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성당 당진포 공소
충청남도 당진시 황토마을로 198-54(고대면 당진포리 32-170)
+ 마르코 복음 5,21-43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건너편으로 가지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을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하고 물으십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말씀의 향기>
사랑으로 구원된 우리 - 김윤재 안드레아 천안오룡동 보좌
오소서, 성령님. 새로나게 하소서.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 5장의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신 치유 이야기'입니다. 두 기적은 바로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사람을 살리신 이야기입니다. 이는 믿음으로 치유의 기적을 체험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면, 믿음으로 구원받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구원은 구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혈이 나은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라고 말씀하시고, 죽었던 수녀에게는 "소녀야, 일어나라!" 하시니 말이죠. 그런데 이 구원은 두 여인에게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야이로라는 회당장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딸을 잃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라는 말씀으로 모두 오늘의 구원을 체험하였습니다.
예전에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라는 책의 서평을 읽은 적이 있는데,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 책은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 책은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려준다."사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의 구원 이야기는 바로 이 변화를 보여줍니다. 차마 자신의 아픔을 예수님께 말씀드릴 수 없던 여인은 예수님의 부름으로 손을 들었고, 누워 있던 아이는 일어났으며, 슬퍼하던 아버지는 웃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체험은 매일의 시간 안에서,구체적인 사건들 안에서 일어나는 기적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의 모습은 다양하지만 사랑받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쉽게 변하지 않는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사랑으로 이끌고 일어나게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주님께서 내미시는 사랑 넘치는 손을 잡고 일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손길은 우리를 주님과의 만남으로 이끄는 초대입니다. 그리고 그 초대로 사랑이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 땅에서부터 시작하는 하느님 나라로 이끄실 것입니다. 아멘.
<사회와 교회를 잇는 길잡이>
코로나블루의 백신은 마련 중?
하느님께서 주시는 인간 삶의 축복과 행복을 이야기하며 신자들의 영혼 구원을 돌보는 사목은, 때론 삶에 지치고 고단한 이들에게 부정적인 삶의 관점을 부각시키는 것이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때로는 '~하지 마라'가 아닌 '~해도 좋다' , '~해도 괜찮아'라는 긍정의 힘을 주려는 것이 오늘날 사목자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코로나블루 때문만은 아니지만, 우리가 현시대에 자살을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은 어쩌면 이미 누군가의 희생의 대가를 치른 후의 일들이라 때로는 마음이 너무나 아프다. 이는 교회가 자살에 대한 개인의 잘못으로 단순히 정죄해버리는 일은 이미 옛일이 되었지만, 그 영혼을 성실하게 돌보지 못한 우리의 책임이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이제는 어느 공동체든 누군가가 "사느냐,죽느냐?"로 갈등하며 괴로움에 떨고 있을 때,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방황할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리고 무엇에 집중하고 있었던가? 그들의 생명이 비참한 자살로 마감되기 전에 우리는 어떤 관심을 보였던가? 자문할 수밖에 없다. 교회는 이런 양심의 소리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한다. 더욱이 하느님께서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창세 4,9)고 질문하실 테니 말이다.
그래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누군가의 자살에 우리는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사목적인 돌봄과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영혼의 돌봄과 구원을 위한 교회의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그들이 개인적인 면면으로, 그리고 신앙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자살한 것이라 둘러댄다 해도 그들이 '신자'라는 사실 또한 그대로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영정 앞에는 이미 '故○○○ 세례명'이라 쓰여 있다.
교회는 자살에 대해 여전히 조심스럽다. 하지만 세상은 생명의 문제에 대해 다행히 귀를 막지 않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은 '고로나블루'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코로나로부터의 회복은 백신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한 다양한 어려움들은 여전히 견딜 수 없는 심리적 고통들도 수반하고 있다. 몸의 치유와 더불어 온전히 전인적으로 치유될 수 있도록 영혼의 돌봄과 치유에도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이제는 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그들에게 '생명을 선택하자.'고 정중히 호소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회가 체험하는 이 사목의 현장에서 주님께서는 오늘도 '한 사람'을 살리시려 많은 천사들을 보내고 계시기 때문이다. 생명의 갈림길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에 도움을 받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우리가 되자.
한마음 한몸 자살예방센터 위기상담전화(24시간)1399,정신건강상담전화 1577-0199, 캠페인 및 교육 문의 (02) 318-3079 그 외 대전/충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도움을 받으시거나 상담문의 가능합니다. |
-이영일 야고보 신부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대전교구 담당-
교회음악 이야기(2)
모차르트의 대미사 다단조
모차르트(W.A. Mozart, 1756-1791)의 대미사 다단조(Groβe Messe in c, KV 427)는 그의 교회음악 작품 가운데 기념비적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이 곡은 모차르트가 짤츠부르크에서 비엔나로 옮겨가는 1782-1783년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된다. 큰 규모의 장엄미사인 이 곡은 두 명의 소프라노, 테너, 베이스 솔리스트, 이중 합창과 큰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구성된 곡이다. 레퀴엠과 마찬가지로 이 미사곡도 미완성으로 작곡되었다. 후대에 여러 작곡가, 편집자들이 빠진 부분을 보충한 악보집을 펴냈지만 여전히 모차르트가 작곡했던 대로 미완성인 채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되었던 콜레기움 보칼레(Collegium Vocale)의 연주도 그러하였다. 즉 <자비송>(Kyrie), <대영광송>(Gloria), <신경>(Credo)의 전반부, <거룩하시도다>(Sanctus, Benedictus)로 구성되어 있고, <하느님의 어린양>(Agnus Dei)과 <신경>(Credo)의 ‘사람이 되시어’(Et Incarnatus Est) 이후 부분은 빠져 있다.
모차르트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한 번쯤 꼼꼼히 들여다보게 되는데 집을 떠나 다른 지역에 머물면서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 심리상태, 주변의 일들에 대해 상세히 묘사한 정황들은 특정 곡을 작곡할 때 작곡가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다단조 미사곡은 1782-1783년 사이에 작곡되었는데, 모차르트는 1783년 1월 4일 아버지 레오폴트(Leopold)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이 ‘서원’과도 같은 마음으로 이 미사곡을 썼음을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반대했던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Constanze)를 처음 가족들에게 인사시키기 위해 짤츠부르크에 데려가겠다는 내용이다. 이때 콘스탄체는 이미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이 시기의 모차르트는 어느 궁정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고 누군가로부터 위촉을 받지 않았음에도 즉, 그러할 의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음악인 미사곡을 작곡하였다. 때문에 그의 ‘서원’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차르트의 대미사 다단조에는 다양한 음악적 표현양식들이 고루 드러나 있다. 그렇다할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충분히 합리적으로 납득될 만큼 바흐, 헨델의 바로크 후기 양식들이 나타나고 이와 동시에 화려한 아리아, 레치타티보를 연상시키는 오페라와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엄격한 대위법이 좁은 음 간격에서 빠른 음형으로 모방되는 구간이 많고 약박에서 강조되는 아티큘레이션을 섬세하게 살리는 동시에 각 성부가 모아지는 수직적 화성에도 충실해야 한다. 또한 엇박으로 시작되는 모티브들도 많아 더욱 정교한 연주가 필요하다. 특히 감 7화음, 9화음 등 부속 화음들이 부딪히며 해결되는 과정에서 정확한 피치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꽤 어렵지만 고귀한 장엄함은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오주현 헬레나 음악학자-
* 교구내 공소 당진성당 당진포공소 1981년 9월 고산리 마을의 최용석(시몬)의 집에서 3가구 5명 내외의 교우들이 모여 공소를 시작하였고, 12월 장영식 신부가 처음으로 성탄판공을 위해 공소를 방문하였다. 이후 1994년까지 황선용 회장집에서 공소예절을 가졌다.1992년 황회장 부부가 화재로 인해 선종하자 교우들이 공동으로 농사를 대행하는 등 격동이 있었고, 영농 수익금과 모금으로 황 회장이 살던 집터와 토지 위에 시멘트벽돌 조(115.5㎡) 공소를 1994년에 완공하였다. 이때 공소명칭을 당진포공소로 개칭 하였다. 같은해 12월 1일 정호영 신부의 집전으로 축복예식을 거행하였다. 현재 16가구에 18여명의 교우가 정기적인 전례에 참례하고 있다. |
해외 유학 사제들의 편지③
유학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 찬미예수님.
안녕하세요, 대전교구 주보를 통해서 인사드리는 권영명 안드레아 신부입니다. 사제서품을 받은 후 논산 부창동 본당에서 2년간의 보좌 신부를 지내고, 2014년에 세계교회사를 공부하라는 인사를 받았습니다. 사제서품을 받을 당시에 저는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내 인생에서 시험은 더 이상 없고, 나중에 하느님 앞에 섰을 때 받게 될 시험만 남았구나.” 그런데 로마로 유학을 가면서 다시 시험과 함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로마에서 반년 간의 이탈리아어 어학 기간을 보내고 나서 예수회가 운영하는 그레고리안 대학의 세계교회사 학과의 학부 마지막 학년으로 편입하여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다행히 교회 역사와 교회 문화 예술사 둘 다 저에게 흥미 있던 주제들이라서 수업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또한 학과 여행에 참석하여 유럽에 있는 여러 나라를 돌면서, 종교간의 대화를 실제로 체험하고 공산주의 아래에 있었던 교회들의 생생한 증언들을 듣는 뜻깊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에 한번 더 참여하고 싶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폐지되었습니다. 자상하고 호의적인 교수 신부님들이나 평신도분들 덕에 학부, 석사, 그리고 박사 과정까지 잘 마쳤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교구장 주교님께서 로마에 방문하셨던 시기와 제 논문 발표날이 겹쳐서 대주교님께서 제 논문 발표에 참석해 주셨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초대자가 5명으로 제한되어서 대주교님과 교구 신부 4명만 참석할 수 있었지만, 좋은 분위기 안에서 발표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박사 과정을 마무리하였지만 좀 더 로마에 남아 있을 예정입니다. 주교님들의 허락 아래 대전교구와 관련된 문헌들을 인류 복음화성 고문서고에서 찾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결정으로 비오 12세 교황님 제위 기간의 문헌 열람이 가능해졌고, 1958년도 문헌까지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의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부 외에도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여름방학 동안 현지 본당에서 이탈리아 신자들과 함께 지냈고, 또는 가르다 호수가 보이는 요양원에서 수녀님들과 요양하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으며, 또 공부에 필요한 언어를 배우러 파리와 도쿄에 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에 걸쳐 성직자성에서 마련한 사제 평생 양성에 대한 코스도 수료하였습니다.
이렇게 제가 별 탈 없이 오늘까지 올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의 보호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배려해 주신 주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교구 신부님과 교구 신자분들의 기도에도 감사드립니다.
-권영명 안드레아 신부 로마 유학-
주님!
저희의 간절한 기도가
헛되지 않고
이 땅의 어둠이
빛이 되게 하소서.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1위?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중략)..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죽음을 항상 기도 속에서 외우고 있는 가톨릭 신앙인이라면 죽음 이후 보게 될 세상에 대해 두려움보단 오히려 죽음 이후 살아가며 욕심없이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힘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속에서 고립감과 우울감이 너무 커 세상을 자의로 등지는 일이 벌어집니다.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6.6명으로 OECD 국가중 1위입니다. OECD평균 자살률은 12명이구요. 왠지 10만명당 26.6명이면 상대적으로 수치가 낮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나요?
하지만 실제로 10만 명당 10명만 되더라도 자살률이 높다고 해요. 26.6명은 엄청난 수치겠죠. 연령이 높을수록 자살률은 높아진다고 합니다. 실제로 80세 이상 연령이 자살률이 제일 높다고 합니다. 통계청 발표,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10만명당 5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외국은 예전부터 자살예방 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일본의 겨우 한해 예산으로 3000억 원을 받는 등 국가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죠. 반면 우리나라는 200억 남짓입니다.
실제로 일본은 자살예방을 위해 많은 투자와 관심을 쏟은 결과 자살률이 30%가 줄었다고 합니다.
혹시 언제가 번개탄을 구매할 때 사용용도를 묻는다고 했던 소식을 들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어느 순간부터 번개탄을 활용한 자살률이 높아졌기에 시행된 캠패인 입니다. 실제로 별다른 의도가 없는 사람은 당당하게 사용용도를 말하지만, 자살을 생각한 사람은 쉽게 말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자살전 사망자의 92%가 주변인들에게 신호를 보내지만 주변인들이 인지하기는 드물다고 해요. 생명존중은 신앙인이든 비신앙인이든 마찬가지일 겁니다. 살기 바빠서.. 더 낳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기 위해서... 무엇이 우릴 이리 바쁘게 만들어 버렸을까..
1위 좋아하는 나라.... 이게 그 원인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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