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강 신촌리공소(1967년)
신합덕본당 관할의 신촌공소(당진시 우강면 신촌리)는 1922년 통계에 나올 정도로 오래된 공동체이다. 공소 강당을 짓기 위해 교우들이 오랫동안 쌀을 모아 1967년에 백기 21가마를 마련하였다. 그래도 모자라자 해외 원조를 청하며 이 사진을 찍었다.
+ 루카복음 6,17.20-26
<행복하여라,가난한 사람들! 너희 부유한 사람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와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온 유다와 예루살렘,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그러나 불행하여라,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불행하여라,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말씀의 향기>
하느님 없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진용 베드로 태안 주임
예수님께서 복음을 통해 행복의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나 복음의 말씀이 쉽게 이해되지 않아 도리어 예수님께 따지고 싶습니다. 왜 가난한 사람과 굶주리는 사람,우는 사람,미움을 받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수 있고, 배불리 먹을 수 있고, 사람에게 인정받으며 실컷 웃고 사랑받으며 살아갈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가난과 굶주림,슬픔과 고통이 아닙니다. 다만 풍요로움에 앞서 하느님 나라가 행복의 우선순위라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십니다. 비록 지금은 가난하고 굶주리고 슬프고 고통 받더라도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씀입니다. 부유해서 돈으로 위로받고 물질에 도취되어 하느님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는,가난하더라도 하느님의 위로를 받고 하느님께 의지하며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 나라를 꿈꾸어야 합니다. 물질과 명예만을 꿈꾸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돈 이외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꿈꾸는 사람은 가난과 굶주림,슬픔과 고통도 모두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늘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참 행복을 바란다면 세상의 성공이 행복의 지름길이라 여겨서는 안됩니다. 참 행복을 바란다면 하느님께서 늘 함께 계심을 믿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감사하며, 하느님 뜻에 따라 하느님 나라를 꿈꾸며 살아가야 합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사람과 돈과 명예가 아니라 우리 마음입니다. 따라서 행복은 아주 가까운 곳에,내 마음 안에 있습니다. 마음 안에 하느님이 가장 윗자리에 계시지 않는다면 오늘 복음은 영영 이해할 수 없는 말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내 마음의 가장 윗자리에 하느님께서 계시다면,행복이 하느님에게서 시작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 없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갑시다.
[찬미 받으소서] 회칙에 대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해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올해 1월에 필리핀을 사목방문 하시던 중,이번 회칙이 올해 12월에 있을 파리 기후변화 회의 참석자들에게 용기를 주어 확실하고 진전된 합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전한 생태'를 위한 지구 생태계의 '보호자'로서의 소명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요구되는 사명이라는 말씀처럼(즉위식 강론 중),지구의 법칙에 따라 피조물을 보호하고 성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모든 이들은 '환경운동가'들만이 아니라,'그리스도인'이며 우리는 자신들에게 태초부터 맡겨진 책무를 다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한국 천주교회와 수많은 시민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행된 4대강 사업이 끝난 이후 사상 최대의 가뭄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녹조 낀 고인 강물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이라는 '핵발전소'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우리는 2011년 일어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로 깨달았습니다.
교황께서 회칙을 통해 말씀하고 계시듯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윤리적인 문제를 도외시하고 행해지는 여러 정책과 개발행위에 대한 공정하고 열린 논의의 장이 우리 사회에서 정책적으로 보장되고 정착될 수 있어야 합니다.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의 반포를 계기로 한국 천주교회와 구성원들은 선의의 모든 이웃 종교인들과 세계의 모든 이들과 더불어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공동의 보금자리','더불어 사는 집'을 돌보는 보호자의 책무를 다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같으면'과 '같아도'의 차이
살다 보면 솔직히 하루에도 여러 번 나도 모르게 이런 내면 독백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나 같으면 저렇게 말하지 않을 텐데.."
"나 같으면 저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을 텐데.."
이런 독백의 끝은 대개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저 사람 도대체 왜 저럴까?"
또한 살다 보면 반대로 이렇게 독백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나 같아도 저렇게 말했을 거야."
"나 같아도 저런 식으로 행동했을 거야."
이런 독백은 대개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저 사람도 나름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루를 보내며 언제부터인가 세어 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어느 쪽 말을 마음속으로 더 많이 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 같으면"이라고 할 때마보다 "나 같아도"라고 말하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상대방에 대한 미움이 줄어들고 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문이 조금씩 열리게 된다는 걸 말입니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생기면 일단 "나 같으면"이라는 말부터 시작해 보는 습관을 줄이고, 대신 "나 같아도"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지 스스로를 찬찬히 돌아보게 됩니다.
평화를 달라고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조금 더 겸손한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나 같아도"를 먼저 시작하면서 그 속에서 진정한 평화의 기쁨을 맛볼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새벽의 이슬도
그것을 움직이는
소슬 바람도
작은 웅덩이의
피라미들도
보리알만 한
꽃들도
주신 행복이어라
모두가 행복이어라.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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