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9년 주보

대림 제 4주일 2019년 12월 22일(가해)

모든 2 2019. 12. 22. 21:00

성 니콜라오 대성당.1189년 완성.로마네스크 건축양식,바리

 

 

  + 마태오 복음 1,18-24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 하였다.

  요셉은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세 구원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보아라,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말씀의 향기>

 

  예수님께 드릴 선물  -조수환 바오로 천안지역청소년사목 전담-

 

  성당에서 성탄선물을 받고 제 마음에 떠올랐던 엉뚱한 질문입니다. 물론 당시에는 깊게 고민하지 않고 그저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제가 된 지금도 이 질문이 마음에 스쳐갑니다. 올해는 예수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해 보면 어떨까 하고 그 질문에 답해 봅니다.

  이제 며칠 후면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찾아 오십니다.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여정은 이해받기도 어렵고 순탄치 않은 길입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그 험난한 여정을 잘 걸어 주신 마리아와 요셉,아기 예수님께 어떤 선물을 준비하면 좋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약혼한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요셉은 파혼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꿈에 나타난 천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요셉은 마음을 바꾸게 됩니다. 어느 하나 인간의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고,만약 내 주변이나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순명과 응답의 그 어려운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마리아와 요셉은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 줍니다. 그 모범을 보고 배워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 따라해 본다면,그 노력만으로도 우리의 작은 선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마리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알리지 않고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굳힙니다. 하니만 꿈에 찾아온 천사의 말을 듣고 잠에서 깬 요셉은 작정하고 굳게 닫힌 그 마음의 문을 엽니다. 분명 요셉 자신이 그리던 결혼생활의 모습도 아니었을 것이고, 앞으로 일어난 일들이 두렵고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어떤 생각들이 들지 않았을까요. '아,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구나','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도 있겠구나', '무슨 이유가 있겠지'.

 

  우리는 종종 굳게 닫힌 마음으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 닫힌 마음은 누가 봐도 맞는 것,옳은 것,지켜야 할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요셉이 꿈에 천사의 말을 듣고 문을 연 것처럼,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도 하느님의 일이 나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올 성탄엔 굳게 닫혀 있던 문을 한번 열어본는 것으로 아기 예수님의 성탄 선물을 준비해 보면 어떨까요? 천사가 꿈에서 이야기해 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순서를 바꿔서 먼저 이 생각을 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내가 모르는 방법도 있겠구나','오죽하면 그랬을까'.

 

 

  행복하소서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 -

 

  사제관에 텐트를 쳤습니다. 매해 반복되는 행사입니다. 벽을 뚫고 들어오는 한기가 제법 거세서 뭐라도 해야 합니다. 살기 위해서 지은 집이 아닌 잠시 지내기 위한 거처로 만든 공간입니다. 그래서인지 건물의 나이를 헤아리며 또 다른 시도를 해야만 지낼 수 있습니다. 오래 살 집이 아니고 내 것도 아니어서 고치고 광내지 않습니다. 그저 이 기간을 잘 버티면 되는 것이지요.

 

  성탄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임마누엘 하느님이 오시는날,살아계신 하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내가 살아있어야 하는데, 살아있는 나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먹고 자고 입는 나를 넘어서 생각과 말과 행위 속에 존재하는 나를 만나야 하는데, 어떠신지요? 생각과 말 그리고 행위 하는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나를 만나고 있습니까? 행위와 멈춤이 조화롭게 이뤄질 때 나는 나를 볼 수 있습니다. 살아있음은 행위가 아니라 멈춤을 통해서 경험합니다. 역설이지요. 이 역설을 따라갈 때 내재하시는 하느님의 활동과 하느님섭리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내 안에 내재하시는 하느님의 은총과 하느님의 섭리가 통합되어 경험되어질 때,사람은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지금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탄을 보내고 나면 2020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2019년을 보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어떠신지요?  2019년을 보내는 느낌에 "좋다","나쁘다"로 답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삶에 '"좋다","나쁘다"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라는 존재가 그려내야하는 작품을 인식하고 "나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는지 바라보면 됩니다.

 

  지금 여기를 사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시간에 따라 발생하고 사러져 가는 것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런 만남 속에서 하느님 창조를 이어가는 선택으로 하느님 창조에 협력합니다. 나는 하늘에 새겨진 별들처럼 우주 속의 수많은 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점이 하느님의 창조를 이어가고 하느님 창조를 완성합니다.

 

  2019년,열심히 살았습니다. 다가오는 2020년도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된 지구 행성에서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지금 여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소서.

 

 

 

<사회와 교회를 잇는 길잡이 사잇길>

 

태중에서부터 죽는 그날까지

 

  순례 중,로마 라테란 성당에 마련된 한 경당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제대 위로는 오래된 벽화가 놓여져 있었다. 비록 벽화는 희미했지만 한 여인이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을 안고 있는 벽화였고 그 벽화 때문에 경당의 이름도 알게 되었다. 곧,'성녀 안나 경당'이었다.

 

  어머니 안나가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 품 안에서 드리는 미사가 너무도 포근했다. 그 포근함은 이제 얼마 뒤에 오실 아기 예수님이 누워 있을 구유가 그러하길 바라본다.

 

  문득 세상에 태어나는 한 아기가 그 푸른한 어미품 안에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무언가 막연하게 느껴지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 외치는 울음이 떠오른다. 이윽고 어미는 곧장 아기를 품에 안고  토닥이고, 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새근새근 다시 잠이 든다.

 

  누구나 한번은 겪었을 이 경험과 그 포근함을 느끼게 해 주기 위해서는, 태중에서부터 그 아기와 어미를 돌본 사람들이 있어야 했고 하느님께선는 그렇게 마련해 두셨다. 요아킴과 안나 성인이 그러했고,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겼던 양부 요셉 성인도 그러했다.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 아로새겨 주신 삶들이 여러가지 있다. 그 가운데 생명을 지키고 돌보는 것이 어떤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삶이 아니라 우리 육체에 새겨 주신 하나의 프로세스마냥 본래의 삶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면서 언제든지 누군가 한 사람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당연한 것인지를 다시금 알게 된다. 내가 돌봄을 받든,주든 간에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하겠는가,그래서 아직도 세상에 이러한 성인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태중에서부터 죽는 그날까지 누구나 이 세상에서 포근하게 쉬고 돌봐질 수 있길 희망한다.

 

  -이영일 야고보 신부 주교회의 생명운동분부 대전교구 담당-

 

 

 

문득

낯선

이 땅에

 

하느님께서

오시어

늘 함께 계시니

 

오늘도 우리는

참 행복합니다.

 

-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