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5년 주보

주님 수난 성지주일 2015.3월 29일(나해)

모든 2 2015. 3. 30. 14:07

여사울 성지/수채화

안종찬 바오로.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마르코가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입니다. 14,1-15,47

 

○ 파스카와 무교절 이틀 전이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속임수를 써서 예수님을 붙잡아 죽일까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백성이 소동을 일으킬지 모르니 축제 기간에는 안 된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의 일이다. 마침 식탁에 앉아 계시는데, 어떤 여자가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 몇 사람이 불쾌해하며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 여자를 나무랐다.

◎"왜 저렇게 향유를 허투루 쓰는가?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을 터인데."

○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이 여자를 가만두어라. 왜 괴롭히느냐? 이 여자는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 시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으니, 너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들에게 잘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바른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수석 사제들에게 팔아넘기려고 그들을 찾아갔다. 그들은 그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그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무교절 첫날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며 이르셨다.

† "도성 안으로 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 층 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 그때 곁에 서 있던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사제의 종을 내리쳐 그의 귀를 잘라 버렸다.

 

 

  <말씀의 향기>

 

  십자가를 통한 영광  -안성준 도미니코 천안 성정동 보좌

 

  오늘은 성지가지를 축성하면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이룩하신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기념하는 성주 간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2개의 복음을 통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수난받고 죽음 당하시는 예수님의 수난기를 듣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은 십자가상 수난과 죽음뿐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그 십자가를 지시고자 스스로 고난의 장소인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몸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모든 사람들의 속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제1독서에서 주님의 종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주님의 종이 주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신다는 믿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지는 시련과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것처럼, 예수님 역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당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며 당신의 목숨을 사람들에게 내어놓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파스카의 희생양이 되어 모든 백성의 죄를 위해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느님 계획에 자신을 내어 맡긴 예수님의 모습을 제2독서는 그리스도 찬가라는 이름으로 아주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같은 분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인간을 구하시려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자기 비움을 보여주십니다. 사람을 진실로 사랑하시지 않았다면 이렇게 자신을 비우지 못했을 것이고, 겸손과 희생으로 종의 모습을 취하시면서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께 순종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하느님께서는 드높여 주시고 모든 사람과 피조물로부터 찬미와 영광을 받도록 해 주십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 역시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살아가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람이 되셨고 그 사람의 죄를 위해 선하신 예수님께서 죽으시어 그 사람을 살리셨듯이 우리 역시 이웃을 위해 자신을 비우고 겸손과 희생으로 이웃 사랑의 삶을 살았을 때, 자신을 죽음으로써 이웃의 잘못과 허물을 덮어주고 그들을 살린다면, 그때 예수님을 들어 높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어 영원한 생명과 부활로 우리를 영광스럽게 변모시켜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주간을 시작하는 오늘,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그 계획을 순종하며 스스로 고난을 향하여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걸어갈 것을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이루어졌듯이, 부활의 여정 역시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거쳐야만 이르게 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수도회 소개(3) -'봉헌 생활의 해' 맞아 교구 설립 수도회를 소개합니다.

 

살레시오회

 

   살레시오회는 청소년들의 스승이요, 아버지라고 불리는 요한 보스코 성(St.John Bosco,1815~1888)에 의해 1859년,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창립된 교황청립 성직 수도회이다. 요한 보스코 창립자의 가르침에 따라 신앙심과 사랑에 바탕을 둔 건전하고 원만한 인격형성을 이루도록 청소년을, 특히 주로 가난하고 버림받은 청소년을 교육한다. 청소년들의 신앙 여정을 동반하는 가운데 어른인 교육자와 아이들이 함께 성인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청소년에게 친구요 아버지처럼 다가갔던 요한 보스코 성인은 청소년들과의 거리감을 없애기 위해 '보스코 신부님'이라는 명칭 대신에 '보스코 신부'라고 불리기를 원하여 '돈 보스코'라고 널리 알려졌는데, 이는 이탈리아어로 '보스코 신부'라는 뜻이다.

 

  살레시오회는 현재 세계 130여 개 나라에서 약 16,000명의 살레시오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큰 수도회 중 하나이다. 창립자 요한 보스코 성인처럼 청소년들에게 하느님 사랑의 전달자요 표징으로서 머물기를 원하는 살레시외회 사제와 수사들은 살레시오 가족들을 포함하여 세상 곳곳에서 40만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3개 공동체에서 120명의 살레시오 회원들이 학교, 직업학교, 대안학교, 청소년센터, 청소년수련원, 그룹홈, 본당 등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호흡하며 활동하고 있다.

 

   '살레시오'란 온유의 성인, 애덕의 박사로 불리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St.John Bosco,1815~1888)의 성을 가리킨다. 요한 보스코 성인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청소년 영혼구원 사업을 보다 효과적으로 실현하는데 가장 필요한 마음 자세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이 지녔던 친절하고 온유한 마음이라고 생각하였기에,자신이 창립한 수도회 명칭 역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성을 따라 '살레시오회'라고 칭하였다. 따라서 오늘날 돈 보스코의 제자들을 가리켜 '살레시안'이라고 부르며,살레시안들이 추구하는 영성도 '돈 보스코 영성'이란 용어보다 '살레시오 영성'이란 용어를 더 즐겨 사용한다.

 

   살레시오 영성은 '나에게 영혼을 달라, 나머지는 다 가져가라.'(라틴어:Da mihi animas cetera tolle)라는 돈 보스코의 모토 안에 축약되어 있듯이,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착한 목자의 사목적 사랑과 열정이 그 핵심이다. 그리고 돈 보스코가 청소년들의 영혼구원을 위해 창안한 예방 교육학은 이성. 종교. 친절이라는 세 영역 안에 종합되어 있다. 살레시오 영성은 청소년들이 뛰어놀던 운동장과 그들이 공부하던 교실 안에서,그리고 가난한 청소년들의 일터에서,돈 보스코와 청소년들 사이의 관계 안에서 확대되고 무르익어 갔듯이 현재도 운동장,교실,그리고 성당에서 살레시오 회원들과 청소년들 사이에서 사랑으로 실현되고 있다

 

  '청소년 여러분, 여러분은 젊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랑받기에 충분합니다." - 돈 보스코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55)>

 

냉정과 열정 사이

 

 

    눈만 뜨면 새로운 아이디어 상품이 쏟아집니다. 오늘은 '애완견 렌털'사업이 생겨났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사업은 신종 사업이 아니라, 생각보다 오래전에 시작된 것이었더군요.

 

  2007년에 미국에서 시작되어 2009년에 국내에 도입된 이 사업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들이 분분했습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편리한 서비스냐는 의견에서부터 애완견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대여해주는 장난감이냐는 비난도 있었죠.

 

  이런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몇 년 전 신문에서 읽었던 애완견에 관련된 흥미로운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그 기사는 애완견들도 슬퍼하는 사람을 보면 사람처럼 위로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실험은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우선 영국 런던 대학교 심리학과 연구원들이 품종과 나이가 각기 다른 애완견 18마리를 선정합니다. 그다음엔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을 울고, 말하고, 노래하는 세 그룹으로 나누어 그 18마리 강아지 앞에 서게 합니다.

 

  이때부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애완견들이 어김없이 울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마치 위로라도 하려는 것처럼 20초 동안 코를 비비거나 핥는 행동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애완견 주인들이건 전혀 모르는 사람이건 결과는 늘 똑같았습니다.

 

  연구자들의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개들이 우는 사람에게 순종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개들에게도 인간처럼 감정이입의 본능이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노래하거나 말하는 사람보다 울고 있는 사람의 슬픈 감정이 더 먼저 전달돼 그 감정에 반응하는 거라는 거죠.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누군가 울고 있는 것을 무덤덤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나만 울지 않으면 세상이 잘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하며 단순하게 살아가는 제 모습을 애완견들이 본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하느님은 함께 가라고 생명 옆에 또 하나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는 혼자 가기 위해 내 옆의 생명을 나를 위해 존재하는 물건처럼 취급합니다. 말을 못 하는 강아지도 누군가 슬퍼하면 그 슬픔을 함께하려고 하는데, 정작 같은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끼리는 그저 서로의 슬픔을 먼 산 보듯 무표정하게 바라볼 뿐이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수난의 십자가

몸으로 받아들여

그 가신 길을 따라

이 시대를 진심으로

걷게 하소서.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함께하는 이야기 마당>

 

빌려 쓰는 지구

 

  주방 세제를 샀더니 '빌려 쓰는 지구'라는 말이 쓰여 있다. 자자손손 살아갈 지구를 우리가 잠시 빌려 쓰고 있으니 세제를 아끼라는  말 같았으나 수질오염의 대표 격인 주방세제를 아끼라는 말 같았으나 수질오염의 대표격인 주방세제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의아했다. 가가호호 주방에서 외칠 것이 아니라 수질하고 상관없는 사제를 만들든 아예 만들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하느님이 주시고, 후손들도 살아갈 지구니까 깨끗이 쓰다 물려줘야 하는데 우리의 삶 자체가 쓰레기를 양산하는 일이니 문제인 것이다.

 

  '차경(借景)'이라는 말이 있다. 빌려보는 경치라는 뜻으로 옛 선비들이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수고하지 않고 누리는 안복을 표현한 말이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도 문만 열면 기막힌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하다는 말이다. 자연에 대한 외경에서 비롯한 찬사라 할지라도 정물처럼 앉아 밖의 풍경을 즐기는 것조차 미안해서 빌려보는 것이라 이름 붙인 조상들의 속 깊은 마음이 미소 짓게 한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우리는 사물과 인연을 맺기 마련이다. 그 인연조차 갈무리하지 못하면 내가 쓰던 물건들은 남에게 모두 쓰레기일 뿐이다. 날마다 어루만지던 애장품이나 일 년에 한두 번 입을까 말까 하는 옷이나 언젠가 긴요하게 쓸지 몰라 다락에 두었던 살림살이나 종언을 하기 전에 그것들의 거취를 정리해주는 것이 사물에 대한 예의까지는 아니라 해도 살아온 세월에 대한 도리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쓰던 물건들은 생전에 스스로 정리해야 한다. 대대로 물려줄 귀중품이면 가치를 일깨워서 자손에게 간직하기를 이르고, 아직 쓸 만한 물건이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주어야 하고, 마땅히 없애야 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버리거나 태워서 사물과의 결별도 정신이 온전할 때 해야 한다.

 

  이 세상에 온전히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으리오. 재물도, 지위도, 영화도, 학식도, 인연도 모름지기 우리는 모두 차용하여 쓰다 필경엔 그대로 버리고 가는 것을...

 

-남상숙 소화 데레사/대흥동성당-

 

 

아래 글은 You Tube에서 '주님의 기도  풀이(우루과이 한 작은 성당 벽에 적혀 있는 글)'

 

주님의 기도

 

하늘에 계신 이라고 하지 마라

세상일에만 빠져있으면서

 

우리라고 하지 마라

너 혼자만 생각하면서 살아가면서

 

아버지라고 하지 마라

아들 딸로 살아가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라고 하지 마라

자기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살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라고 하지 마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라고 하지 마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라고 하지 마라

죽을 때까지 먹을 양식을 쌓아 두려고 하면서

저희가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라고 하지 마라

누구에겐가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라고 하지 마라

죄 지을 기회만 찾으면서

 

악에서 구하소서 라고 하지 마라

악을 보고서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이라고 하지 마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