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 / 김지하
저녁 몸속에
새파란 별이 뜬다
새파란 별이 뜬다
회음부에 뜬다
가슴 복판에 배꼽에
뇌 속에서도 뜬다
가슴 복판에 배꼽에
뇌 속에서도 뜬다
내가 타죽은
나무가 내 속에 자란다
나는 죽어서
나무 위에
조각달로 뜬다
나무가 내 속에 자란다
나는 죽어서
나무 위에
조각달로 뜬다
사랑이여
탄생의 미묘한 때를
알려다오
탄생의 미묘한 때를
알려다오
껍질 깨고 나가리
박차고 나가
우주가 되리
부활하리
박차고 나가
우주가 되리
부활하리
‘줄탁동기’란 본시 불가에서 나온 말로 ‘줄’은 병아리가 막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려 할 때 안에서 쪼는 것을 말하며, ‘탁’은 같은 때에 암탉이 밖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이른다. 세상에 첫발을 디딜 때 안팎의 관계가 이러해야 하듯이 깨침을 위한 단계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이를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요즘은 이 말이 종교불문하고 기독교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것을 듣는다. 인간을 찾아오시는 하나님과 응답하는 인간이 만나는 지점을 두고 같은 말을 쓴다. 김지하의 이 시에서도 불교의 윤회와 기독교의 부활이 혼재해 있다.
모든 일에는 순서와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놓치면 성사가 안 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새 시대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도 바로 이 타이밍이다. 때를 놓치거나 너무 앞서게 되면 많은 희생이 따르고 비극적 상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음을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많이 알고 있다. 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가르침이자 매력적인 이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줄탁동기에도 선행의 조건이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잠언처럼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이라든지,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선물을 받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듯이 그리고 장단이 맞아야 하듯이 타이밍을 교감하고, 시그널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채널을 잘 맞추어 경청함도 중요하리라.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부활하여 나무 위에 조각달로 뜰 수 있다면 기꺼이 이 지상의 껍질을 깨고 박차고 나가(죽어) 우주가 되겠다고 절규하며, 탄생(죽음)의 미묘한 때를 알려달라고 한다. 마침맞은 줄탁의 탄생과 소멸과 부활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기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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