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자 / 요시마스 고오조
기쁨은 날마다 저만치 멀어져간다
네가 일생동안 맛보았던 기쁨을 다 세어보는 것이 좋을 거다
기쁨은 분명 오해와 착각 속에 싹트는 꽃이었다
까맣게 그을린 다다미 위에서
하나의 주발 가장자리를 살짝 어루만지며
낯선 신의 옆모습을 상상하기도 하며 몇 년이 지나버렸다
무수한 언어의 축적에 불과한 나의 형체와 그림자는 완성된 듯하다
사람들은 들국화처럼 나를 보아주는 일이 없다
이제 언어에 의지하는 일 따위는 그만두자
실로 황야라고 부를 만한 단순한 넓은 평야를 바라보는 것 따위
어림도 없다. 인간이라는 문명에게 아무리 불을 빌려달라 하더라도
그것은 도저히 헛된 일이다. 만일 돌아갈 수 있다면
이미 극도로 지쳐버린 영혼 속에서 굵고 둥근 막대기를 찾아내어
거친 바다를 횡단하여 밤하늘에 매달린 별들을 헤쳐 나아갈
노를 하나 깎아내어
돌아가자
사자와 송사리가 생몸을 부대끼며 서로 속삭이는
저 먼 창공으로
돌아가자
- 시선집『어느 날 아침, 미쳐버리다』(들녘,2004)
일본의 현대시인 요시마스의 시세계는 언어 자체에 대한 고민과 시의 한계에서 오는 세계에 대한 절망적 인식, 문명 비판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가 파국을 향해 치닫던 1939년에 태어난 그는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세계대전에서 자신의 조국이 패망하는 걸 목도하였다. 또한 그가 자라면서 본 것은 전쟁의 참상과 후유증으로 피폐화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의 현대 문명을 향한 첨예한 비판 의식은 아마 그런 유년의 경험에서 영향 받았으리라.
그는 큰 재앙이 닥치기 전에 문명을 찢어버리자고 소리쳤다. 현대 문명이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기관차와 같아서 어떻게 하든 제동을 걸지 않으면 그 끝에는 지옥의 참상이 기다릴 뿐이란 절망적 인식을 갖고 있다. 더구나 시를 쓴다는 것이 무슨 쓸모일까를 회의하며 ‘이제 언어에 의지하는 일 따위는 그만두자’고 한다. ‘인간이라는 문명에게 아무리 불을 빌려달라 하더라도 그것은 도저히 헛된 일’이란 것도 알기에 그의 절망은 고조되어 스스로 ‘어느 날 아침, 미쳐버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재앙을 재촉하는 것은 물질문명만이 아니다. 로마인들의 타락이 로마의 멸망을 재촉하였듯이 인간성의 타락은 인류의 문명을 뿌리째 흔든다. 그러므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인간본성으로 회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 아침 이윤택 씨의 공개사과 기자회견을 보면서도 내내 들었던 생각이었다. 그의 말처럼 ‘부끄럽고 참담한’ 일들이 그만에게만 해당하지 않겠기에 말이다. ‘미투’ 운동은 아픈 상처를 치유하려는 인간의 본성 회복 운동이다. 가슴에 손을 얹어 조금이라도 찔리는 남성들이라면 스스로 광범위한 참회 운동에 동참해야할 것이다.
4년 전 소치올림픽 프리에서 전날의 실수를 만회하는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음에도 일부 일본누리꾼들은 그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둔 아사다 마오에게 "망명해라", "할복해라", "수영해서 일본 와라"등의 막말을 쏟아낸 반면에 당시 한국 누리꾼들은 "그래도 힘내세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했다" 등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다. 인간성의 타락은 험한 막말로부터 싹튼다. 어제 이상화의 은메달은 충분히 멋지고 훌륭하며 자랑스럽다. 금메달을 딴 고다이라와 함께 트랙을 돌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이제 됐다. '저 먼 창공으로 돌아가자'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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