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7년 주보

예수,마리아,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2017년 12월 31일 (나해)

모든 2 2017. 12. 31. 22:30

 

천안 두정동 성당(천안서부교회)

본당설립:2003.1.14/주보 성인:성가정

 

+ 루카 복음 2,22-40

 

<아기는 자라면서 지혜가 충만해졌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성령께서 그 위에 머룰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줄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말씀의 향기>

 

모든 가정이 '성가정'입니다!  - 한정현 스테파노 교구 시노드 사무국장

 

  루카복음 1-2장에서는 아기 예수의 탄생과 소년 예수의 유년시절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부활이라는 "기쁜 소식"의 핵심을 다루고 있는 복음서가 이전의 경전들이 전해 준 전승의 빛 안에서 '육화,강생의 신비'를 조명하고 묵상하는 이야기로 기록됩니다.

 

  이 구절들 안에 두 가정이 소개되고,그 중 한 가정은 우리신앙인들에게 '나자렛 성가정'으로 알려져 오늘 전례의 의미를 밝혀 줍니다. 복음서 구절들을 마리아,요셉,아기 예수,즈카르야,엘리사벳,요한,시메온과 하나 등 인물들을 다루며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묘사하고,가정이 어떻게 하느님의 구원역사에 함께하는지 성찰하도록 도와줍니다.

 

  복음서에서 먼저 소개되는 즈타르야와 엘리사벳의 가정은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조건에 있던 가정이고,이어 소개되는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은 아기를 낳으면 안되는 조건에 있던 가정이었습니다. 전자는 "사람들 사이의 치욕을 주님께서 없애 주시는"(루카 1,25) 체험을 한 가정이고,후자는 "당신 종의 비천함을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그분 안에 기뻐 뛰는"(루카 1,47-48) 체험을 한 가정입니다. 두 가정의 공통점이 있다면,'주님께서는 완벽과 충족을 통해서가 아니라,결핍과 부족함을 통해 당신의 구원을 이끄심을 고백한다'는 점입니다.

 

  그 두 번째 가정 즉,요셉,마리아,예수의 공동체를 우리 신앙인들이 '성가정'으로 기억하고 있음은 그래서 의미가 더합니다.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로 오시는 분이라면,촌스런 고장 베들레헴의 초라한 조산소 말구유가 아닌,조금 더 안정되고 고결하고 흠없이 멋들어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위풍당당한 '성가정'의 모습을 보여 주셨으면 좋으련만! 율법에도 저촉되고,편치 않은 혼인조건에,성전에서 잃은 아들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그러다가 크고 작은 다툼도 일어나는 그런 가정! 일상의 무게에 짓눌리고,급기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뜨는 생의 비극이 함께한 가정! 이 가족을 두고 의롭고 독실하며,하느님을 섬기며 일상을 사는 이들(루카 2,25-39:시메온과 하나)이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가정들과 다르지 않은 이 가정이 하느님의 뜻을 품은 '성가정'이 됩니다.

 

  모든 가정엔, 다른 가정과 동일시 할 수 없는 고유한 역사가 존재합니다. 모든 조건과 바램이 충족되어 '성가정'일 수도 있지만,가정이 지닌 아픔과 시련,결핍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우리 인간의 나약함을 통해 당신의 구원 역사를 이끄시는 주님께 의지하며,믿음과 희망,사랑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가기에 '성가정'입니다. 그렇기에 '나자렛 성가정'이 모든 신앙인에게 모범이고,희망이고,위로와 격려이기를 이 '성가정'축일에 특별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via의 시선(수고하셨습니다.)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습니다. 그럭저럭 살면 안되는 이유를 묻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열심히 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럭 저럭 살 때 느끼는 불편함의 이유를 찾습니다.

 

  지난 시간,열심히 산다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열심히 살지 못한 나를 먼저 기억합니다. 지난 시간 속에 "그때 그리고 거기서"에 묶여 있는 나를 봅니다. 그리고 되뇌입니다. "그 때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이런 선택을 했다면," 다시 올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나는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나를 위축킵니다.

 

  올 해도 이른 아침,바다와 산을 찾아서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매년 미디어에는 똑같은 모습이 전해지겠지요. 이른 아침,바다와 산 정상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환호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말하는 소망들,어제와 다른 오늘의 태양을 경험하는 사람들,그런데 내가 달라졌기 때문에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말하는 소리들이 오늘의 태양을 다르게 경험하게 만드는 오늘이라면 ..'아니기를 희망하지만,사실 피곤합니다.

 

  열심히 살기 위해서 이른 시간 집을 떠납니다. 그런데 열심히 산다는 것의 '열심'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자신의 삶의 격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그 '열심'은 "Not Topia"를 위한 어리석은 추동일 뿐입니다.

 

  그럭저럭 살아야겠습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배웠습니다.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저는 낭비되는 시간과 헛되이 보내는 시간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행위를 선택함으로써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두커니 앉아있다고 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고하지 않음으로 지금 여기를 비워내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를 합니다. 비워낸 공간에 채울 수 있는 다른 것을 찾습니다.

 

  무작정 걷는 시간이 아니기를 희망합니다. 걷다가 의자를 만나면 잠시 앉아서 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걷다가 아름다움을 감탄할 그 어느 곳을 만나면,그곳에 오랜시간 머물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년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어지는 시간의 선물 속에서 멋진 춤을 추는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기와 한 장의 의미

 

 

  아는 분 가운데 문화재 시설 수리 일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주로 문화재 '기와'를 관리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다소 특이해 보이는 일이라,어떻게 해서 기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여쭤봤습니다.

 

  "건물에서 중요하지 않은 곳은 없지만,기와 한 장이 갖는 의미는 정말 특별해요.

  건물 한 채가 기와 한 장 때문에 무너질 수도 있거든요."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하지 못한 저를 위해 그분은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어느 날 지붕 위에 올라가 봤더니 기와에 가는 금이 가 있었어요. 바로 그 금간 곳을 통해서 빗물이 지붕 아래로 스며들고,건물의 나무 기둥까지 썩게 하는 거예요. 기와만 잘 관리해도 건물은 튼튼하게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죠."

 

  기와에 대한 그분의 자부심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기와 한 장이라도 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관리 하는 것이 바로 문화재를 지키고 보존하는 일이라는 믿음이 확고하셨습니다.

 

  그분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주님의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제 '마음의 집'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집에 문제가 생겨 도움을 요청드릴 때마다,주님은 기둥이 썩어 가고 있다고 기둥을 바꿔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조용히 기와 한 장의 금간 곳을 찾아 그곳을 메꾸어 주셨던 것입니다.제 눈엔 보이지도 않는 그 빈틈을 채워 주신 겁니다.

 

  주님,한 해 동안 여기저기 하자가 많은 제 마음의 집을 돌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는 주님께서 지붕에 오르시는 수고를 덜어 드리는 그런 착한 사람이 되어 보렵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걷다보면

생각보다

늦은 걸음

 

그래도

여기까지 도착한

나에게

기쁨으로

환영해 주고 싶다.

 

그래 너는 참 잘했어.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