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말씀이 우리와 함께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이 글은 1989년에 재판을 찍은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가 엮은 <말씀이 우리와 함께-솔렌띠나메 농어민들의 복음대화>(성염 번역,분도출판사)가운데 "예수의 탄생"과 관련해 나누었던 복음대화를 옮겨 적었다. 니카라과의 솔렌띠나메는 지도상의 한 지점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 교차로이다. 38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중 가장 큰 섬에 사제이며 시인인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가 평신도 수도원을 세웠으며, 그 부속기관으로 농어민 협동조합과 병원,예술인센터가 있다. 주일이면 사람들이 모여 미사를 드리는데 강론이 없다.성경 한 대목을 낭독하고,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성경을 해석한다. 복음은 늘 가난한 이들에게 좋은 소식이었고,예수님 말씀을 듣던 사람들도 솔렌띠나메의 농어민들처럼 고된 일을 하며 종종 권력자들에게 억압을 받던 소박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6-7)
나 : 이 나라의 모든 부가 마나과에 집중되어 있으며, 가장 처절한 비참도 이곳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곳에서 준비 중인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의 미사(ChristMass)가 아니고 맘몬(재물신)의 미사(Money-God Mass)입니다. 이밤에 마나과에 전국에서 맞고 있는 비극은 복음서에 묘사되어 있는 고통스런 장면과 상당히 흡사하죠. 마리아는 집이 없어 가축 틈에 끼어서 하느님의 아들을 낳아야 했습니다. 최근에 지진이 일어나 몇 시간 전에 남녀 청년들이 대성당 광장에 모여 사회 불의에 항거하는 뜻으로 삼일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민중의 것을 빼앗아 가는 강도질에 항거하는 뜻으로 단식을 시작했어요. 또 청년들은 이 성탄절이 정치범 없는 성탄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레베카 : 태어난 순간부터 하느님은 제일 불쌍한 사람과 똑같은 처지를 고르셨어요. 그렇지 않아요? 전 하느님이 당신 탄신 행사를 핑계로 호화잔치를 벌이거나 큰돈을 모으거나 심지어 에르네스토 신부님이 말씀하셨듯이,당신 탄신일에 떼돈을 버는 사업을 좋아하실 리 없다고 봐요. 그 양반은 우리가 당신을 기다리기 바라시는 거예요. 바로 지금 니카라과가 그분을 기다리듯이 말예요. 그양반이 가난한 아기로 나셨으니까 우리 모두가 가난하길 바라시는 것이든가,아니면 우리 모두가 평등해지리라는 것이겠지요. 어떻든 마나과에서 하는 그런 짓거리는 바라지 않으실 거예요. 마나과에서 돈 있는 사람들한테 크리스마스는 그저 돈쓰고 멋있게 놀고 춤추고 별의별 짓 다하는 축제라고요. 정작 그 양반 모시는 건 경축하지 않아요. 제 생각엔 그렇단 말예요.
다른 사람 : 성경 말씀은 정말 분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갓난아기로,제일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태어나셨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지금도 같은 얘기를 하고 있어요.우리가 왜 미처 그걸 깨닫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또 다른 사람 : 그게 우리 양심을 찌르고 또 주님과 가까워지게 만들어요. 우리 인간은 자칫하면 길에서 벗어나요. 그러니까 변혁을 하자면 매우 강력한 충격이 필요해요.
페드로 라파엘 구티에레즈,(마나과 언론인) : 전 사실 여러분에게 낯선 사람이죠. 제가 코스메카날레스씨의 배를 타고 여기에 온 지 꼭 두달이군요. 그렇지만 벌써 여러분 전부와 정이 들었죠. 옥타비오씨,토마스 페냐 영감님,도냐 후스타,라우레아노,알레한드로, 윌리암,테레시타씨,에르네스토 신부님과 정이 들었어요. 이젠 섭섭하지만 여러분과 헤어져 마나과로 돌아가서 제 가족이 어찌 되었는지 찾아봐야겠어요. 여러분은 정말 가난한 사람들입니다만 거기에는 여러분보다 더 못 사는 사람들이 있죠. 물도 없고, 전기도 안 들어오고,먹을 것도 없고,여기 같은 공동체도 없죠. 마나과에서 일어난 이 엄청난 슬픔이 해결되길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을 적에 무죄한 이들이 죽었듯이 마나과에서도 무죄한 이들이 죽음을 당했죠. 그렇지만,그리스도께선 살아남으셨어요. 그게 문제죠. 저는 이 공포의 크리스마스로부터 우리가 무엇인가 얻어내어 전반적 변혁의 계기로 삼을 수 있으면 해요. 겸해서 작별인사도 드립니다.
호세(목수,돈 호세 치바리아) : 변혁은 모두에게 닥쳐야 합니다. 우린 누가 누굴 다스릴 생각은 말아야 합니다. 방금 예수님이 가난하게 태어나,가축들 틈에 누워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서 나신 건 까닭이 있었을 것입니다.
토마스 페냐 노인(농사를 짓지만 솜씨 좋은 어부이기도 하다) : 우리더러 재산을 욕심내지 말라고, 애기 하나 낳자고 대궐 같은 집을 손에 넣으려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겠수?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
나 : 페드로씨가 고통스러운 마나과의 이 크리스마스에 대해 한 말은 정말 옳습니다. 최후만찬 석상에서 그리스도 역시 당신 죽음을 두고 탄생을 얘기하신 바 있습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해산의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정작 아기가 태어나면 기쁨이 가득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죽음,나아가서 인간의 모든 비극을 두고 하시는 설명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자 분들은 이런 일을 알아듣기가 한결 쉬우리라고 봅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께서도 잘 알아들어셨을 것입니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에 외양간에서 산고를 겪으신 분이니까 말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당신 어머니 들으시라고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당신이 수난 당하실 때에 어머니가 겪으실 그 괴로움을 예상해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들으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비극은 의미가 있어요. 그것은 태어나기 위한 비극입니다.
훌리오 : 그럼 마나과에서 일어난 참사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겠군요. 적어도 그걸 알아듣는 사람들한텐.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한테야 소용없고요.
다른 젊은이 : 비극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누구에게나 닥쳐요. 그리고 누구에게나 회복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죠. 그렇지만 이 비극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는 건 그리스도인들 뿐이겠지만요.
페리페(토마스 페냐 노인의 아들,나한테 얼굴을 돌리면서) :신부님,저는 금년 크리스마스에 지진이 일어난 것은 하느님께서 그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평등하다는 걸 보여 주시는 것 같아요. 마나과에선 대단한 사람들이 정말 유쾌한 크리스마스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괴로움 속에 허덕이고 있는데도요. 지진이 마나과에서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말예요. 만일, 시골에서 일어났더라면 사람들은 섭섭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파괴가 된 곳이 마나과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같은 일을 겪고 다 같이 슬픔을 느끼는 거예요.
페드로 라파엘 구티에레즈 : 펠리페씨는 참 멋있는 말을 했군요. 작년 크리스마스는 마나과에선 참 멋진 크리스마스였죠. 잘사는 사람들은 큼직한 칠면조에다 무척 예쁜 크리스마스트리에다 집에는 굉장한 데코레이션과 전등을 달았었죠. 그 대신 아카우링카 같은 변두리 지역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곳은 시골보다도 훨씬 비참해요. 올해도 아카우링카엔 아무것도 없겠죠. 그 대신 잘사는 사람들도 아무것도 없을 테죠. 참사가 우릴 평등하게 만들었어요. 니카라과 역사상 처음으로 잘사는 사람들과 못하는 사람들이 비극을 함께 나누게 됐죠. 예전 같으면 비극이라면 으레 못사는 사람들만 당하는 것이었지만, 이게 이번에 일어난 가장 놀라운 사실이죠. 비극이 우리 모두를 평등하게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알레한드로 : 한 가지는 분명히 하고 넘어갑시다. 모두에게 비극이 닥쳤다고 좋아할 건 없어요. 아무도 고통당하지 않는게 최선이죠. 모두가 크리스마스에는 행복해지는 게 가장 좋을 테지요. 이 점은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죠.
나 : 우리의 목표는 비극을 극복하는 데 있습니다. 죽음까지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날엔가 생명이,사랑이 죽음을 이기게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질병 ,무지,비참 드리고 자연 재난을 극복해나갈 수 있습니다. 현시점에서 우리가 가진 사회체제로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저 도시가 비참한 불행을 당한것은 그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체제 때문입니다. 각자가 제 한몸의 이익만 찾아 뿔뿔이 달아나 버리는 자본주의 체제가 그렇습니다. 거기서는 개미나 꿀벌 같은 동물세계에서 볼 수 있는 일치나 협동마저도 전혀 없습니다. 이런 이기주의 사회가 아닌 연대성의 사회라면 민중은 화산폭발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에도 철저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분열되고 죄악으로 점철된 인류 가운데 탄생하셔서 우리를 단결시키시고 사물의 질서를 바꿔놓으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게 우리가 지금 여기에...
펠릭스(신부의 말을 끊으며) : 전 마나과에서 일어난 건 응당 일어나야 했다고 봐요. 죄 때문에.
올리비아 : 지진이 죄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녜요. 그러나 지진에 뒤따라 온 결과는 죄 때문에 일어난 거예요. 죄란 이기심이니까요.
훌리오 : 고통이 하느님의 벌은 아니라고요. 가난한 사람들이 언제나 고통은 제일 많이 받지 않아요? 자기가 부자라면 차를 사든 비행기를 사든
시내에서 빠져 나간다구요. 아무 문제도 있을 턱이 없다고요.
어떤 사람 : 대통령이라도 지금 당장은 돈 많다는 게 아무 좋을 데 없다고 봅니다. 그 인간은 자기 돈에 대한 사고방식이 틀려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통령궁의 일부라도 내려앉았다면 자긴 죽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죽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페드로 라파엘 구티에레즈 : 저는 이번 지진으로 고통이 가장 심할 것은 부자들이라고 생각해요. 왜 그런지 말씀드리죠. 아카우링카에선 물이고 전기고 우유고 쌀이고 콩이고 제대로 있어본 적이 없죠. 그런데 이번 크리스마스엔 딴 사람들도 그게 모조리 없거든요.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야 하루같이 먹을 것도 전기도 없이 살아왔죠. 그 사람들 크리스마스는 늘 이번과 똑같았죠. 라디오에선 사람들이 신발도 못 신고 옷도 못 입고 거리로 뛰쳐나왔다는데 가난한 사람들이야 하고 많은 세월 옷도 신도 없이 살아왔지 않아요?
어떤 사람 : 예수님 탄생 때부터 늘 그랬습니다.
펠릭스 : 제가 한 가지 말씀드리죠. 페드로씨, 제 얘길 들어보세요., 부자들은 절대 괴로움을 안 당해요. 정부는 그 사람들 사어베댜 5퍼센트 세름을 매겼어요. 결국 그걸 내는 사람들이 부자던가요? 가난한 사람들이예요. 나카라과에서 빈민층 아니면 누가 노동자라고 보시죠? 니카라과에서 모든 사업을 돌아가게 만드는 사람들이 누군가요?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요? 그런데 이런 위기가 닥쳤어요. 누가 그걸 메우겠어요? 그 대가를 지불하는 건 우리예요. 캄페시노들,니카라과에서 일하는 가난뱅이들이라고요.
(밖에는 아름다운 보름달이 떠 있었다. 조그만 성당 양쪽으로는 호수가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젊은이들이 말을 이어갔다."
- 우리만 가난한 사람은 아닙니다. 마나과는 부자만 아니고 가난한 사람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이 나라 노동자가 거의 다 그곳에 모여 있습니다. 거긴 어디나 빈민 천지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을 함께 하시려고 오셨어요. 요셉과 마리아는 빈민이라고 여관에서 따돌림 당했어요. 부유했더라면 당장 환대를 받았겠죠.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을 돼지우리에서, 외양간에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당신 아드님이 빈민 계층에 소속되길 바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하느님이 당신 아드님이 잘사는 여자한테서 태어나기 바라셨다면 그 여자는 호텔에다 방을 예약해 뒀을 것입니다. 신부에 어울리는 특실로 말입니다.
- 전 이것이 하느님의 겸손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다름 아닌 당신 아드님이었으니까요. 어머니도 그이를 흙강아지처럼 돌봤어요. 예수님은 바로 그런 불의에서,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는 그런 불의에서 세상을 해방시키자고 오셨어요. 당신이 와야 우리가 한데 뭉쳐 이런 불의에 대항해 싸울 수 있을 테니까 말에요. 우리가 잠자코 그대로 있으니까 남이 우릴 완전히 깔아뭉갠다고요. 부자들이 우릴 뭘로 보는지 아세요? 우릴 형편없이 깔봐요. 바로 그래서 우리는 단결해야 이긴다는 거예요. 우리 전부가 하나같이 혁명가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리스도처럼 말예요.
그 양반은 가장 위대한 혁명가시죠. 하느님이시면서 가난한 사람들과 같아지셨고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하층민이 되시고 우리 전부를 위해 목숨마져 바치셨으니까요. 제가 보기엔 말예요. 우리 전부가 그분처럼 남을 위해 싸워야 하고 그래서 그 양반하고 같아져야 해요. 그렇게 된다면 집 없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테고, 지진이 집을 때려 부순다 해도 다른 집에 들 수 있을 거예요. 또 아무도 있는 사람들한테 수모를 겪어야 할 필요도 없을 거예요.
- 오늘 복음을 본다면 가난하다고 해서 그 누구도 꿀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잘사는 사람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그리스도께선 우리 가난한 사람들 편이십니다. 우리가 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말입니다. 부자들 보기에야 우린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기들 위해 일이나 해주는데 그밖엔 쓸모가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이 복음으로 부자들이 우릴 개똥만도 못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아무 쓰잘 데 없다는 투입니다. 그자들에겐 우린 있으나마 합니다. 여기서 우린 그자들이 그 어른의 아드님을 어떻게 다뤘는지 알 만 합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거죠. 그 양반 머리 가릴 처마 하나,그 양반이 드러누울 침대 하나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잖아요.
-가난한 사람이 부자들을 떠받들고 있어요. 가난한 사람이 일을 안 하면 부자들한테는 아무것도 없는 까닭이죠. 그런데도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 이익까지 다 가로채요. 잔치가 있으면 저희들끼리만 몰려가죠. 자기들한테 있는 건 무엇이든 가난한 사람들 손으로 생긴다는 걸 몰라요. 자기 돈으로 그게 생긴다고들 생각하지만 실은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으로 생겨요. 또 잔치를 열 때야 가난한 사람들을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건 뻔하죠. 잔치란 잔치는 모두 자기네들 몫이라고 생각들 하는 거죠. 우리가 없으면 자기들이 정말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몰라요.
-예수님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베들레헴에서 외면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지금도 전 세계에서 외면 당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나셨을 때 베들레헴에 축하 잔치 한번 없었듯이 올해는 이 나라에 크리스마스 잔치가 전혀 없습니다. 지금 이 크리스마스가 제게는 더 그리스도인다운 크리스마스라 여겨지며,이게 우리의 의식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누구나 집이 있고 누구나 행복하고 누구나 외면 당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마나과 이재민을 위한 모금 얘기가 있었다. 누구는 옥수수를,누구는 쌀과 콩을 내놓았다. 펠릭스가 나더러 내일 마나과에 갈 생각이냐고 물었다. 나는 가려고 힘써 보겠노라고 했다. 거기까지 갈 교통이 있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 교통편이 없으면 걸어가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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