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의 폭력
장영식
핵발전소를 가동하면 배출되는 연료가 있습니다. 보통 '사용후핵연료'라고도 하며,'고준위핵폐기물'이라고 부릅니다. 이 고준위핵폐기물은 사람이 스치기만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게 되는 치명적인 핵폐기물입니다. 문제는 이 고준위핵폐기물의 반감기가 약 10만 년입니다. 사람의 평균 수명이 100세라고 가정했을 때, 최소한 10만 년을 보관해야 그 반감기를 맞아 다시 오만 년을 저장해야 합니다. 오만 년의 시간이 지나 다시 반감기를 맞게 되고, 그 반감기의 시간을 계산하면 상상하기 힘든 시간 동안 저장해야 합니다. 이렇게 위험한 핵쓰레기를 저장하는 이른바 '맥스터'라고 부르는 핵스레기장 건설 문제로 이루어진 '공론화'가 뜨거운 감자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핵쓰레기장 재공론화 문제는 박근혜 정부 때로 올라갑니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공론화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한 엉터리 공론화라고 해서 문재인 정부는 국정과제 60번으로 재공론화를 약속해 국정과제 핵심 사항으로 삼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부가 핵쓰레기장 재공론화를 추진하면서 더 많은 문제점들을 노출했습니다. 재검토위원회 위원들이 재검토 과정에서 산업부의 일방적인 일정에 반발하여 사퇴했습니다. 더 나아가 재검토위원회 정정화 위원장이 위원회 해체를 요구하며 사퇴하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그는 사회 기자회견에서 재검토위원회와 지역실행기구가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결정적인 사퇴 배경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래도 산업부는 공론화를 강행했습니다. 마치 군사작전을 펼치듯이 공론화 장소를 마음대로 바꾸고,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등 파행을 겪었습니다. 공론조사를 진행했던 '능률협회'의 여론 조작 문제까지 나왔습니다. 이에 따라 공론조사를 진행한 '능률협회'의 조사 결과에 수많은 단체와 개인이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지난 6월 초 '한길리서치'가 경주시 양남면 주민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반대가 55.8%나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같은 지역의 재검토위원회 '공론조사'결과는 시민참여단 39명 중에서 단 1명만이 반대(2.6%)했습니다. 시민참여단 중에도 월성핵발전소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다수포함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불공정한 가짜 공론화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시점인 8월 20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종회를 주재하면서 핵폐기물 처리 방안에 대한 공론조사를 수용해 핵쓰레기장 추가 건설을 결정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산업부가 추가 건설 근거로 내세운 '의견 수렴'은 지난 7월 24일 재검토위가 발표한 공론조사 결과입니다. 재검토위는 경주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81.4%가 핵쓰레기장 추가 건설을 찬성했다는 것입니다. 반대는 11% 모르겠다7.6% 등으로 조사됐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재검토위는 월성핵발전소에서 7km 안에 있는 울산시 북구 주민들은 설문조사에서 배제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10만 년의 약속'이라는 고준위 핵쓰레기장 건설을 이렇게 엉터리로 결정하는데 시민사회단체와 월성핵발전소가 있는 경주시 양남면 주민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상홍 월성원전 핵쓰레기장 추가건설반대 경주시민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청와대 앞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는 공론화란 이름으로 이제 아무 것도 하지 마십시오. 더 이상 시민들의 기대,열망,노력,땀과 믿음을 빼앗지 마십시오. 공론화 폭력을 중단하십시오. 군부독재의 폭압보다 민주정부의 공론화 폭력이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합니다. 공론화 폭력이 너무 무섭습니다."라고 분노했습니다.
황대권 고준위핵폐기물 전국회의 공동대표는 <탈핵신문>에 기고한 '고준위핵폐기물 공론화를 위한 제언'에서 "현재 대한민국의 전력수급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다. 오히려 전력이 남아서 걱정이다. 고준위핵폐기물 공론화가 결과를 낼 때까지 필요하다면 핵발전을 중단해야 한다. 고준위핵폐기물 처분에 관한 기본법은 핵발전에 대한 찬반을 떠나 지금까지 생성된 핵폐기물을 처분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국민들의 합의를 거쳐 성공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공론화는 그야말로 국민적 합의를 말합니다. 핀란드와 스웨덴에선 고준위핵폐기물을 저장하는 핵쓰레기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사업자가 지질조사 결과부터 처분장 설계,처분용기 기술, 안정성 평가 등 모든 정보를 공개했습니다. 규제기관 역시 규제심사보고서를 전부 공개했습니다. 투명한 정보의 공개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반대하자 설득했습니다. 그 기간이 30년이 넘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불과 500명이 채 되지 않는 시민참여단에 토론 장소까지 바꾸어가면서 비밀주의와 온라인 등으로 그것도 불과 몇 차례도 되지 않은 토론과 설문조사로 결정을 발표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보다 훨씬 못한 비민주적 과정과 조작된 의견수렴의 지표로 추진할 것을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폭력입니다. 밀실과 졸속의 공론화는 폭력이며 기만입니다 그것도 '민주정부'라고 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입니다. 지금이라도 정부의 발표는 백지화해야 합니다. 미래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촛불혁명정부'라고 말하는 문재인 정부의 책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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