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선미/박성우
선미는 내 여자 친구다
피아노도 치고 싶고
시도 쓰고 싶다는
선미는 내 여자 친구다
머리 감고 거울을 보다가
잠자리에 들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선미,
잠에서 깨어
뭉텅뭉텅 빠진 머리카락을
한 움큼씩 주워 버리는 아침이
가장 서글프다는 선미,
선미는 내 여자 친구다
글씨 한 자 한 자를 쓸 때마다
진땀이 뻘뻘 난다는 선미,
선미는 몸이 좀 불편한 내 여자 친구다
편지 한통을 쓰고 나면
온몸의 기운이 쭉 빠진다면서도
또박또박 삐뚤빼뚤 눌러 쓴 손 편지를
꼬박꼬박 보내오는 선미,
피아노도 치고
가끔은 시도 쓰는 선미,
선미는 내 여자 친구다
-시집『난 빨강』(창비, 2010)-
아동을 위해 쓴 동시와 어른들이 읽는 그냥 시 사이에 청소년 시라는 것이 있다. <난 빨강>은 6년 전 ‘창비’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발간하고 있는 청소년시집 가운데 하나다. 시인은 청소년의 상징으로 ‘연두’와 ‘빨강’을 중요한 키워드로 내세우면서 그들의 일상과 문화, 고민과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연두’는 미완성을, ‘빨강’은 개성을 상징한다. 시인은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내 이야기처럼 공감 가는 이야기들을 쉽게 들려줌으로써 시가 자신들의 삶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전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시에서의 말하는 이와 그의 ‘여자 친구 선미’는 모두 고등학생쯤 될 것이다. 선미는 ‘몸이 좀 불편한’ 정도를 넘어 많이 아픈 상태로 봐진다. 그 아픈 여자 친구에게 따뜻한 관심과 우정을 드러내며, ‘선미는 내 여자 친구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화자가 참으로 갸륵하고 의젓하다. 요즘엔 하도 조숙하여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청소년의 25%가 초등학생 시절 이성친구와의 첫 교제 경험이 있다고 하고, 키스, 애무 등 이성과의 스킨십 여부는 전체 중고생 35%가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청소년들은 과거와 달리 매우 개방적이어서 그 나이에 이성 친구와 사귀는 것을 당연시한다. 우리 때는 어림없는 노릇이지만 길을 가다보면 교복을 입은 채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걷는 청소년들을 쉽게 본다. 노골적인 스킨십도 종종 목격한다. 이제 청소년들의 이성교제는 당연한 권리이며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 인격체인 그들의 본능적 이성교제를 말릴 근거나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생리적 변화에 따라 이성과 성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하는 사춘기가 아닌가. 대체로 고1만 되면 사내아이 고환은 토란만큼 영근다.
이성에게 관심을 갖고 사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신체와 정신의 발달과정상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어른들의 염려스런 시선과 허용기준으로 봤을 때의 ‘건전성’이다. 남녀 사이에 친구관계가 가능한가라는 케케묵은 논제가 있다.이는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된 사안은 아니다. 이 물음에 절반이 넘는 성인이 친구와 성관계하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청소년들에게는 좋은 친구와의 신중한 사귐으로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어 학업이나 진로에 도움이 되는 이성교제를 기대한다.
확실히 청소년기의 이성교제는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위협적이긴 하다. 여자 친구 선미를 자랑스러워하는 시에서의 이 친구만큼은 ‘건전성’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어느 면에서는 어른 보다 낫다. 어른들은 ‘시근’이 덜 덜었다고 염려하지만, 고2나 고3 쯤 되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 다 알고 사리판단도 할 나이다. 가끔 ‘정유라’처럼 사고치는 아이도 없지 않으나 극소수에 불과하다. 자기 책임과 의무가 주어지면 오히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더 신중하고 진지해질 수 있다.그런 의미에서 18세 선거연령 하향조정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반드시 상정시켜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평역(沙平驛)에서/곽재구 (0) | 2018.04.12 |
---|---|
너무 아픈 사랑/류근 (0) | 2018.04.12 |
슬픈 도시락1/이영춘 (0) | 2018.04.12 |
칠성동 저녁노을/류상덕 (0) | 2018.04.12 |
용산성당/조용미 (0) | 2018.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