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을 낚는 거미는 배가 고프다/권경업
아침 산책길 숲 속 거미줄에
이슬이 걸려 있다
다들 눈부셔라, 눈부셔라 하지만
이슬이 마를 동안
눈먼 먹이감도 걸리지 않을
다 드러나 버린 거미줄
안개 낀 삶의 막막함에, 때로는
밥보다 시가 더 필요한 날도 있겠지만
허공의 어둠을 훑어 이슬을 낚으면
틀림없이 배가 고프다
- 계간 ‘전망’ 2005년 봄호 가운데 -
이슬 걸린 거미줄은 카메라를 소지하고 아침 산책길에 나선 사람에겐 눈부신 피사체다. 하지만 거미로서는 먹이활동의 방해물에 불과할 것이므로 영 재미없는 노릇이다. 더 이상 은밀한 거물망의 구실을 못할 터이므로 ‘이슬이 마를 동안 눈먼 먹이감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교육과학기술부가 올해 전국과학전람회의 대통령상 수상작으로 발표한 '거미는 거미줄의 아침이슬을 왜 제거할까?'는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새롭게 규명하고 있다. 충남의 한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연구 조사한 결과는 거미줄에 맺힌 이슬이 아침햇살에 증발할 것이라는 일반인의 생각과는 달리 거미가 직접 발가락이나 입을 사용해 제거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거미가 이슬을 직접 제거하는 이유는 이슬로 인해 먹이 감지능력이 떨어지고 거미줄이 엉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임을 규명하였다. 이슬이 맺히면 먹이 부착공간이 줄어드는데다 접착력도 75% 정도 떨어지고, 진동수가 적어져서 먹이 감지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로서는 참으로 대단한 발견이라 아니할 수 없다. 결국 시인이 말한 ‘이슬이 마를 동안’은 사실과는 거리가 먼 셈이다. 그러나 시인이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다른 데 있다. ‘안개 낀 삶의 막막함’이 느껴질 때, 거미에겐 먹이보다 이슬 한 방울이, 사람에겐 ‘밥보다 시가 더 필요한 날도 있겠지만’ 내내 이슬만 먹고 살 수야 없지 않겠나. 밤낮없이 ‘허공의 어둠을 훑어’ 이슬이나 낚는다면 ‘틀림없이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픈데, 시인은 배가 고픈데 다시 이슬을 찾는다.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타는 곳에서 '여기 참이슬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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