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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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가을꽃들이 다 스러지지 않았는데, 밤새 이슬 맞아 추레해진 꽃나무 보기 싫다고 뽑아버리고 잘라버립니다. 사람의 마음씀씀이 이렇습니다. 어수선한 것보다, 지우고 치우고 난 정갈함과 단순함이 좋아 보이는 것도 병이지 싶습니다. 타고난 성정이 그런 걸 어떻게 하겠나……, 그렇게 접어두고 삽니다. 제 집, 제 밭에 태어난 것들은, 그렇게 불운합니다. 가을이슬도 맞고 초겨울 서리도 맞고 찬 눈바람 속에서 하얗게 빛바래도록 살아가게 두어도 좋을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조바심 많은 사람이 가을 들자 치워버리려 합니다. 그 마음을 가만히 살피고 있습니다. 그 마음으로 주변에 끼친 상처가 적지 않은 것 새삼스럽습니다. 그저 두고 보고 살아도 좋을걸……."
몇 해 전부터 판화 하는 이철수 선생은 엽서 편지를 써서 매일을 하루같이 사람들에게 띄운다. 그것들 중에서 골라내어 책으로 엮었는데, 어제는 어느 지인과 선생 댁에 방문했다가 그 책을 얻었다. 곱게 만든 장정이 마음에 쏙 들어온다. ‘자고 깨어나면 늘 아침’이란 제목이 싱그럽다. 그중에서 이철수 선생이 자신의 깔끔 병을 한탄하는 소리를 듣고 남의 소리 아니다, 생각한다. 제 주변을 수시로 때때로 정돈하다 보면, 무심히 아린 목숨들 내버리게 되고, 수시로 때때로 여린 생명들 상처 입히게 되겠지. 그대로 두어도 아름다운 것들 많을 텐데, 도시의 삶이 매사에 분리수거하는 데 익숙하다 보니, 쓰레기와 쓰레기 아닌 것으로만 세상이 나뉘어 보인다. 그러다 문득, 다른 이 눈에 내가 쓰레기로 보일지 어쩔지 두려워진다. 사람마다 잣대가 다르겠지 만, 나는 나대로 고유한 모습으로 한껏 살다 가게 그냥 그대로 모른 척 넘어가 주면 좋겠다, 생각한다.
예전과 다름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밭에 나가고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산기슭 야트막한 아랫녘에 잡은 그 집 작업실에서 한참동안 수다를 떨다 밖에 나가 곱창을 실컷 먹고 돌아오는 밤, 하늘의 별빛이 깊다. 아직 보름달이 온전한 추석 다음날이다. 문득 몇 해 전까지 무주 산골에 살 적에 저녁 무렵 앞산 위로 돋아난, 쨍하게 날카로운 푸른 빛 초승달을 쳐다보던 기억이 삼삼하다. 글쎄. 맑고 명징하다, 쓰면 적절할까. 내 허물을 도려낼 듯 날 선 투명성에 잠시 멈칫하다 그도 예쁘다, 가슴에 품고 산속 우리 집으로 걸어 올라가곤 하였다. 그 산이며 초승달이며 소쩍새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곳에서 한 6년 살았었다. 언제 다시 돌아가야지, 하며 마음먹는 까닭이 거기에 있을 게다. 나도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저들의 힘에라도 의지해 느끼고 싶은가 보다.
얼마 전 이철수 선생 댁이 있는 마을에서 쉰한 살 먹은 마을 남정네가 암에 걸렸다고 한다. 병원에 첨 가던 그날 아침, 아프다는 그이더러 이철수 화백은 “걱정 마, 죽을병은 아닐 테니까.” 하였다는데, 그 이는 돌아와서 감기처럼 무심하게 ‘위암 3기’라고 말하더란다. 그러곤 몇 차례 항암치료 다녔는데, 예전과 다름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밭에 나가고 평소처럼 마을일 거들고 끙끙 앓는 소리 하나 없이 다니더란다. 형수는 이 동네 할머니들은 칠순만 넘으면 암이라 해도 병원 가는 일 없다고 했는데, 살 만큼 살았다는 뜻이겠다. 여전히 호미 들고 밭으로 가다 어느 날 고요히 허리를 꺾으시는 것이다.
시골살림이야 사실 생로병사가 바로 눈앞의 일이다. 작물들도 대부분 한해살이라서 봄에 씨 뿌려서 돋아나면 병들까 걱정이고 열매 맺으면 자연스레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이다. 뒤늦게 뿌리내린 화초들도 서둘러 씨앗 맺고 서리 맞는 법이다. 나름대로 한 목숨 다하고 주저없이 흩어지는 광경을 작물을 통해, 짐승을 통해 겪으며 사는 게 시골살이다. 어쩌다 초상나면, 마을 노인들 해바라기처럼 길가에 죽 서서, 나가는 상여소리를 듣곤 한다. 그러니 때 되면 미리미리 다짐 두고 빚 청산하고 서운케 한 마음들 달래 주며 저승 길 준비한다.
그런데, 도시살이야 어디 그런가. 모든 죽음이 은폐되어 있다. 병원 영안실에 가야 곡소리 들을 수 있다. 그마저도 요즘은 대학병원처럼 큰 병원일수록 흐느낌도 조심스럽게, 칸칸이 나뉜 방에서 저마다 조용조용 고인을 저승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임권택 감독이 만든 영화에선 장례식을 ‘축제’라고 하였는데, 요즘은 최대한 짧고 간단하게, 감정을 낭비하지 않고 ‘일’을 치르는 게 장례 문화가 되었다. 그래서 죽음은 이승과 단절되는 것이고, 영 잊히는 것이고, 정작 숨어서 두려워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노인들조차 하루라도 더 호흡을 연장하기 위해 기계를 몸에 대는 것이다.
죽음을 편안하게 직면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에서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없다. 살면서 아등바등 죽으면서 아득바득. 사람의 깊이를 느낄 수 없게 되는 법이다. 죽으면 다 소용없는 게 아니라 천상병 시인처럼 즐거운 소풍 마치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순례길에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참 복된 사람이다. 지상에서 얻은 인연들 다 놓고 새로운 인연을 찾아간다는 생각을 한다면 몸 가볍게 인생을 살아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자연에 대한 감수성은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놓는다. 역대 성인들 중에서 가장 자연친화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라고 하겠다. 가장 자연친화적인 사람이 가장 자유로운 사람일 텐데, 바람처럼 몸 가볍게 맘 가볍게 거룩한 영을 따라 사는 까닭이다. 어느 순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오로지 잔 하나와 빗 하나를 들고 길을 나섰다. 그러나 자기 손바닥으로 물을 떠 마시고 있는 한 사람을 보자 도중에 잔을 버렸다. 그리고 빗 대신 손 가락으로 머리를 빗는 한 사람을 보자 빗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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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은 옷을 벗게 만든다
독일의 신학자 도로테 죌레는 <신비와 저항>이란 책에서 이를 두고 ‘투박한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영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은행에서 저축을 장려하는 구호처럼 “네가 소유한 그 무엇이, 너의 존재다”라는 공식에서 빠르게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기쁨을 줄 것 같은 소유가 확실히 짐이 된다는 것이다. 주인과 소유자는 자기 재산의 노예와 종이 된다는 것이고, 그렇게 약속받은 궁전이 오히려 감옥이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자발적 가난’은 자유를 위한 조건이어서,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가난 부인과 결혼하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아버지와 결별하고 출가할 때 옷감장수 아버지의 유산을 받지 않았다. 그는 나병과 불결함 앞에서 구역질하지 않고 오히려 돈 앞에서 구역질을 하였다. 누군가가 교회에 놓아둔 돈을 한 형제가 집어 들자, 프란치스코는 그 형제에게 돈을 입에 물고 당나귀 똥에 덮여진 거름더미까지 가라고 일렀다. 그는 돈을 똥같이 여기라고 가르쳤으며, 그의 형제들은 교회의 재산이나 책들도 멀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하느님께 헌신하고 그분께 신뢰를 두는 완전한 자기포기를 뜻한다.
미래의 안전을 위해 보험에 들지 않는 것이며, 교회와 같은 제도가 주는 보호와 기득권마저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옷을 벗고서 맨 몸인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다. 이렇게 하느님 앞에서 옷을 벗는 것을 두고 도로테 죌레는 “모든 사랑은 옷을 벗게 만든다.”고 말한다. 소유와 기득권을 포기할 때, 우리는 자유롭게 되어 프란치스코처럼 문둥병자를 껴안고 입 맞출 수 있다. 새들과 대화를 나눌 만큼 가벼운 영혼이 된다.
1933년 <가톨릭일꾼>(Catholic Worker)’신문을 발행하면서 시작된 ‘가톨릭일꾼운동’을 창립했던 미국의 도로시 데이는 가난한 이들을 돕고 노숙자들을 환대하면서 그리스도교 평화주의를 주장했다. 그녀는 가난한 이들이 배급을 타기 위해 줄을 서게 만들지 않고, 그들이 식탁에 앉으면 음식을 날라다 주었다. 자기 방을 개방하고 그들이 물건을 집어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녀는 시시한 일에서 거룩함을 드러내는 힘을 가졌으며, 골목에서 기적을 기다렸다. 대가 없 이 빌려주며 넉넉히 나누어 줌으로써 사람에게도 ‘희망’이 있다고 알 려준다. 그녀에겐 자신이 즐겨 인용했던 아빌라의 데레사 말처럼 “천국으로 가는 모든 길이 천국”이었다.
매사에 성장과 성공만을 바라고 매달리는 세상에서, 교회 역시 프란치스코나 도로시 데이가 보여준 모범에 따라 살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예수께서 걸었던 길에서 흔적을 발견하였을 따름인데, 교회는 여전히 몸이 무겁고 맘을 닫아걸었다. 새들은커녕 자매 형제들 사이에서도 제대로 소통하는 법을 잘 모른다.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진다 해도, 그저 부스러기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교회는 엄청난 건축물과 여전히 근엄한 예식과 절차, 벽돌담 같은 규율로 ‘충분한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맘은 자유롭고자 하나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는 말은 교회에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개인은 벗어나고자 하나 조직이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통과 관습 때문에 상상력을 잃어버렸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무주 산골에 살 때였다. 어느 날 산길을 내려오는데, 마을 형님 한 분이 양복 차림에 지게를 지고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 가세요?” 묻자, “밭에…….”라고 답한다. 그는 아마 밭에 캐어둔 감자라도 지고 올 모양이다. “1년 내내 한 번도 양복을 입을 기회가 없더라고……. 생각해 보니, 양복 윗도리 양 어깨에 넣은 ‘뽕’ 때문에 이 옷이 지게질에 제격이란 생각이 들더군.” 남이야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든 말든 장롱에서 몇 해째 묵고 있던 양복이 쓸모를 찾은 것이다.
아, 투박함이 주는 아름다움이여, 이 사랑스런 쓸모 있음이여! 이러한 자유로운 상상력만이 교회가 기득권이나 소유에 얽매이지 않고도 살아갈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수도원의 모든 제복이 작업복이요 일상복이 되는 날, 건강한 노동과 휴식, 하늘과 흙냄새가 낯설지 않은 교회가 탄생할 것이다.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첫 서원 때 바닥에 엎디어 겸손을 다짐하던 마음은 프란치스코가 알몸으로 그리스도를 따라나섰던 그 마음이다. 그래서 맘만 아니라 몸도 가벼워지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성전인 우리 몸이 감옥 문을 열고 우리 영혼을 자유롭게 만들 것이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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