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그리고 시

십일월/쓸쓸한삽화/바람의 머리카락/홍성란

모든 2 2022. 1. 28. 12:38

 

 

십일월/홍성란

 

사람은 두고 마음만 사랑할 수 있을까

널 사랑한 게 아니라 네 마음을 사랑했다고

 

가을도 다 지난 산언덕

가끔 지는

가랑잎

 

널 보내고 네 마음 다시 그립다고

먼 파도소리처럼 살 비비는 가랑잎 떼와

 

오백 년 그 너머 歌人에게

말해줘도

좋을까

 

 

 

쓸쓸한 삽화/홍성란

 

사랑받지 못하여도

사랑할 수 있으므로

고단한 속눈썹은

들꽃을 만나러 간다

이름도 풍화해버린

풀잎 같은 꽃들을

 

서러움의 뒷모습은

어떤 빛일까 어떤 몸짓일까

귀 먼 너에게

다시 묻지 않으리

길이 든 영혼 호올로

사랑 할 수 있으니

 

공허한 목소리가

억새처럼 흩날린다

안개 내린 11월에

온몸을 수장하고

풍어도 눈먼 사랑을

놓아준다 놓아준다

 

 

 

바람의 머리카락/홍성란

 

대추 꽃만한 거미와 들길을 내내 걸었네

잡은 것이 없어 매인 것도 없다는 듯

날개도 없이 허공을 나는 거미 한마리

가고 싶은데 가는지 가기로 한 데 가는지

배낭 멘 사람 따윈 안중에 없다는 듯

바람도 없는 빈 하늘을 바람 가듯 날아가네

날개 없는 거미의 날개는 무엇이었을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 있다는 듯

매나니 거칠 것 없이, 훌훌,혈혈단신 떠나네

 

-제1회 조은문학상 수상기념 시집 《바람의 머리카락》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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