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슬픈 도시락/ 이영춘

모든 2 2018. 5. 12. 12:19




슬픈 도시락/ 이영춘 
  

 춘천시 남면 발산중학교 1학년 1반 류창수
고슴도치같이 머리카락 하늘로 치솟은 아이
뻐드렁 이빨, 그래서 더욱 천진하게만 보이는 아이.
점심시간이면 아이는 늘 혼자가 된다.
혼자 먹는 도시락,
내가 살짝 도둑질하듯 그의 도시락 속을 들여다 볼 때면
그는 씩- 웃는다
웃음 속에서 묻어나는 쓸쓸함.
어머니 없는 그 아이는 자기가 만든 반찬과 밥이 부끄러워
도시락 속으로 숨고 싶은 것이다.
도시락 속에 숨어서 울고 싶은 것이다.
'어른들은 왜 싸우고 헤어지고 만나는 것인지?'
깍두기 조각 같은 슬픔이 그의 도시락 속에서
빼꼼히 세상을 내다보고 있다



시가 최루로 기능할 때도 있다면 아마 이런 시를 읽고난 뒤끝이 아니겠나. 적어도 그런 여린 마음으로 쏠릴 때가 더러 있어야 사람 아니겠나. 아니면 강건치 못해 저미는 후진 가슴이라도 간직하고서야...
그것도 아니면 선생님의 이런 아이 바라보는 정서에 후원의 시선 정도는 유지하여야...

 

 "시는 나의 구원이며 나의 존재확인입니다" 강원도 시단을 대표해 온 이영춘(66 ·전 원주여고교장)씨는 치열함을 강조한다. 많이 읽고 많이 고민하라며 그리고 시를 껴안고 사랑해야 시도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는 말씀. 그는 무엇보다 '고독'이 글쓰기의 원천이라고 했다. 봉평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원주여고로 진학하면서 외롭고 가난하기 때문에 안으로 안으로 무언가를 삼키며 하얀 백지와 대화해야 했다고 고백한다.


 여고생의 눈물로 얼룩진 글쓰기는 그를 자연스럽게 경희대 국문과로 이끌었으며 1976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음으로 소위 등단 시인으로서의 형식 요건은 완료한 셈이다. 초기에는 주로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의식, 내면의식의 고뇌같은 것을 많이 그려내려고 애썼다. 바로 원초적이고도 근원적인 인간존재 문제를 다룬 '시지포스의 돌'이 그렇다.

 그러나 중반기 이후에는 주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 또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같은 것을 다룬 시들이 많다. '난 자꾸 눈물이 난다'와 바로 이 '슬픈 도시락' 등이 여기에 속한다. 아이 가르치는 현장에서 느낀 그대로를 시로 옮기면서 그런 인간의 문제와 사회의 부조리를 동시에 드러내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사르트르가 '존재가 본질에 앞서는가'로 고민했듯 '시가 본질에 앞서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때 우리는 시의 역할과 효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것은 내앞의 모든 운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과도 같아 어쩌면 주위의 가난과 부조리는 우리 모두에게 형벌과 같은 것일 수도 있으리라. 

 

 이문재 시인에 의하면 시인은 세 부류가 있다고 했다. 첫째, 자기가 쓸 수 있는 시만 쓰는 시인. 둘째, 자기가 쓰고 싶은 시만 쓰는 시인. 셋째, 자기가 써야 할 시를 쓰는 시인. 이라며 그의 진단으로는 첫째와 둘째의 시인들이 대부분이라 한다.

 

 그러면서 자기 재능과 권리에 충실한 시인들 보다 우리에겐 써야 할 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분노 또한 우리가 쓰야할 시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솔직히 말해 '슬픈 도시락'을 읽고 눈물 까지 흘릴 초감성적 독자야 어디 있을까만.

 

 양지에서 만화방창 피어있는 꽃같은 어린이 청소년들로 세상은 가득한 것 같아도 44년 전 '누가누가 잘하나' 연구수업에서 산수 문제 못 풀었다고 앉았던 걸상 들고 벌섰던 고아원 아이 영철이의 글썽이는 눈동자를 기억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서늘하다.

 

 이러한 것들이 나와는 무관한 것들 이라 매몰찬 시선으로만 봐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음지의 아이들 기침소리 들리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