시인 실비아는 참혹한 비극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