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그리운 남풍 2/ 도광의

모든 2 2018. 6. 17. 15:27

 

그리운 남풍 2/ 도광의

 

 

잔치가 끝나도 큰방에 둘러앉아 밤늦도록 놀았다. 잠잘 데가 모자라 마루에서 베개 없이 서로 머리 거꾸로 박고 자면서도 소고기국에 이밥 말아 먹는 게 좋았다

 

"언니야, 엊저녁 남의 입에 구린내 나는 발 대고 잤는 거 알기나 아나?"

"야가 뭐라카노, 니 코 고는 소리 땜에 한숨도 못 잤데이"

 

주고받는 말이 소쿠리에 쓸어담을 수 없는 헌것이 돼버린 지금, 등 너머 흙담집 등잔마다 정담은 밤비에 젖어가고 있었다

멀리 시집가서 사는 누님을 하룻밤이라도 더 자고 가라고 이 방 저 방 따라다니며 붙잡던 솔잎 냄새 나는 인정을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

 

해산한 딸 구안(苟安)하고 돌아오는 동리 앞 냇가에 눈물 흔적 말끔히 씻고 가없이 펼쳐진 하늘 쳐다보고는 마음 안에 갇힌 막막한 울음을 걷어내고 마을 안으로 발걸음 옮기는 뼈아픈 가난의 설움을 저승의 번답(反畓)에서나 만나볼 수 있을 것인가

 

- 시집 ‘그리운 남풍(문학동네/2003)’중에서 -

 

 

  김상용의 시조 ‘남으로 창을 내겠소’ 끝 부분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 건 웃지요’란 대목이 얼른 떠오른다. 소박한 전원생활을 노래한 작품이지만 그 보다 '남'쪽의 따뜻하고 밝은 이미지와 삶의 긍정은 시인이 그리워하는 ‘남풍’과 닮아 있어 낙천적 삶의 태도, 훈훈한 인정, 달관의 모습을 넉넉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 사는 세상이 얼핏 아름답고 편리하며 풍요로워 보이지만 정신세계의 가치들을 소홀히 생각하고, 지적 오만에 사로잡혀 예전의 귀한 서정들을 점차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시를 읽고서 생각했다. 대개의 사람들이 '물질만이 전부는 아니며 정신적인 풍요가 더욱 소중하다'고 말들은 그리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길들여진 물질의 망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오히려 지금보다 덜 발달되고 더 가난했을 때는 이웃끼리 훈훈한 인정을 전하며 가족처럼 지냈고, 부모형제지간에도 자신의 생명을 던져 효도하고 우애하는 뜨거운 정이 있었다. 물질과 허명을 얻기 위해 인간 본연의 덕성마저 팔아넘기는 오늘날의 각박하고 까칠한 세상 보다는 차라리 인성의 본향에서 조금은 배고프고 등이 시려도 서로들 애휼하며 살아가던 그날이 훨씬 더 가치있는 건 아닐까?

 

 박용래와 김종삼의 계보를 잇는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 도광의 시인의 봉놋방 같은 따뜻한 정통 서정시에서 지구 한 바퀴 돌아도 좋을 한 자락 훈풍을 맛본다. 황하의 물이 천 년을 흘러온 것도 한 줄기 푸른 물 때문이듯, 세상은 한 가닥 따스한 마음으로 데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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