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그리고 시

아무르 강가에서/박정대

모든 2 2016. 3. 8. 21:46





아무르 강가에서 / 박정대


그대 떠난 강가에서

나 노을처럼 한참을 저물었습니다.

초저녁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낮이

밤으로 몸 바꾸는 그 아득한 시간의 경계를

유목민처럼 오래 서성거렸습니다.


그리움의 국경 그 허술한 말뚝을 넘어 반성도 없이

민가의 불빛들 또 함부로 일렁이며 돋아나고 발밑으로는

어둠이 조금씩 밀려와 채이고 있었습니다.

발밑의 어둠

내 머리 위의 어둠,내 늑골에 첩첩이 쌓여 있는 어둠

내 몸에 불을 밝혀 스스로

한 그루 촛불나무로 타오르고 싶었습니다.


그대 떠난 강가에서

그렇게 한참을 타오르다 보면 내 안의 돌맹이 하나

뜨겁게 달구어져 끝내는 내가 바라보는 어둠 속에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날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초저녁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야광나무 꽃잎들만 하얗게 돋아나던 이 지상의 저녁

정암사 적멸보궁 같은 한 채의 추억을 간직한 채

나 오래도록 아무르 강변을 서성거렸습니다.

별빛을 향해 걷다가 어느덧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다비/강만


비우고 비우고 또 비우고

평생을 비운 스님은

죽어서 나비가 되었다

폴폴폴 불꽃 위를 날아서

미리내를 건넜다


너에게 기우는 그리움 비우지 못해

죽어서도 나는 날지 못할 것이다.






꽃 보자기/이준관


어머니가 보자기에 나물을 싸서 보내왔다

남녘엔 봄이 왔다고.

머리를 땋아주시듯 곱게 묶은

보자기의 매듭을 풀자

아지랑이가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남녘 양지바른 꽃나무에는

벌써 어머니의 젖망울처럼

꽃망울이 맺혔겠다

바람 속에선 비릿한 소똥 냄새 풍기고

송아지는 음메 울고 있겠다

어머니가 싸서 보낸 보자기를

가만히 어루만져 본다.

식구들이 밥이 식을까봐

밥주발을 꼭 품고 있던 밥보자기며,

빗속에서 책이 젖을까봐

책을 꼭 껴안고 있던 책보자기며,

명절날 인절미를 싸서

집집마다 돌리던 떡보자기며,

그러고 보면 봄도 어머니가

보자기에 싸서 보냈나 보다.

민들레 꽃다지 봄까치풀꽃

한 땀 한 땀 수놓아 만든

꽃 보자기에 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