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3년 주보

예수,마리아,요셉의 성가정 축일 2013년 12월 29일 (가해)

모든 2 2021. 7. 24. 00:01

 「가거라」오세정 신부(2013)

주님의 부름에 따라 한달음에 갈 수 있기를..그곳이 어디든..

 

 

+ 마태오 복음.2,13-15,19-23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이집트로 피신하여라.>

 

  박사들이 돌아간 뒤,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헤로데가 죽자,꿈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그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다가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나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말씀의 향기>

 

아빠 뜻,엄마 뜻,내 뜻,아니 하느님의 뜻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마태 6,17)

-박상병 루도비코 전의 주임

 

  오늘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주일이면서,예수,마리아,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이 시기에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복음에는 요셉 성인이 주도적으로 성모님과 예수님을 이끌고 가는 여정이 전해집니다. 보통 요셉 성인이 주도적으로 성모님과 예수님을 이끌고 가는 여정이 전해집니다. 보통 요셉 성인하면 침묵의 성인으로 비춰질 정도로 복음에도 그리 많이 드러나지 않고, 나머지 생애도 전해지는 것이 적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만은 꿈 속에서 천사의 전갈을 받고,성모님과 예수님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고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여정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성모님의 모습도 복음에 그리 많이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모님께 등장하는 구절들을 살펴보면 하느님의 말씀 혹은 예수님의 이해할 수 없는 말씀과 행동을 무시하지 않고 마음에 새기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예수님을 잉태하리라는 마음에 새기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예수님을 잉태하리라는 부분에서도,시메온 예언자의 엄마로서 듣기 힘든 예언을 들었을 때도, 성정에서 아들을 잃었다가 찾았을 때도,예수님께서 카나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실 때도 성모님은 늘 그러하셨습니다.

 

  어쩌면 요셉,마리아,예수님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삶을 사신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세 분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대로 움직이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셉 성인도 천사의 전갈을 듣고 움직였고, 성모님은 늘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신 것이지요. 예수님이야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 싶습니다.

 

  성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요? 아빠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도,엄마의 뜻대로 하는 것도,아이가 바라는 대로 하는 것도 아닌,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노력 말이지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사람이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 그냥 그 사람의 뜻대로 해 주는 것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가정 속에서 요셉성인과 성모님 그리고 예수님께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이 중심이었고,하느님의 뜻이 우선이었습니다. 그것이 바탕이 될 때 오늘 독서의 말씀들이 참된 의미를 지닐 것입니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바탕이 될 때 오늘 독서의 말씀들이 참된 의미를 지닐 것입니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모실 때 우리의 선한 행동들이 그 빛을 더욱 밝고,오래 지속시킬 수 있다는 것을 요셉,마리아,예수님의 성가정에서 배우는 하루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청소년 바로보기(56)

 

청소년들과의 소통을 위한 제안

 

  지난 대림 제 3주일에 본당 소공동체의 날 행사를 했었고, 가정 소공동체를 거의 매주 빠짐없이 했던 세 가정이 기꺼이 체험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세 가정 모두 자매들이 가정 소공동체 모임을 하자는 제안을 했었고, 초반에는 남편과 아이들이 귀찮다고 투덜대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매주 말씀을 나누면서 작은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부모님의 복음 나눔을 들으며 '예수님 말씀이 들려? 나는 안 들리는데'하며 울먹였다는 유치원생과 자기가 가정 소공동체 반장을 맡다 소공동체 모임을 진행하고 기도하면서 하느님이 좋아졌다는 초등학교 2학년 형제의 순순한 이야기를 들며 마음이 흐뭇했었습니다. 또 가족끼리 포옹하기,이웃에게 먼저 인사하기,감사기도 하기, 살아계신 예수님 만나기 등의 공동활동과 개인활동을 실천하면서 일주일을 특별하게 지낸날이 잘 이끌어주신 부모님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면 이런 부모님이 자신의 부모님인 것이 자랑스러웠다는 남매의 진솔할 고백을 들을 땜 마음으로 전해져오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말이 많아  다툰 적도 있었지만 이 시간을 통해 마음을 나눌 수 있어 행복했고,복음적 개인 활동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남매의 이야기를 통해 말씀과 삶을 함께 나누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주일에 30-1시간 정도 시간을 내서 가족들이 함께 둘러않자 말씀을 나눈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눔으로써 이 가족들이 얻어낸 결실은 결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값진 보물이었습니다.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의 입에서 이런 분들이 자신의 부모님인 것이 자랑스럽고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말이 나온다는 것,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족들이 모습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들이 마음을 열지 않아 자녀들과 대화가 되지 않는다'며 걱정하는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과 마음이 만나지 못했으면 이렇게 벽이 쌓였겠습니까? 그리고 그 벽이 어찌 하루아침에 허물어 질 수 있겠습니까?  마음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기회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가족드링 하나같이 바쁘다는 이유로,공부를 이유로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피하려 합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들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고,각자는 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오종진 신부.복수동 주임-

 

 

미사 속 숨은 보화

 

거룩하시도다(Sanctus)8 - 구조와 내용 5

 

  노래이 후반부(Benedictus)인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찬미 받으소서,높은데서 호산나!"라는 구절은 시편 118장 26절과 루카 19장 38절에서 따운 부분입니다. 루카 복음서를 보면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다윗 왕국을 재건할 메시아이심을 기대하며 환호하였습니다. 백성들의 기대와는 전혀 달랐지만,주님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를 바치면서 구원의 신비를 드러내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환호는 이천년 전 사람이 되시어 우리 안에 오시는 주님을 환영하고 환호하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이충무의 행복나침반(5)>

 

부끄러움 지우기

감사의 손끝은 하늘로,

반성의 손 끝은 내 자신으로..

 

올 한 해 제 마음 안에 가장 깊게 남아 있는 말을 적어 봅니다.

 

  "내가 힘들다고 말하기는 쉽다.

  내가 남들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기는 더 쉽다.

  그러나,나 때문에 남들이 힘들다고 말하기는 정말 어렵다."

 

  "내가 힘들다고 말하기는 쉽다." 어떠세요? 오늘 하루 몇 번이나 힘들다는 말을 하셨나요? 하루 종일 해야 할 일은 언제나 산더미 같고, 해도해도 일은 줄어들지 않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여유 있어 보이는데,나 혼자만 이리저리 뛰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우린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내가 남들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기는 더 쉽다!" 어떠세요? 오늘 하루 몇 번이나 다른 사람들의 뒷담화를 하느날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셨나요? 일이 힘들면 잘 쉬면 되지만,사람 때문에 힘들어지면 단순히 쉬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나를 힘들게 하는 '남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매일같이 내 마음 속에서 솟구쳐 올라 옵니다.

 

  "나 때문에 남들이 힘들다고 말하기는 정말 어렵다." 어떠세요? 오늘 하루 몇 번이나 원망의 손가락을 나 자신을 향해 돌려 본 적이 있나요? 타인을 향한 수많은 원망과 질타에도 조금도 망설임이 없으면서,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서는 한없이 인색한 내 초라한 자화상..그런 모습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지 부끄럽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감사 기도의 손끝이 아무리 하느님을 향해 있다 해도,반성의 손끝이 자신을 향해 있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성당에 가서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인다 해도,내면의 오만을 숙이지 않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는 걸까요? 한 살을 더 먹는 것이 아니라 한 점의 부끄러움을 지워가는 그런 새해를 기다려 봅니다.

 

 

 

성가정을

본받아

아름다운 가정

이루게 하소서.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

 

 

어머니의 기도  -영혼의 샘터(바오로딸)中..

 

어머니는 내가 잠들기 전에

꼭 내 곁에 와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주의 기도를 다 하신 다음

어머니는 방의 불을 끄고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기도하는 동안

잠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따라 하기도 하고,

또는 이미 잠이 들어 있기도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기도를 하시면

내 마음은 평화와 사랑이 가득차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나의 잠자리는

그지없이 편안하고 행복하였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내가 세상에 태어난 날부터 시작하여

내가 어른이 되어 결혼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는 몰랐습니다.어머니의 기도가 얼마나 크고거룩한 정성인가를..내가 그것을 깨달은 것은어른이 되고 어머니가 되고나서였습니다.
어머니의 기도야 말로 하느님의 마음이며 하느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이 거룩한사랑의 기도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난 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하신 것처럼 밤마다 아이를 위해 주의 기도를시작하였습니다.
이따금 잊어버리거나 피곤할 때에는수십 년 동안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힘이 솟아나고기쁨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기도가 하느님이 우리 가정에 주신 가장 큰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내 아기가 커서 어머니가 되면내가 해준 것처럼 그도 자기 아이를 위해 기도를해 줄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