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나의 소망/황금찬

모든 2 2018. 4. 13. 20:23



나의 소망/황금찬

 

결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리라

그렇게 맞이한 이 해에는

남을 미워하지 않고

하늘같이 신뢰하며

욕심 없이 사랑하리라

소망은

갖는 사람에겐 복이 되고

버리는 사람에겐

화가 오느니

우리 모두 소망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후회로운 삶을 살지 않고

언제나 광명 안에서

남을 섬기는 이치를

배우며 살아간다

선한 도덕과

착한 윤리를 위하여

이 해에는 최선을 다 하리라

밝음과 맑음을

항상 생활 속에 두라

이것을 새해의 지표로 하리라

 

-월간 《좋은 생각》2008년 1월호-


  새해를 맞이하면 사람들은 크든 작든 꿈과 소망을 갖는다. 1918년 강원도 속초 출생으로 우리나이 올해 100세가 되신 국내 최고령 현역 시인 황금찬 선생께서 피력하신 소박한 새해 소망이다. 이 시는 10년 전에 발표한 것이지만, 새해의 지표가 그리 달라지지는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90의 나이에 36번째 시집을 내고 기독신앙적인 시를 주로 써온 선생의 시를 두고 일부에서는 작품성 운운하지만, 1947년 등단하여 70년 동안 멈추지 않는 시작의 길을 걸어온 선생의 육체적 정신적인 강인함과 열정 앞에 무슨 의미가 있으랴.

 

  기독교적 신앙을 기반으로 정결한 마음을 갖고서 남을 미워하지 않고 ‘욕심 없이 사랑하겠다’는 작은 소망이 건강하고 맑게 느껴진다. ‘소망은 갖는 사람에겐 복이 되고, 버리는 사람에겐 화가 오느니 우리 모두 소망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 모두 잘 아시다시피 믿음 소망 사랑은 기독교의 3대 덕목이다. 한 장수 연구가는 또 다른 기독교적 정신의 하나인‘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더하여, 이러한 것들을 실천하는 크리스천의 삶이야말로 건강과 장수에 크게 이바지한다는 처방을 내놓은 바 있다.

 

  법정스님께서도 일찍이 ‘자기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마찬가지로 자기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하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행복과 불행은 누가 갖다 바치거나 안기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고 찾는 것이며, 그것은 곧 소망을 갖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하셨다. 소망을 갖는 자 마땅히 행복할 것이라며 ‘자신의 생각이 곧 자신의 운명임을 기억하라’고 덧붙였다. 그 생각은 아집이 아니다. 솜털보다 가벼운 눈송이에 꺾이는 소나무처럼 자신의 고집과 욕심과 미움이 꺾이기를 소망한다고 하셨다

   

  우주의 법칙은 자력과 같아서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오지만,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와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춘다고 하셨다. 밝은 삶과 어두운 삶은 자신의 마음이 밝은가 어두운가에 달려 있고 그것이 우주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돕는다”는 박근혜의 말에는 밝은 마음도 온유함도 없는 원시적이고 샤머니즘적인 주술에 불과했다. 우주의 기운은 능력도 없고 지혜롭지도 않으며 겸손하지도 않으면서 덮어놓고 달랜다고 몰아줄 리는 없다.

 

  ‘지혜로운 사람은 후회되는 삶을 살지 않고, 언제나 광명 안에서 남을 섬기는 이치를 배우며 살아간다’는 시인의 말씀도 그와 일치하는 삶이라 하겠다. 사람은 지력이나 체력에 앞서 감정부터 늙는다고 한다. 소복소복 눈 내리는 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올 것 같은 하얀 새 달력 위에 그리고 내 마음 위에 소망이라 쓰고 괄호를 연다. 괄호 안에 ‘밝음과 맑음’이라 적고 괄호 닫고 그 옆에 ‘선한 도덕과 착한 윤리를 위하여 최선을 다 하리라’ 백수를 맞은 노 시인의 소망을 그대로 이어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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