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마약/정채봉
떠돌이 약장수 악마가 한밤중에 이 동네에 나타났다.
그는 음산한 고목 밑에서 약 선전을 했다.
"좋은 약 가지고 왔습니다. 제 아무리 넘어가지 않는 인간이라도 이 약이면 끝납니다.
자 필요하신 손님께는 인상만 잘 써도 거저 드립니다. 어서들 오세요."
이 동네의 집집에 박혀서 살고 있는 악마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그들은 금고 속에도,책상 밑에도,심지어는 거울 뒤에도 숨어 사는 지라 눈만 파랗게 빛났다.
떠돌이 약장수 악마는 연신 떠들어댔다.
"이것은 무엇이냐,'혀자동화약'입니다. 인간들에게 이것을 먹이면 앞뒤 생각없이 혀가 자동으로 막 구릅니다.
못 할 말이 없지요. 팍 망하게 해줍니다."
"이것은 무엇이냐,'미룸정'입니다. 이것을 인간들이 삼키면 무슨 일이건 끝없이 미루는 버릇이 생기지요.
죽는 날까지 마루다가 끝난다니까요. 여기 또 '혹시나정'도 있습니다. 서로를 의심케 하여 끝내 파멸시키는 약입니다."
"또 있습니다. '맛당겨제입니다. 이것을 인간들한테 먹이면 무엇이거나 맛이 당겨서 그만이라는 게 없지요.
금력 맛,권력 맛,정욕 맛 아무튼 그 효험이 그만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무관심촉진제'입니다.
인간들을 무관심하게 만들면 끝나는 거예요. 자,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당신은 혹시 이 중에 어떤 약에 중독되어 있지는 않은지?
여기 이 마약들의 해독제는 당신 마음의 효소로만 조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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