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 오백리길

대청호 오백리길 8구간(선비길)

모든 2 2018. 9. 18. 21:12




2018년 9월 16일 일요일 시청역 5번출구 7시 55분


8구간 선비길
충북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절골~환평리~옥천식품의약품안정청~황골 갈림길~이지당~소옥천교량~소옥천생태습지공원

~양촌~보골(보오리)~옥천폐기물처리장~이평마을~석결마을~옥천군 군북면 석호리 돌거리고개~국원리

총 15.28km, 높이 200m, 4시간 4분




이지당二止堂


옥천 이지당(沃川 二止堂)은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이백리에 있는 건축물이다. 1977년 12월 6일 충청북도의 유형문화재 제42호 옥천이지당(沃川二止堂)으로 지정되었으나, 2013년 1월 18일 현재의 문화재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중봉 조헌(1544∼1592)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서당이다. 처음에는 각신마을 앞에 있어서 각신서당이라고 하였다. 그 후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이 고장의 영재를 모아 교육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송시열은 "산이 높으면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문구의 끝인 지(止)를 따서 '이지당'이라 서당의 이름을 고치고 현판을 써서 걸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세월이 흘러 퇴락한 것을 광무 5년(1901)에 옥천의 금씨·이씨·조씨·안씨 네 문중에서 다시 지은 것이다.

본채와 누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채는 앞면 7칸·옆면 1칸의 강당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이고 양쪽 2칸은 거실이다. 누각은 앞면 1칸·옆면 1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으로, 높은 단 위에 누마루를 두고 주변에 난간을 둘렀다. 대청에는 조헌이 직접 쓴 '각신서당(覺新書堂)'의 현판을 비롯하여 「이지당기」, 「이지당강학조약」 등이 남아있다.
































































































































































옥천 이지당

  조헌(1534~1592)선생이 지방의 영재를 모아 학문을 논의하던 서당이다. 각신마을 앞에 있어서 각신서당이라고 했으나,뒤에 송시열(1607~1689)이 시전詩傳의 "산이 높으면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고,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라는 문구를 빌려 이지당이라 하였다. 그후 광무 5년(1901)에 인근의 금.이.조.안씨의 4문 중에서 정면 7칸,측면1칸의 팔작지붕*집으로 새로 지었다. '이지당기'와 '이지당 강학조약' 이란 편액이 대청에 걸려 있다. 조헌은 호가 중봉,본관은 배천이다. 명종 22년 (1567)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외직을 지냈으며,임진왜란 때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를 되찾고 금산전투에 참여하여 700의병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영의정의 벼슬을 받았고,시호는 문열文烈이다.


* 팔작지붕 :  위 절반은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이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이고 아래 절반은 네모꼴로 된 지붕


조헌(趙憲)

임진왜란 당시 금산에서 700명의 의병을 이끌고 끝까지 분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모두 전사했다. 정치적으로는 기호학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평생을 직언으로 일관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에 격문을 띄우고 의병을 모아 차령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그후 다시 의병을 모아, 8월 1일 영규의 승군과 같이 청주성을 수복했다. 왜적이 충청도와 전라도를 빼앗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금산으로 향했으나, 충청도순찰사 윤국형과의 의견대립과 전공을 시기하는 관군의 방해로 의병이 흩어지고 700여 명만이 남게 되었다. 이들을 이끌고 금산으로 가서 8월 18일 왜장 고바야가와의 군대와 전투를 벌였으나, 인원과 무기의 열세로 모두 전사했다.























































































































































소옥천생태습지란?

대청댐 상류인 소옥천 유역으로 유입된는 점.비점오염 물질을 저감하여 소옥천 수질 개선 및 대청댐 조류발생 저감하고 상수원 수질을 개선하며,자연친화적 수질정화 공법이 적용된 인공습지입니다.


●  서식하는 조류들


◆  여름철새

* 왜가리

머리는 흰색이며 검은 줄이 눈에서 뒷머리까지 이어져 댕기깃을 이루고 다리와 부리는 계절에 따라 노란색 또는 분홍색이다.


* 황로

여름깃은 가슴과 어깨 사이깃이 황갈색이고 머리 꼭대기의 다발깃이 특징적이며 다른 백로보다 작고 통통하다.


* 노랑할미새

수첫의 겨울깃은 암컷의 여름깃과 비슷하며,긴 꽁지가 돋보인다. 나뭇가지나 물가에 앉아 있을 때 꽁지를 위아래로 흔드는 버릇이 있다.


◆  겨울철새

* 쑥새

몸의 윗면은 붉은빛이 도는 갈색 바탕에 검은 새로무늬가 있고 아랫면은 잿빛을 띤 흰색바탕에 갈색 세로무늬가 있다.


* 되새

수컷의 겨울깃은 머리와 어깨 사이가 갈색을 띤다. 암컷은 머리오 어깨 사이가 갈색이고 머리 꼭대기에는 짙은 갈색 세로무늬가 있다.


* 청둥오리

수컷은 머리와 목이 광택 있는 짙은 녹색이고 꽁지깃은 흰색,가운데 꽁지깃만 검정색이며 위로 말려 올라갔다. 암컷은 갈색으로 얼룩진다.



◆  텃새

* 방울새

참새목 되새과의 조류로 수컷의 머리와 가슴.허리는 녹색을 띠고 날개는 갈색을 띠며 노란색 띠가 뚜렷하다.


* 직박구리

머리와 목은 회색으로 각 깃털 끝은 뾰족하고 엷은 잿빛이다. 귀깃은 밤색이며 윗면과 날개는 어둡다.


* 붉은머리오목눈이

몸의 윗면은 붉은 갈색이며 아랫면은 누런 갈색이고 암컷은 색이 연하다. 동작이 빠르며 움직일 때 꽁지를 흔드는 버릇이 있다.


* 물까치

머리와 윗목은 검정색이고 날개와 꽁지는 하늘색이다. 멱은 흰색이며 꽁지는 길고 끝이 튀어나와 있다.




















































































































































































































































 


석호(石湖) 마을 유래비


맑은 물 굽이굽이 휘돌아가고

비단 강 금빛모래 뛰어놀던 곳

어미 소 한가로이 풀  뜯던 벌판

오봉산 소쩍새 가날픈 울음소리

꿈에나 그려지는 아득한 고향



  우리 마을은 원래 군북면 증걸리(增傑里)에 속해있던 마을로 1739년 여지도서(輿地圖書)에 45호가 1890년에 신묘장적(辛卯帳籍)과 1895년 옥천읍지(沃川邑誌)에 34호가 살았던 기록이 있으며 1908년 행정구역 조정시 군북면을  일 소면과 이 소면으로 나눴고 이 소면에 속한 증걸리를 석결리(石結里)와 도호리(陶湖里)로 나누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일 소면과 이 소면을 합하여 다시 군북면이 되었다. 이때 석결리의 석(石)자와 도호리의 호(湖)자를 한자씩 취하여 석호리라 하였다. 석결은 마을 주변에 돌이 많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도호는 지형이 시루모양으로 도자기를 굽던 늪이 있어 증골(甑시루증)이라 불리다가 변천과정에서 증걸 진걸이라 부르게 되었다. 옛 우리 마을에는 1934년 군북면에서 처음으로 개교한 군북국민학교가 위치해 있어 지역주민의 생활근거지가 되었던 곳이며 산에 나무가 없고 흙갈색이 흰색을  띄고 있어 백토산(白土山)이라 불리는 산이 아담하게 있고 조선말 개혁정치가 김옥균의 전설이 서려있는  청풍정(淸風亭)과 기암절벽의 명월암(明月岩)이 대청호에 어리는 풍경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1980년 대청댐 건설로 군북국민학교는 소정리로 이전하였으나 그 후 학생이 줄어 폐교되었고,농경지는 80%가 침수되어 70여호가 이주하였는데 석결마을 함티 아사골 새말과 도호마을 대부분이 물속에 잠겨 현재는 돌고리에 25호와 증걸에 10호가 마을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마을은 대청댐 수몰로 물속에 잠겨버린 고향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주민들이 남아 오순도순 정겹게 살아가고 있으며 옛 추억에 가슴 저며 오는 우리들의 고향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주민과 출향인의 뜻을 모아 유래비를 세운다.

2008년 5월

옥천군 군북면 석호리 주민 출향인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