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래술을 담그며/이원규
매실주에 취했다가
깨어보니
미점마을의 봄이었다
앵두술을 담그며
그리운 친구의 이름을
또박또박 써넣고
매암차박물관의 비파를 따다가
비파술을 담글 때도 그러하였다
친구들 까맣게 잊은 날도
선반 위의 술들은 묵묵히 익어가고
앵두와 친구의 이름
매실과 또 다른 친구의 이름
비파와 또 다른 친구의 친구의 이름
저희들끼리 어깨동무하고
에헤라, 소주와 몸을 섞는 동안
늦가을
빗점골의 다래를 따다가
술을 담는다
아무도 오지 않더라도
다래술은 익어 가리니
먼 곳의 친구를 생각하며
그 이름을 쓰고 또 지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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