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일꾼 CATHOLIC WORKER

유일한 해결책은 사랑

모든 2 2019. 2. 11. 18:55



유일한 해결책은 사랑

Only solution is Love

도로시 데이


  나는 우리가 도시와 시골에서 가난한 사람들,막장의 사람들과 함께 살며 공동체를 이루면서, 어떤 초월적인 징표들을 발견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남성들과 여성들은 행복에 대한 희망을 집요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는게 어렵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이런 세상을 거슬러 무언가 희망하고 있다. 언제나 그들은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되찾으려고 애를 쓰고 있으며,우리나라에서도 하느님이 우리를 위하여 계획해 놓은 것 같은 행복 속에서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적대자를 어떻게 사랑할까


  성녀 대 데레사는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유일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이웃과 형제자매에 대한 우리의 사랑뿐"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프랑수아 모리악과 마찬가지로 철학자 자크 마리탱은 '우리가 진리와 정의를 위하여 일하고 있을 때, 비록 그분을 부정해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랑이 절망적인 상황에 놓일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이것이 문제다. 모든 사람들은 형제들이다. 그렇다.그러나 우리의 형제자매가 추악함,어리석음,그리고 비열함에 빠져있을 때, 그래서 모든 의식들이 엉망이 되었을 때 어떻게 그들을 사랑할 것인가? 반대자가 우리에게 달랠 길 없는 증오의 얼굴을 보이거나,그저 차가운 혐오를 내붐을 때 어떻게 그들을 사랑할 것인가?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이런 난감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은,어쩌면 우리가 그만큼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자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인지 모른다. 다니엘 예언자는 그런 갈망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느님에게 상을 받았다. 공동체 안에서 세상과 다른 초월적인 것을 추구한 결과로, 우리 가톨릭일꾼들은 '환대의 집'과 '경작공동체'(공동농장)을 만들게 되었다.

  실제로, 가톨릭일꾼의 창설자요 프랑스인 농부였던 피터 모린은 이 공동농장들을 '농업경제대학'이라고 부르길 좋아했다.전국 사방에서 이런저런 공동체에 대한 시도들이 있었지만,많은 경우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피터 모린이 꿈꾸었던 그런 공동농장에서 살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의 인생에서 이 '황금시기'를 결코 잊지 못한다. 여기서는 언제나 저항할 수 없는 신앙의 행위를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나는 믿기를 원하기 때문에 믿는다."고 그러니 '하느님,저의 불신앙을 돌보소서."라고. 나는 사랑하기를 원하므로 사랑한다. 그리고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갈망은 사랑과 일치,친교를 이루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by Fritz Eichenberg


  절망 속에서 희망을


  그러면 이런 갈망을,이런 꿈들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 확실히 우리는 엘리야 예언자를 닮았다. 그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바알신과 그의 사제들에 대항해 용맹스럽게 싸우다가,두려움으로 도망쳤고,모든 용기가 메말라 버려서 향나무 아래 누워 하느님께 그의 비참함과 절망이 끝나게 해 달라고 울부짖었다. 여전히 모든 사람 안에는 하느님께 속한 무엇이 있다고 믿지만, 이런 생각은 파도처럼 오고 다시 쓸려나간다.

  성령은 불고 싶은 대로 불고,우리는 사막 한가운데서 칠흑 같은 어둠과 의혹을 통과하며 나아간다. 여기서 버티게 해 주는 힘은 다만 우리의 신앙뿐이다. "주님,저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믿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사랑처럼 내 의지로 선택하는 행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느님은 말씀하신다. 그분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암흑 속에서 울부짖는 소리에 대답하신다. 그분은 오늘날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우리가 함께 쪼개는 빵 안에 육화하신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 빵을 쪼개어 먹으면서 그분을 알아 볼 뿐이다. 이것은 절망 속에서 얻는 희망이다.


  동료, 함께 빵을 나누는 사람들


  뉴욕의 동편 저지대 러드로우 스트리트에 살았을 때, 그 집 뒤창문은 가죽나무를 끼고 마당을 향해 나 있었다. 그 앞에는 언제나 피클용 어린 오이상자들을 높이 쌓아 올린 남부에서 오는 트럭들이 있었다. 집에는 푸에르토리코 사람들로 가득 찼고,앞쪽 아파트의 가족들은 얼룩 없는 깨끗한 집들을 유지하였다. 나는 그 집의 부엌을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공기를 순환시키기 위하여 거실에 스크린 문을 설치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그 집은 방 네 칸의 난방 장치가 없었던 아파트였다. 그러나 이젠 방 두개짜리 아파트가 되었고 월세는 서너 배나 뛰었다.

  이 사람들은 열심히 일했고. 가족들을 위해 생계비를 벌었지만 최저임금에도 못 미쳤다. 그래서 나라에서 주는 복지 혜택을 받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들의 삶에서 초월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은 거리를 향해 있는 작은 가게 교회에서 열리는 집회에 가려고 그들이 성서를 집어들 때였다. 그런가게에 딸린 작은 교회들은 빈민가의 곳곳에,할렘에,동편 저지대에 브루클린과 브롱스 곳곳에 퍼져 있었다.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그들은 그들의 영혼이 필요로 하는 양분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말씀이 사람이 된 것을 발견하였다.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이 동료 노동자들이다. '동료'란 '함께 빵을 쪼개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바로 가톨릭일꾼 환대의 집 식탁에 함께 앉는 사람들이다. 거기에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몸집 작은 폴란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매일같이 손수레를 세내어 끌고 가면서,거리에서 종이상자들과 판지들을 조심스럽게 모아서 접고,수레에 말 그대로 산이 생길 때까지 폐지를 쌓았다. 그가 자동차들 사이로 뚫고 용케 앞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는 방세를 낼 만큼 충분히 벌었지만 우리와 함께 식사를 했고, 언제나 앞에 작은 '복음에 관한 팸플릿'을 놓아두었다. 그 옆 자리가 비어서 내가 앉으면,나보고 식사를 빨리 하라고 재촉했는데,내가 영어로 시편을 읽어주면 나와 함께 반복하여 그걸 읽곤 했다.

  그는 내가 쿠바에서 만난 한 군인을 생각나게 한다. 이 군인은 우리 팀을 오리엔트 지방의 큰 초등학교에 데려다 준 봉고차 안에서 내 옆에서 차 안에서 쉬려고 앉아 있었고,그도 나와 함께 남아 있었다. 모든 쿠바인들처럼,그는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 책을 갖고 있었다. 그 책을 내가 보자고 하면서 스페인 말을 읽으려고 하자, 나와 함께 읽어주었다. 내가 환대의 집에서 시편을 함께 읽었던 그 폴란드 사람처럼 우리는 한참 그 책을 함께 읽었다.

  이 두 사람은 그들의 일상적인 삶을 넘어 또 다른 영역 안으로 그들을 들어 올려 준 체험과 만나고 있었다.


  일상에서 초월성을 발견하다.


  나는 처음 우리 집에서 시작된 무료급식줄에 서서 복음서를 읽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환대의 집은 기다리는 사람들을 모두 수용할 만큼 크지 못해서 사람들은 언제나 줄을 서서 자기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눈이 오고 비가 오더라도,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에도 그렇게 기다렸다. 나는 그들이 이렇게 기다리며 뭔가 읽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이것은 초월성의 또 다른 표징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책을 읽으며,그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으나,이런 식으로 기다리며 복음서를 읽을 수 있을 때,더 이상 결핍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받아서 읽어라."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래서 회심이 일어났다. 그의 천국은 이해하는 것이고 아는 것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와 소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여자가 살인자에게 성경구절을 읽어 주었을 때 누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곳에,그 더러움과 절망의 장면 속에 초월의 장면이 있었다.


출처-1978년 5월 <가톨릭일꾼>신문 번역문 출처-<참사람 되어> 2019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