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김남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 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 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로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 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 시집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미래사, 1991)
‘전사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남주는 그 스스로도 혁명시인임을 자처했다. “나는 혁명시인/ 나의 노래는 전투에의 나팔소리/ 전투적인 인간을 나는 찬양한다// 나는 민중의 벗/ 나와 함께 가는 자 그는/ 무장이 잘 되어 있어야 한다/ 굶주림과 추위 사나운 적과 만나야 한다 싸워야 한다// 나는 해방전사/ 내가 아는 것은 다만/ 하나도 용감 둘도 용감 셋도 용감해야 한다는 것/ 투쟁 속에서 승리와 패배 속에서 그 속에서/ 자유의 맛 빵의 맛을 보고 싶다는 것 그것뿐이다.”라고 그의 시 <나 자신을 노래한다>에서 돌직구를 날리고 있다.
그는 첫 시집 <진혼가>를 비롯해 여러 권의 시집을 남겼다. 그의 시를 읽노라면 특유의 깔깔하고 빳빳한 음성에서 뿜어내는 한과 깡으로 전율케 한다. 돈황 박물관의 부패되지 않은 미라를 보는듯한 섬뜩함과 감동이 함께 느껴진다. 그가 지상에서 불렀던 노래들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의 노래가 ‘강물’이고 ‘불빛’이기는 했을까. 그 자신도 “그러나 어디에 있는가, 나의 날개, 나의 노래는 나의 햇살, 나의 바람, 나의 혼은 어디에, 어디에 내가 있는가?”라며 시 <봄>에서 묻고 있다.
내일 2월13일은 김남주 시인(1945~1994)의 24주기가 되는 날이다. 지난 24년 동안 그를 추모하지 않고 지나친 적은 없었다. 물론 시대 상황에 따라 그 분위기의 결은 달랐을 것이다. 지난 10일 시인을 기리는 추모제가 망월동구묘역에서 열렸다. 이날 오후 서울에서 열린 한국작가회의 총회에는 오전 추모제에 참석하고 상경한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원도 몇몇 보였다. 김희수 광주전남작가회의 고문은 추모사를 통해 “김남주 시인의 ‘시는 무기가 되어야 하고, 시인은 전사가 되어야 된다’는 말이 아직도 섬뜩하게 살아 있다"고 했다.
이어서 "김남주 시인이 바라던 민주화, 조국통일의 세상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돌아보게 해 부끄럽다"고 말했다. 4년 전 20주기 심포지엄에서 염무웅 평론가는 “김남주의 시 중에는 비슷한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도 있고 지나치게 과격하거나 도식적인 표현도 없지 않지만, 한국문학사를 통틀어서 가장 강력하고 감동적인 전투적 정치시를 쓴 중요한 시인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평가했다. 그렇듯 그는 민족문학사에서 자유와 통일을 가장 강렬한 목소리로 노래한 시인이다.
‘통일의 길’에 그의 ‘선동’시를 다시 듣는다. 그가 보여준 행동하는 양심과 뜨거운 목청은 '그날'이 올때까지 언제까지나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으로 흐를 것이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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