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진다/ 김현숙
개나리 꽃망울
터진다
감나무에 새잎
터진다
개구리 입
터진다
놀이동산에 팝콘
터진다
아이들 웃음
터진다
남에서
북으로
봄, 봄, 봄
터진다
- 제8회 <푸른문학상>동시부문 ‘새로운 시인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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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터럭 나고 수십 년 동안 이 땅의 계절변화를 지켜본 바로는 겨울 지나면 반드시 봄이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기다리지 않아도 어느덧 봄이고, 봄은 올해도 우리 곁으로 돌아와 어김없이 만화방창이다. 입었던 옷들이 얇아지고 감각되는 봄의 풍미도 확실히 다르다. 봄을 마중하는 꽃으로는 복수초도 있고 동백도 있고 매화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개화를 ‘터진다’라고 표현하기엔 왠지 본격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저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다는 느낌이다. 목련을 필두로 개나리 벚꽃 진달래와 같은 꽃들이 속속 화들짝 피어나야 ‘터진다’고 해도 손색이 없다. 개나리는 북상하여 서울까지 다 피었다는 소식이다.
이어서 진달래도 삼천리강산을 물들일 것이다. 이들보다 보폭이 좀 늦은 벚꽃도 일주일 뒤에는 여의도를 점령할 것이다. 대구 동촌유원지에는 이미 분홍빛 벚꽃이 팝콘처럼 다 터졌다. 감나무에 새잎이 터지기 시작할 때 일괄적으로 조망되는 나무의 풍경도, 나무를 품고 있는 흙빛도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저마다의 색을 드러낼 준비를 다 마쳤다. 겨우내 움츠렸던 작은 생명들이 시나브로 기지개를 켜는 것과 동시에 나타나는 뚜렷한 변화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는 폴짝폴짝 활동을 개시한지 좀 되었고 입도 터졌다. 벌 나비 또한 날개를 점검하면서 채비에 분주하다.
이와 동시에 아이들 웃음이 터지고 탄성이 터지고 환호성이 터질 것이다. 프로스포츠의 막이 오르면서 곳곳에서 함성도 터진다. 이 동시처럼 리듬감과 생동감 있게 세상의 모든 봄이 차례로 톡톡 터지고 있다. 남에서 북으로 봄 봄 봄 잭팟 터지듯 좋은 일만 터지길 희망한다. 그러나 터져서는 절대 안 될 것도 있다. 무엇보다 이 봄에 대형사고 터지는 일만큼은 일어나지 말아야겠고 분통 터지는 일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이 있어서도 곤란하다. 기왕 터진 ‘미투’도 바람직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터진다’는 말의 부정적인 기류는 얼씬거리지 못하면서 긍정적인 기운만 가득하길 소망한다.
올해는 ‘남에서 북으로’ ‘봄, 봄, 봄’이 터져 한반도의 봄이 시작되는 원년이 되어야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중요한 변곡점이 될 3차 남북정상회담이 4월27일로 확정되었다. 이 날을 기점으로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남북관계 발전 및 교류·협력 등이 포괄적으로 속속 타결되기를 기대한다. 안보 위기 고조가 상시화 구조화된 한반도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겠다. 전쟁과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공동 번영을 논의하는 그 자체가 봄의 절정이 아니고 무엇이랴. 평화와 안정을 넘어 벚꽃 폭죽 터지듯 통일의 꽃길로 나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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