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칠성동 저녁노을/류상덕

모든 2 2018. 4. 12. 01:34



칠성동 저녁노을/류상덕

 


을 감고 귀 열었다. 얘야 문 두드려라.

은행나무 받쳐 든 그 너머에 저녁노을

처마에 걸어 놓았다 자죽자죽 밟고 오렴

 

저 빛살 지려나보다 어스름이 내리는데

이 산 저 산 실을 걸어 그리운 말 다 풀어도

가슴엔 고운 빛깔이 너를 밝혀 떠 있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어느새 속이 삭은

논고동 같은 몸에 여기저기 금이 갈 뿐

채워도 바람만 부는 칠성동은 쓸쓸하다

 

-제8회 이호우 시조문학상 수상작(1998)-



  1940년생인 류상덕 시인은 65년 공보부 신인문학상, 6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연이어 당선되어 비교적 이른 나이에 문단에 이름을 올린 원로 시조시인이시다. 2002년 대구 오성중학교 교장을 마지막으로 정년을 맞은 뒤 유유자적한 은퇴생활을 즐기면서 시작에 몰두해 왔다. 대구사범 시절부터 배구선수로 활약한 경력이 있는 등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체격에 호쾌한 성격, 평소 등산을 열심히 다니면서 누구보다 자기관리를 잘 하셨던 분으로 알고 있는데, 아뿔싸 어제 느닷없는 부음을 접했다.

 

  몇 년 전부터 ‘죽음’을 다룬 작품들이 눈에 자주 띄긴 했으나, 이렇게나 빨리 갑작스럽게 선생 자신의 일로 닥치리라고는 전혀 예기치 못한 뜻밖의 부고였다. 선생의 작품 ‘그리고 별리(別離)’에서 “심인고등(心印高等) 운동장에서/ 무심히 바라본 벽/ 그것이 영대병원(嶺大病院)/ 영안실/ 경계란 걸/ 한 개비 담배를 물고/ 돌아서서 느꼈다// 문으로 가려놓은/ 이승과 저승의 두께/ 앞발은/ 빛을 밟고/ 뒷발은 죽음에 묻혀/ 이대로 눈을 감는다/ 사는 것이 이런 건가// 악수를 나누면서/ 서로 잔을 주고받는/ 우리의 몸짓으로도/ 채울 수 없는 말을/ 감추고 떠나고 나면/ 억새풀만 흔들릴까

 

  정말 ‘사는 것이 이런 건가’ 이런 일을 마주할 때마다 자각하게 되는 생과 사의 거리, 그 허망의 간극 앞에서 끊었던 담배를 다시 빼어 물고 싶은 심정이다. 해가 바뀌자마자 내 ‘뒷발’에도 죽음의 응달이 어른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며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고 했지만, ‘저녁노을’과 ‘어스름’은 시나브로 완벽하게 내려앉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벽 하나 사이로 연결된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은 어쩌면 통 큰 생을 이끄는 지혜가 될 수도 있으리라. 우리가 다 떠난 뒤에도 오래남아 흔들릴 억새풀의 쓸쓸함을 관조하며.

 

  칠성동은 대구 북구에 위치한 동네로 재래시장인 칠성시장과 옛 야구장을 포함한 시립운동장이 먼저 떠오른다. 최근엔 아파트 단지가 밀집된 주거지역으로 부상된 곳이라 사실 노을에 관한 한 특별할 게 없는 동네이다. 그런데 조선 초기 학자 서거정이 당시 대구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10수의 시로 남긴 ‘대구 십경’에는 이 노을에 관한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맨 마지막 제10경 ‘침산만조(砧山晩照)는 바로 칠성동과 인접한 침산의 저녁노을을 예찬한 시다. “물은 서쪽으로 흘러 산머리에 다다르고, 푸르른 침산에 맑은 가을빛이 드리우네. 해질녘 바람에 어디서 다듬이소리 급하게 들리는가.사양에 물든 나그네 시름만 더하네.”

 

  침산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느끼는 나그네의 감흥을 그대로 펼쳐 보인 서정적인 시다. 시상을 띄우는 소재로 강물(지금의 신천), 해질녘 바람, 다듬이소리, 석양, 나그네 시름 등으로 쓸쓸하게 느껴지면서도 노을이 주는 미학을 짧게 잘 드러낸 시어들이다. 류상덕 시인의 ‘칠성동 저녁노을’ 역시 근사치의 느낌으로 전이되어 온다. 그리고 추측컨대 이 무렵의 시인에겐 막 얻은 손자가 있었지 싶은데, 그 혈육에 대한 사랑이 처마에 걸어 놓았다 자즉자즉 밟고 오렴이란 동시 풍의 표현으로 저릿하게 배어든 것 같다

 

  시인의 수심은 쓸쓸하지만 그리운 사람을 끈끈하게 그리워하며 살아갈 나날에 대한 마음의 염려와 다스림이 아니었을까. 다정다감하면서도 강단이 느껴지는 노 시인의 모습이 노을을 배경으로 어른거린다. 그저께 <시와시와>를 부치고 오는 12일 칠성동 ‘시인보호구역’에서 가질 예정인 신년행사를 알릴 겸 문자안부라도 넣을까 어쩔까 딸막딸막하던 차에 듣는 부음이라 더욱 기가 막힌다. 건강하고 안온하게 잘 계신 줄 알았는데, 저승의 노을이 사부작사부작 길게 뻗어 선생의 앞발을 걸고 넘어뜨려 덮칠 줄이야... 선생께선 ‘저 빛살이 지려나보다’ 진즉 그 ‘어스름’을 예감했겠으나, 지역원로시인의 부재로 인한 허탈과 상실감은 크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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