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일꾼 CATHOLIC WORKER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 기다리며

모든 2 2019. 12. 9. 20:00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 기다리며



  서점에서 책을 한권 샀습니다. 붉은 표지에 <내 마음이 지옥일 때>라고 제목이 붙었더군요. 아득한 세상을 지나는 길손들에게 띄우는 시편 모음입니다. 정혜신 박사와 한 짝인 이명수 심리기획자가 엮은 책입니다. 시리아나  아우슈비츠처럼 객관적 지옥도 있지만 수많은 주관적 지옥들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게 뭐든 드라이아이스처럼 시간이 지나면 휘발될 고통도 현재의 내게는 피부를 태우는 듯한 화상이 될 수 있다는 거지요. 맞는 말입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관계를 맺고 사는 한 크고 작은 지옥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누가 내 뒤통수를 쳤을 때,나만 따돌림 당했다고 느낄 때,누군가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질 때,오장육부라도 꺼내 보이고 싶을 만큼 억울할 때,그런 순간들은 어김없이 지옥이다."


  이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있다고 해요. 여기가 어딘지, 내가 왜 여기 있게 됐는지 알려주는 '지도'한 장만 있으면 된다고 해요. 그러면 안개가 걷히고 혼돈이 줄어들고,상황이 달라지지 않아도 시야만 확보되면 헤쳐 나갈 힘이 생긴다고 해요. 그 지도를 이명수 님은 시(詩)에서 찾습니다.가진자와 강자의 손을 들어주는 게 '역사'라면 시는 약자의 손을 들어 준다고 믿습니다.시가 소외된 사람에게 뜨끈한 밥 한 공기 되진 못해도 그들을 기억하는 눈물 한 방울은 될 수 있다고 믿는 거지요. 그래서 물 끓는 냄비에 수제비를 떠 넣듯이 시를 골랐다고 하더군요.

  제일 첫 마디가 "징징거려도 괜찮아"입니다. 힘들어,슬퍼,속상해,그걸 입밖으로 내는 거지요. 징징거리는 소리가 많다고 그러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워지지도,칙칙해지지도 않는다고 해요. 심한 몸살을 앓을 때 신음소리라도 내지 못하면 더 아프니까 징징거리도 괜찮다고 다독이는 거죠. 내 마음이 지옥일 만큼 상처 입었을 때 고름이 생기고, 이 고름은 오래되었다고 살이 되지 않기에,빼내야 하죠. 그래야 정상적인 세포가 복원된다는 거죠. 징징거림은 남들 보기엔 엄살이지만,내게는 압력이 꽉 찬 압력밥솥의 압력추를 젖히는 일이죠. 그래야 밥도 제대로 되고 폭발하지 않는 법이라는 조언입니다. 그참에 골라낸 첫 시가 마종기 선생님의 <괜히 견디지 마세요>입니다.


헤매고 한정없이 찾고 있는 것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 곳에 있기에

당신은 돌아눕고 돌아눕고 하는가.

어느 날쯤 불안한 당신 속에 들어가

늪 깊이 숨은 것을 찾아주고 싶다.


밤새 조용히 신음하는 어깨여,

시고 매운 세월이 얼마나 길었으면

약 바르지 못한 온몸의 피멍을

이불만 덮은 채로 참아내는가(부분)


  이럴 때 누군가 오직 '너'라는 이유만으로 "내 말이 그 말이야"맞장구 쳐주고 함께 펑펑 울어주는 편파적인 사람이 꼭 한 사람은 있어야 한다고 김명수 님은 이야기 합니다.엄마이며 친구고 연인같은,스승이며 동지인 그런 사람 말입니다. "환한 웃음이,깊은 포용이,맑은 눈물이,우물같이 깊은 끄덕임 한 번이 심지어 당신의 존재 자체가 지옥 같은 상황에 빠져있는 누군가에겐 로또가 된다."고 해요. 그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옥은 저만큼 물러선다는 것이지요. 항상 첫 시가 좋네요. 박서영의 <마음 놓고 업힐 수 있는 사람>을 읽어봅니다.


저수지에 빠졌던 검은 염소를 업고

노파가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등이 흠뻑 젖어들고 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염소와 눈을 맞추며

자장가까지 흥얼거렸다.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

그의 감춰진 울음이 몸에 스며든다는 것

서로를 찌르지 않고 받아준다는 것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에

등줄기가 청지기처럼 닿는다는 것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약국의 흐릿한 창문을 닦듯

서로의 눈동자 속에 낀 슬픔을 닦아주는 일

흩어진 영혼을 자루에 담아주는 일


사람이 짐승을 업고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한없이 가벼워진 몸이

젖어 더욱 무거워진 몸을 업어주고 있다.

울음이 불룩한 무덤에 스며드는 것 같다.



  이런 것 다 알고서도,내가 지금 겪는 고통을 헤아리기란,그 고통이 무늬가 될 때까지 참아내기란 여전히 힘든 노릇이지요. 문제는 꼭 그 한 사람이,노력한다고 내게 찾아와 주는게 아니라는 점이지요. 내가 그 누군가에게 꼭 그 한 사람이 되어주고 싶어도 상대방이 바라던 그 사람이 아니면 그것도 안 되겠지요. 그러니, 그 한 사람은 은총처럼 만나야 하겠지요. 절망의 세월을 거슬러 어디선가 지금 그 사람이 내게 오고 있을지 모릅니다. 발원하고 발원해도 오지 않던 사람이 문득 새삼 내 방문을 두드릴지 누가 압니까?

  대림절입니다. 그 한 사람을 기다리는 순간입니다. 대림절이 겨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건 까닭이 있겠지요. 그분이 성큼 내게 다가오기 전에,그분은 먼저 포대기에 싸인 채 아기로 오셔서 성모님 품에 안겨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포대기를 준비해야 합니다. 내 깊은 마음속에서 따뜻한 물 한바가지 길어 올려야 합니다. 누군가 징징댄다고 타박하지 말고 " 그래,그래 괜찮아." 말해 주어야 합니다. 좀 손해 보고 좀 야속하더라도 "살다보면 그럴 수 있지." 안아주어야 합니다. 그러면,문득 그분이 말하겠지요. "네가 바로 나다." 라고 말입니다. 내가 그렇게 갈망하던 그 한 사람이 바로 '나' 였음을 깨닫게 하겠지요. 주 예수여, 오소서, 내 마음 속에 오소서. 그래서 마침내 제가 당신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