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사랑법 첫째/고정희

모든 2 2018. 5. 19. 16:46

 

사랑법 첫째/고정희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내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으로

커다란 돌덩이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

 

-  시집 <이시대의 아벨> 중에서 -

 

 

 

 사랑에 있어 지나친 기대감은 자칫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가르침인 것 같군요. 아니 기대는 크게 가져 마음껏 설렘의 진동은 느끼되, 촐싹거려 사랑에 코를 빠트리는 일은 없도록 하라는 주문 같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충분히 알게 되면 믿음이 생기고, 상대를 믿게 되면 그 믿음에 상대가 값해주기를 바라게 되고, 자연히 상대에 대한 기대가 커집니다. 그러나 기대가 커질수록 정작 대상은 오므라들기 십상입니다. 그렇게 되면 '실재'하는 대상과, 자기가 '기대'하는 대상이 같은 사람일 수 없겠지요.

 

 더구나 상대를 채 알기도 전에 자기절제 없이 갖는 높은 기대는 위험천만입니다. 어디 이성간 사랑만 그렇겠습니까. 맹목의 자식사랑이 그렇고, 맹신의 사이비 종교가 그렇고, 황우석 교수 사건의 우상화 과정이 그러했으며, 창업이나 투자에서도 그렇듯 삶의 곳곳에서 기대의 거품이 가져다주는 후유증은 우리가 이미 듣고 보고 느끼는바 그대로입니다.

 

 그대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아니라 그저 내 옆에 발 딛고 선 '사람'이기에 ‘가슴 한 복판에’ ‘돌덩이’ 하나 매달고 진중하게 자기 속으로 그 기대를 가라앉히라고 합니다. 내 기대가 그대 향한 내 사랑을 넘어서지 않게 말입니다. 

 

 어느 누구도 삶 전체를 한꺼번에 변화시키고, 부족함을 채워주며, 사회의 모순을 일거에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에 거는 기대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내일 저녁 ‘대통령과의 대화’ 시간이 있다는데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 신뢰구축이며, 그 바탕 위에 만들어진 기대에다 돌덩이 하나 매달아 놓는 것. 사랑의 보상은 그 돌의 무게에 비례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