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봉의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14
사진=한상봉 앨범 사진 촬영
무주 산골짜기에 마련한 우리집에는 잊을 만하면 이따금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그립고 반가웠던 친구며 선배들도 있었지만, 귀농할 곳을 찾아서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언제 어떤 방법으로 귀농할지 딱 부러지게 결정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마음은 천리를 달리지만 몸은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시골 살림에 맞추어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고, 외진 산골에서, 그것도 객지에서 불편한 삶을 감당할 자신이 아직 서지 않는 것이다.
남자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것은 ‘여기서 어떻게 먹고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고, 여자들이 제일 먼저 묻는 것은 ‘근처에 사람도 별로 없는데 무섭지 않아요?’ 하는 것이었다. 풍요롭게 먹고살 방도를 찾는다면 굳이 산골에 찾아들어올 이유가 없다. 이곳엔 땅도 비좁고 그나마 경사가 급해서 농기계를 대기 힘든 탓에 큰 농사가 어렵다. 그래도 큰 욕심 부리지 않으면 소박한 자급자족의 삶은 가능할 것이다.
시골에 인적이 드물다는 것은 두려움이면서 동시에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여 사는 데 익숙했던 사람은 혼자 남아 있는 시간이 불안스러울 수 있겠다. 그러나 정작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것 또한 사람이 아닐까?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또닥또닥 걷다가 뒤에서 다른 사람 발소리가 나면 순간 긴장하게 되는 게 요즘 세상 아니던가? 오히려 시골에선 사람들과 숨가쁘게 부대끼지 않아서 좋고, 이따금 찾아오는 손님은 입에 낀 거미줄을 없애주니 반가울 수밖에 없다.
처음 시골에 왔을 때 가장 무서워했던 것은 밤이었다. 간혹 외지에 나갔다가 마지막 군내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려면, 달빛도 없는 칠흑 같은 밤중에 길을 더듬거리며 산길을 한참이나 올라가야 했다. 천천히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지만 길목엔 집 한 채 없고, 보안등 하나 켜 있지 않아서 멀게만 느껴졌다. 어렵사리 마을 어귀에 들어섰을 때, 어떤 때는 동네가 텅 비어 있는 적도 있다. 서너 가구의 귀농자들이 모여 사는데 다들 어디 가서 미처 돌아오지 못한 모양이다. 자못 적적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기회를 즐길 뿐 두렵거나 외로움을 느낀 적은 없다. 사람이란 그만큼 희한한 존재인 모양이다. 그런 밤이면 하늘에 그야말로 총총히 박힌 별들이 뻐근한 감동으로 내 영혼을 몰아가곤 했다.
귀농은 왜 했냐고 물으면...별 보러
손님들이 와서 한결같이 묻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왜 귀농했느냐?”는 것이다. 흙의 신비주의니 생태주의니 하는 너스레를 늘어놓을 수도 있겠으나, 큰일을 저지르게 만드는 결정적 이유는 항상 단순한 데서 시작되었다. 별을 보고 싶다, 그것이었다. 예전에 서울 살 때, 선배를 따라 경기도 양평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곳 역시 이 무주만큼이나 산골이었는데, 하늘에 빽빽이 들어선 별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은하수가 보였다. 초등학교 때 등화관제하던 밤이 연상되었다. 유신정권 시절이어서 민방공훈련을 하던 밤이면 집집이 등을 검정 천으로 가리거나 꺼버렸다. 그런 날이면 동네 아이들과 거리를 쏘다녔다. 자동차도 다닐 수 없는 도로 위에 벌렁 누워 하늘을 보기도 했다. 그런 날만큼은 참 별도 많고 도시도 살 만했다.
그러나 크면서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그때 봤던 그런 별 사태를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고 놀랐다. 도시의 하늘엔 별 대신 네온사인과 가로등·보안등이 켜지고, 집안에는 식구 숫자보다 더 많은 형광등이 켜졌다. 어느새 별은 사람의 거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불빛은 밤을 삼켜버렸다. 그 별을 다시 찾아보아야겠다는 마음이 산골을 찾아가는 데 자극이 되었다.
그맘때쯤 좋아하던 시가 있었다. 신석정의 <들길에 서서>이다.
푸른 산이 흰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우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여기서 별은 어떤 초점이 아닐까? 별은 하늘에 있고, 어둠이 깊을수록 선명하게 빛나는 별은 우리 삶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언제든지 참고하고 비추어 보고 다시 기억해야 할 어떤 근원의 자리가 아닐까? 별은 사람들 머리 위에 있어서 어디서든지 고개를 젖히면 바라볼 수 있다. 부자에게나 가난한 이에게나 노인에게나 청년에게나 어린아이에게나 별은 자신의 빛을 숨기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하루 한 번씩이라도 들길에 서서, 아파트 베란다에 기대서서, 길을 걷다가 문득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별은 결코 우리와 눈빛을 맞출 수 없을 것이다.
그 별을 하느님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그분은 언제나 우리가 당신에게 눈빛을 맞추어 주길 기다리며 초조해하신다. 오죽하면 루이 에블리 같은 사람은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이란 책을 썼을까? 자식들이 성장하여 제 아이를 길러 보기 전에는 부모의 애달픈 심정을 모른다던데, 우린 하느님이 될 수 없으니 하느님께서 당신의 피조물을 향해 베푸시는 그 마음을 영 헤아릴 길이 없다. 다만 부모가 됨으로써 하느님의 심경을 가늠해 볼 도리밖에 없다. 그걸 기억하라고 하느님께선 하늘에 별을 박아놓으신 것인지도 모른다. 그 별을 바라보는 작업을 일과로 삼음으로써 인생을 다시 시작해 봄도 좋을 것이다.
어둠은 사라지고 하느님은 안중에 없고
작고 2년 전인 2008년 경기도 양평 집필실 정원에서의 이윤기씨,
멜빵바지를 즐겨입던 지중해식 지식인이자 소설가였다.
-열린책들 제공-
신화를 탐구했던 이윤기는 <하늘의 문>이란 소설에서 “과학이 달갑지 않게도 이 세계로부터 밤을 앗아간 이래, 온 땅의 절반을 가리고 있던 밤은 이제 사람의 가슴으로 숨어들어 지우기 어려운 어둠이 되었다. 세상의 어둠은, 빛 앞에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숨어든다는 생각이… 가슴을 무겁게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과학이 ‘밤’을 빼앗아 갔다는 것은 곧 기술문명이 ‘별’을 빼앗아 갔다는 뜻일 것이다. 도시가 온통 돈을 버느라고 밤을 밝히는 동안에는 별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별을 볼 여유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 밤이 없으니 별이 없고, 별이 없으니 인간의 마음이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어버렸다. 인생의 초점이 사라지고, 하느님은 증발되어 버렸다. 당연히 인간의 마음속엔 어둠만이 도사리고, 하느님은 안중에도 없다.
사춘기 때 공책에 베껴놓고 편지에 적어보내던 윤동주의 <서시>(序詩)는 이제 ‘옛사랑의 추억’이 되어버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꽃다운 영혼에게 별은 평생을 인도하는 좌표였다. 마치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메시아를 찾아와 경배했듯이, 윤동주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따라 살기로 마음먹고 있다. 가련한 인생들을 향한 섬세한 연민의 감정을 키우고 그렇게 가련한 인생의 하나로 죽었다. 예수 역시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을 위한 억누를 수 없는 사랑으로 살다가 그 또한 이들의 운명을 나누어 갖지 않았던가.
윤동주는 <별을 헤는 밤>이란 시에서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이라고 고백했다. 별이 있는 한 그의 청춘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며, 그가 청춘인 한 별을 바라볼 것이다. 별에 대한 안타깝고 애달픈 마음은 그만큼 그의 영혼이 맑은 탓이다.
예전에 <씨알의 소리>를 발행했던 함석헌 선생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평생을 청년으로 살고 싶다고. 그분은 검버섯이 핀 늘그막에도 두 시간씩 서서 강연을 하곤 했다. 정신이 맑으면 육신도 따라서 투명해지는가. 마음이 곧추서면 몸도 반듯해지는 것일까? 언제쯤이면 내 마음속에도 하늘에서처럼 별이 돋아날 것인가. 그래서 죽으나 사나 반듯할 것인가.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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