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

내 삶을 다스리실 분

모든 2 2020. 6. 16. 00:15

한상봉의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35

 

신앙인아카데미에서 ‘자연과 몸’이란 주제로 강의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서울에 다녀왔다. 학문적 영역과 거리가 멀어진 지 오래되어서인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지 불안한 심경으로 길을 나섰다. 산천을 바라보는 몸 가진 사람의 감회를 조금 나누었는데, 뒤풀이를 가면서 다짐했다. 다시는 이런 주제 넘는 강의를 맡지 말아야지.

뒤풀이 장소에서 우린 생맥주를 마셨는데, 자리를 마련한 이의 누님이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 수녀라고 했다. 지금은 칠레인가 어디서 선교하는데, 조만간 한국에 다니러 오면 한번 만나자는 이야기가 오고갔다. 거리에서 마약 하는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는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수도회 수녀들은 ‘가르치지 못한다’는 회칙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관상 수도회이든 활동 수도회이든 ‘가르치는 직무’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수도회가 한두 개쯤 학교를 운영하고 있거나, 피정이나 다른 프로그램을 통하여 특히 평신도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보듯이 군중을 가르치시고, 우리는 그분을 ‘스승’이라고 즐겨 말하고 있다. 아예 ‘교육수사회’란 명칭을 가진 수도단체도 있다. 그런데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에서는 ‘교사’의 직분을 왜 포기하는가? 분명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예수를 가르치는 것보다 예수를 사는 게 중요하다는 영적 각성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예전에 발간된 <생활성서>에서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서로 수녀라 부르지 않고 ‘자매’라 부른다는 데 있다. 그들의 신원(身元)은 ‘수도자’이지만 신분(身分)적으로 ‘수녀’가 되기를 거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통하여 거리에서 일터에서 관상(觀想)생활을 한다.

그들의 성소는 성체가 오롯이 모셔져 있는 감실 앞을 넘어서 세상으로 확장된다. ‘아랍인을 만나면 아랍인이 되고 유목민을 만나면 유목민이 되고 가난한 이를 만나면 그 가난을 함께 살았던, 사하라 사막의 샤를 드 푸코의 삶처럼’ 이들은 예수의 작은 자매로 공장에서, 농촌에서, 시장에서 또는 매매춘 현장에서 소외받고 가난한 이들의 아픔과 기쁨을 격 없이 나누고자 한다.

한국의 자매들은 전통찻집에서 청소를 하고, 파출부로 일하며, 문방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봉제공장에서 미싱 보조일을 한다. 이렇게 단순노동을 굳이 선택하는 이유를 한 수녀님은 이렇게 답한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원의 때문입니다. 저희들은 반죽 속의 누룩처럼 민중 속에 섞여 동화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그들에게 무얼 베풀고 무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처럼 가난한 이로 있고자 하는 것이지요. 제가 하는 파출부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하는 일이지만, 이것 역시 가난한 이들의 삶을 나누는 체험이자 보이지 않는 계층에 대한 연대라고 할 수 있지요.”

이들의 생활은 도전이 된다. 이들은 가난한 이들 안에 하느님이 현존하신다는 것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웅변으로 가르치지 않지만, 우리가 도망가고 싶은 삶으로 우리를 다시 끌어들이는 인력(引力)을 가지고 있다. 예수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예수가 가난한 이들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허름한 말구유 위에 놓여진 무력한 아기의 모습 속에서 우린 벌거벗은 메시아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사람되어’에서 나온 <전환과 복종을 위하여 나자렛 예수를 기억하다>라는 소책자를 읽었다. 호세 곤잘레스 화우스란 분이 지은 것인데, 첫장에 긴 시가 한 편 소개되어 있었고, 그것이 다시 한번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한 농촌 여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또 다른 마을에서 자랐는데
그곳에서 30세가 될 때까지 목수로 일했다
그러고 나서 3년 동안 그는 방랑하는 설교자가 되었다
그는 결코 책을 쓴 적이 없다.
또 사무실을 열은 적이 없었다
결코 가족이나 가정을 가지지 않았다.
대학에도 가지 않았다
그가 난 곳에서 3백 킬로미터 이상 밖으로 여행한 적도 없었다
거대함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성취한 적이 없었다
자신 이외에 어떤 신용장이나 자격증도 없었다
여론이 그에게서 등을 돌렸을 때 그는
겨우 서른세 살이었다
그의 친구들도 그를 버렸다
그는 적들의 손에 넘겨졌고,
그들은 재판에서 그를 조롱했다
그는 두 도둑들 가운데서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리고 그가 하느님께
왜 자기를 버렸느냐고 물으면서 고통에 휩싸여 있을 때
그를 고문한 자들은 유일한 소유물인 그의 옷을 놓고
제비를 뽑고 있었다
그가 죽었을 때,
한 친구가 묘를 빌려서 그곳에 그를 매장했다
20세기가 지나갔지만,
오늘날 그는 우리 세계의 중심인물로 자리잡고 있다
그는 인간의 변화에 있어 결정적인 요인이다
행진해 갔던 어떤 군대도
항해했던 어떤 해군도
회의를 했던 어떤 국회도
지배했던 어떤 왕도
이 모든 권력을 다 합쳐도 그의 이 고독한 삶만큼
`지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을 바꾼 것은 없었다"

이 소책자는 예수가 처형된 것은 신성모독죄 때문이었는데, 결국 하느님을 종교계와 정치계 권력자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이들에 의해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의 하느님임을 선포하고 행위로 입증했으며 그 현존을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익명의 사람(예수)은 박사도 아니요, 사무실도 열지 않았고, 저술도 하지 않았지만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적 혁명을 성취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성전이나 사제직, 율법, 아름다운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을 통해서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정립한 사람으로 소개된다.

이틀째 산골에 비가 내리고 있다. 앞산 너머로는 비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내는 이 광경을 보고 이곳이 마치 ‘섬’ 같다고 말했다. 아랫집 길수가 일 다녀오면서, 공사 중인 마을 앞 길이 물에 잠겨 다니지 못하고 옆 산길을 타고 왔다고 전해주었다. 적막강산에 새소리만 간간이 들려온다. 이쯤 되면 가보지 않아도 감자밭에 싹이 무척 많이 올라와 있다는 것을 안다. 고추밭 이랑을 진작에 갈무리해 둘 걸, 후회도 생긴다. 못자리에 물이 넘칠까, 잔걱정도 올라온다. 가끔 원고를 쓰고, 더러 강의를 다니면서 내 삶이 얼마나 내 뒤를 받쳐주고 있는지, 남을 가르치려고 성급하게 대들지 않았는지 합장하듯 생각을 모은다.

내일 아침이면 아랫계곡에서 자욱이 안개가 피어오를 것이며, 청명한 하늘이 열릴 것이다. 그러면 우린 유폐된 섬에서 벗어나 다시 세상과 소통하게 될 것이다. 열린 길을 따라 함양에도 다녀올 것이고, 장날이면 장터에도 기웃거릴 것이다. 사람을 만나고, 그들 사이에서 삶의 고단함과 소망을 나눌 것이다. 조금은 궁색한 살림과 그 안에 깃든 빛을 읽어낼 것이다. 농사력과 읽는 책에 밑줄을 긋고 내일을 계획할 것이다.

어디서나 현존하시며, 특별히 가난한 이들 가운데 현존하시는 하느님에 관하여 생각하며 겸손하게 사는 법을 배울 것이다. 우리의 마음결에 따라서, 인연에 따라서 오직 한 분이신 스승을 따라 걷는다는 게 버겁다는 느낌도 가질 것이다. 많이 듣지만 적게 말하고 용기있게 행동하기를 기대할 것이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