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상홍리공소/수채화
안종찬 바오로/한국영상대학교 교수
+ 마르코 복음. 1,12-15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그때에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말씀의 향기>
주님께서 기도와 단식으로 나누어 주신 행복,이젠 우리가... -박정빈 레오 청소년사목국 제2차장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뒤에 성령에 의해 광야로 내보내지십니다. 그리고 그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십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 아무것도 없는 곳이지요.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분명 전지전능하신 힘을 가지고 계셨을 텐데,편안하게 하느님 나라를 세상에 선포하지 않으셨을까요? 기적을 행하시고 위로와 힘이 되는 말씀으로 사람들이 쉽게 당신을 따르게 할 수 있었을 텐데,왜 어렵고 힘든 광야로 가시고, 또 그곳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을까요?
우리는,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광야'라고 표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지만,각자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고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 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들이 있지만 없는 듯,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어렵게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광야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구원해야 할 대상이지요. 너무나 사랑하셔서 구원하러 오신 그 '우리'가 광야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당신 스스로 그 안으로 들어가셔야만 했습니다. 사랑의 힘으로 사탄의 유혹을 이겨 내시고, 끝없는 고독과 싸우면서 아버지와 만나셨고, 그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이겨 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광야'라 부르는 세상에서 외치셨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도 분명 유혹을 받으셨습니다.세상 안에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받는 수많은 유혹들,그 자체가 죄가 아님을 안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주님 구원의 대상으로 선택된 우리,그리스도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 유혹을 통해,그리고 회개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성장해야 합니다. 광야에서 예수님께 보여 주신 대로 그 모든 유혹들을 이겨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기도와 단식으로 복음을 소유한 행복을 당신 혼자 소유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이미 행복해졌지요. 그러니 당연히 우리 역시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이렇게 믿는 사랑과 행복을 기도와 단식을 통해,광야라 불리는 세상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보잘것없는 우리지만,우리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자선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유혹을 이겨 내시면서 우리에게 회개를 요구하고,복음을 전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내는 이 사순 시기는 '거룩한 40일',즉 모든 그리스도인의 40일 간의 연중 피정시기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수난 당하실 주님 안에 고요히 머물면서,유혹의 승리자이신 주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우리도 지금 온갖 시련과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희망의 씨앗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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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 시작한 지 3년이 다 되어가는 회사동료 홍대리와 박대리가 저녁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홍대리가 이런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합니다.
홍 대리: 정말 이해가 안가!
박 대리:또 뭐가?
홍 대리:사람들은 왜 잘해 주면 오히려 무시하지?
박 대리:그러게 너무 잘해 주지 말라니까..
홍 대리:그럼 일부러 까칠하게 대해야 돼?
박 대리: 그렇다고 일부러 그럴 건 없지.
홍 대리:도대체 어떻게 해야 돼? 뭐가 맞는 거야?
박 대리: 글쎄..
누군가에게 잘해 주기 시작하면 처음엔 고마워해도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 되는 건 그나마 견딜 만합니다. 더 많은 걸 해달라고 안 하는 게 어딥니까?
어렸을 때 하나를 주면 둘로 돌려받을 거라 배웠습니다. 청춘이었을 땐 하나를 주면 최소한 하나는 돌려받을 거라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과 더불어 살다보니 하나를 주기 시작하면 둘을 줘야 하고, 둘을 주면 넷을 줘야 할 거라는 이상한 셈법을 터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처세법을 배워갔습니다. "주는 것도 사람봐가면서 줘야 된다. 내가 준 만큼 돌려받을 생각은 애초에 포기하는 게 속 편하다. 한번 주기 시작하면 계속 줘야하므로 주는 일도 함부로 시작해선 안 된다."
내가 필요해서 상품을 구입해도 포인트를 적립해서 돌려주기까지 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유독 사람 사이에서는 돌려받는 일이 점점 힘들어집니다. 뭔가를 베풀었음에도 상대방 마음에 고마움이 적립이 되기는커녕 더 많은 욕심만 적립되어 돌아옵니다.
한 쪽 뺨을 때리면 한 쪽 뺨마저 내어 주라 하시는데,그럴 용기보다는 아예 처음부터 뺨 맞을 일을 안 만들 계산을 하며 사는 게 진짜 행복인지,이게 정말 사랑인지 뒤돌아보게 됩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기도합니다.
이 땅의
감추어진 모든 진실들이
모두 밝혀져서
피는 꽃 한 송이도
서럽지 않게 하소서.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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