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줄탁 / 김지하

모든 2 2018. 5. 12. 11:25




탁 / 김지하

 
저녁 몸속에
새파란 별이 뜬다
 
회음부에 뜬다
가슴 복판에 배꼽에
뇌 속에서도 뜬다
 
내가 타죽은
나무가 내 속에 자란다
나는 죽어서
나무 위에
조각달로 뜬다
 
사랑이여
탄생의 미묘한 때를
알려다오
 
껍질 깨고 나가리
박차고 나가
우주가 되리
부활하리
 

 
  ‘줄탁동기’란 본시 불가에서 나온 말로  ‘줄’은 병아리가 막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려 할 때 안에서 쪼는 것을 말하며,  ‘탁’은 같은 때에 암탉이 밖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이른다. 세상에 첫발을 디딜 때 안팎의 관계가 이러해야 하듯이 깨침을 위한 단계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이를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요즘은 이 말이 종교불문하고 기독교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것을 듣는다. 인간을 찾아오시는 하나님과 응답하는 인간이 만나는 지점을 두고 같은 말을 쓴다. 김지하의 이 시에서도 불교의 윤회와 기독교의 부활이 혼재해 있다.

 

 모든 일에는 순서와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놓치면 성사가 안 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새 시대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도 바로 이 타이밍이다. 때를 놓치거나 너무 앞서게 되면 많은 희생이 따르고 비극적 상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음을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많이 알고 있다. 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가르침이자  매력적인 이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줄탁동기에도 선행의 조건이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잠언처럼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이라든지,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선물을 받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듯이 그리고 장단이 맞아야 하듯이 타이밍을 교감하고, 시그널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채널을 잘 맞추어 경청함도 중요하리라.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부활하여 나무 위에 조각달로 뜰 수 있다면 기꺼이 이 지상의 껍질을 깨고 박차고 나가(죽어) 우주가 되겠다고 절규하며, 탄생(죽음)의 미묘한 때를 알려달라고 한다. 마침맞은 줄탁의 탄생과 소멸과 부활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기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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