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홍성란
사람은 두고 마음만 사랑할 수 있을까
널 사랑한 게 아니라 네 마음을 사랑했다고
가을도 다 지난 산언덕
가끔 지는
가랑잎
널 보내고 네 마음 다시 그립다고
먼 파도소리처럼 살 비비는 가랑잎 떼와
오백 년 그 너머 歌人에게
말해줘도
좋을까
쓸쓸한 삽화/홍성란
사랑받지 못하여도
사랑할 수 있으므로
고단한 속눈썹은
들꽃을 만나러 간다
이름도 풍화해버린
풀잎 같은 꽃들을
서러움의 뒷모습은
어떤 빛일까 어떤 몸짓일까
귀 먼 너에게
다시 묻지 않으리
길이 든 영혼 호올로
사랑 할 수 있으니
공허한 목소리가
억새처럼 흩날린다
안개 내린 11월에
온몸을 수장하고
풍어도 눈먼 사랑을
놓아준다 놓아준다
바람의 머리카락/홍성란
대추 꽃만한 거미와 들길을 내내 걸었네
잡은 것이 없어 매인 것도 없다는 듯
날개도 없이 허공을 나는 거미 한마리
가고 싶은데 가는지 가기로 한 데 가는지
배낭 멘 사람 따윈 안중에 없다는 듯
바람도 없는 빈 하늘을 바람 가듯 날아가네
날개 없는 거미의 날개는 무엇이었을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 있다는 듯
매나니 거칠 것 없이, 훌훌,혈혈단신 떠나네
-제1회 조은문학상 수상기념 시집 《바람의 머리카락》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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