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1994년, 문학동네>중에서 -
지금은 사용하는 사람이 예전처럼 많지는 않아 흔하게 보진 못하지만 불붙은 연탄 한 장으로 뜨끈한 아랫목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 이 여인을 돌로 쳐라" 간음한 여인을 앞에 두고 바라사이 사람들에게 하신 예수의 어법처럼 시인은 우리들 위선의 무리에게 말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더 이상 쓸모없는 연탄재에서 단박에 사랑의 극치를 읽어내었으므로 그 날카로움은 단 세 줄로 충분하였을 것이나 대신 같은 시집 '연탄 한 장'이란 시에서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라며 그 연탄이 지난 밤 내 방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을 연탄처럼 까맣게 잊어버리고 걷어찰 수는 없다며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한 덩이 쓸쓸하게 남는"이란 설명을 사족처럼 붙여두었다.
우리 가운데도 마치 의인인 것처럼 '연탄재' 함부로 걷어차는 사람이 있다. 얼핏 용기 있는 자의 강단 있는 행동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발길질은 아무 것에나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이 아니다. 너 발랑 미끄러져 다리 한 짝 분질러질지도 모를 얼어붙은 눈길에 뿌려질 연탄재 무심히 차버리거나 한때 눈물을 흘리며 위로받았을지도 알 수 없는 창녀에게 침을 뱉는 결벽은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조차 경계할 일이다.
한적한 오후 조주 선사께서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함께 토론을 하여 보자. 누가 더 낮은 차원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좋습니다. 선생님이 먼저 기준을 세우십시오" "나는 한 마리 당나귀이니라" "저는 당나귀 볼기짝입니다" "나는 당나귀 똥이니라" "저는 당나귀 똥 속의 벌레입니다" "너는 그 속에서 무엇을 하느냐?" "한여름 휴가를 보냅니다" "씨팔,먹이나 가져오너라" 사람들은 자신의 삶 자체가 바뀌기를 바라지만 진짜로 바뀌어야 할 것은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라는 지당한 말씀을 한 해가 저무는 이무렵 뼛속까지 새롭게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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