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비세 비바리니「성녀 모니카」
15세기 중후반,베네치아,아카데미아 미술관
+ 마태오 복음 24,37~44
<너희는 준비하고 깨어 있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노아 때처럼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홍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으면,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말씀의 향기>
아이를 가슴에 묻은 부모들 -변창수 시메온 세종시장애인복지관장-
복지관에서 장애아동들과 함께 캠프를 진행하였습니다. 저도 격려차 둘째 날 방문하였습니다. 진행을 위해 수고해 주시는 선생님들과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참가한 아이들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부모님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 앉아 다른 쪽으로 몸을 돌리는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요구하시는 부모님들의 목소리보다 그분의 뒷모습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분에게 다가가 아이가 누구인지 물어보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머리를 조아리며 "죄송해요"라고 말을 시작하였습니다. "신부님이시죠? 제가 신자인데 냉담중이에요. 죄송해요"라고 말하며 누시울을 붉혔습니다. 아이 때문에 미사 참여가 어렵다고 말하며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성당에 가면 아이가 소리를 지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바람에 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불쾌하게 보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아이에게 집중되는 눈초리가 부담스러웠고,지금은 개신교 모임에 다니게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곳에서는 발달장애(지적,자폐)아이들을 위한 시간과 장소를 마련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지희도 그런 모임을 하고 있다고, 곳곳마다 마련하였다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끄러웠습니다.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대림 시기를 지내면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구유 안의 아기예수님을 보며 고요하고 거룩한 성탄을 그려보기도 할 것이고,거리에 울려퍼지는 아름다운 음악들을 들으며 감상에 젖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환한 조명이 있는 따뜻하고 아늑한 곳에 오신 것이 아니고 추운 마구간,차가운 구유 위에서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굶주린 이,목마른 이,나그네,헐벗은 이,병든 이,감옥에 있는 이들,가장 작은 것'(마태 25,40)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그런 이들이 있다면,내가 그들을 대하는 모습이 예수님을 대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잔치를 베푼다면 '오히려 가난한 이들,장애인들,다리저는 이들,눈먼 이들을 초대'(루카14,13)하여야 합니다.
자식이 먼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부모님들은 소원이 아이를 가슴에 묻는 것입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마음입니다. 내가 아이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가슴에 묻더라도 그래야 한다고... 아이 때문에 미사 참여도 어려워하는 사람에 비한다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는,마음만 먹으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이들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무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잃은 양을 위해 함께 찾아나서야 합니다. 대림 시기를 지내면서 그런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 좋겠습니다. 가장 작은 이들을 초대하면 좋겠습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마태 24,44)
한국 천주교와 이웃 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회 편찬-
46. 가톨릭 신자를 위해서 사십구재를 거행해도 됩니까?
"어떤 이들은 다양한 형태의 환생(reincamation)을 생각하였습니다.온전한 정화에 도달하기까지,전생에 따라 더 높거나 낮은 형태의 새로운 삶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몇몇 동양 종교에 깊이 뿌리박은 이 믿음은 그 자체로서 인간이 죽음의 궁극성을 거슬러 반발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이 본질적으로 영적이며 불멸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제삼천년기,9항)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죽은 사람의 영혼은 대개 새로운 몸을 받아 환생하기 전까지 저승에서 49일 동안을 머무릅니다. 그때 그는 7일마다 저승의 왕들에게서 자신의 선행과 악행에 대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 심판을 통과하면 그는 조건에 맞는 곳으로 환생할 수 있습니다. 심판을 통과하지 못한 영혼은 다음 7일째 되는 날 다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다가 최종 심판을 받고 누구나가 환생하게 되는 날이 49일째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불자들은 죽은 사람이 저승에서 짧게 머물고 더 좋은 조건에서 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머물고 더 좋은 조건에서 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7일에 한번씩 재(齋)을 지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49일째 되는 날이면 이미 죽은 사람은 다음 생으로 환생하여 직접적인 인연이 끊긴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십구재는 불교의 윤회 사상을 바탕으로 한 장례예식이므로, 그리스도교 신자가 이러한 사십구재를 거행하거나 49일째에 위령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회와 교회를 잇는 길잡이 사잇길>
생태학살(에코사이드 ; ecocide)
'제노사이드(genocide)라는 말이 있다. '집단살해(集團殺害)'라고 번역되고,어떤 종족 또는 종교적 집단의 절멸을 목적으로 하여 그 구성원의 살해,신체적,정신적 박해 등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제노사이드의 전형적인 것으로 나치스.독일에 의한 유태인 박해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제주에서 벌어진 4.3공원에 가서 '제노사이드'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제노사이드는 공소시효가 없는 범죄로 지구상에서 가장 무거운 범죄이다. 범인이 살아 있는 한 끝까지 찾아내어 처벌을 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논,밭에 살충제와 제초제를 뿌리는 것은 다른 생명체에게 자행되는 제노사이드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키우는 작물의 생장을 방해하고 갉아 먹는다고 해서 '해충'이라 이름 짓고 그들을 박멸해 버리고자 하는 것이기에 '집단살해'라고 볼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15일 국제형법학회 총회 연설 중에 대기와 토양 그리고 수질을 심각하게 오염 시키고 동물과 식물을 대규모로 파괴하는 행위를 '생태 학살(ecocide)'이라고 부르며 이같은 행위를 저지른 기업에 대해서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공동의 집인 지구를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법적 보호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맞는 말씀이다. 법이 생겨나야 한다. 인간들만을 고려한 법이 아니라 지구의 입장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 법이 만들어지면 인간의 행동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 대형 마트에서 비닐포장지 사용금지법이 지난 4월부터 시행되자 비닐사용이 현저하게 줄고 장바구니 사용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나는 그 법 없이도 지구를 보호하며 다른 생명체를 존중하여 살충제와 제초제를 쓰지 않고 '기피제'로 농사를 짓는 우리농 회원들이 자랑스럽다.
- 강승수 요셉 신부 대전가톨릭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
대림의 촛불
희미하게 잦아든
이 마음에
믿음의 불을 댕겨
굳은 희망을
맑고 투명하게 녹여
찬찬히
오늘을 밝히겠습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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