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일꾼] 유형선 칼럼
인생을 살다보면 고난은 기별도 없이 덮쳐옵니다. 2012년, 저는 직장에서 파업에 동참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는 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자국 본사를 살리기 위해 한국 법인을 매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국 회사를 인수하려는 동종업계 회사가 나타났지만 합병되는 과정에서 수백 명 일자리가 즉시 사라질 게 뻔히 보였습니다.
노조는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고 저도 동참했습니다. 1000명 직원 중 8할이 참여한 대규모 파업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사람들 대부분은 파업이 한두 달 안에 끝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석 달이 넘도록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가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직업병을 얻고 직장을 그만 둔지 한 해가 넘었는데, 이제는 저마저 월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됐습니다.
벼랑 끝에 선 심정이었습니다. 아내에게 처음으로 제 불안한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겠다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내와 십여 년 세월을 함께 보냈지만 부들부들 떨고 있는 제 속내를 처음으로 보여줬습니다. 그때 아내가 해준 말이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중요한 것을 찾지 말고 소중한 것을 찾아요. 그러면 세상 모든 게 중요해 질 거예요.”
인생을 살다보면 고난은 기별도 없이 덮쳐옵니다. 2012년, 저는 직장에서 파업에 동참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는 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자국 본사를 살리기 위해 한국 법인을 매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국 회사를 인수하려는 동종업계 회사가 나타났지만 합병되는 과정에서 수백 명 일자리가 즉시 사라질 게 뻔히 보였습니다.
노조는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고 저도 동참했습니다. 1000명 직원 중 8할이 참여한 대규모 파업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사람들 대부분은 파업이 한두 달 안에 끝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석 달이 넘도록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가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직업병을 얻고 직장을 그만 둔지 한 해가 넘었는데, 이제는 저마저 월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됐습니다.
벼랑 끝에 선 심정이었습니다. 아내에게 처음으로 제 불안한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겠다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내와 십여 년 세월을 함께 보냈지만 부들부들 떨고 있는 제 속내를 처음으로 보여줬습니다. 그때 아내가 해준 말이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중요한 것을 찾지 말고 소중한 것을 찾아요. 그러면 세상 모든 게 중요해 질 거예요.”
사진. pixabay.com
새벽이 밝도록 예술과 문학과 시와 철학을 이야기 하자 했는데...
지난 날 저는 늘 중요한 것만 바라보며 달렸습니다. 서울에서 맞벌이를 하며 대전과 밀양 양쪽 부모님 집에 두 딸을 맡겨 놓고 살다가, 일곱 살과 세 살이 돼서야 데려왔습니다. 좀 더 큰 집을 마련해 아이들을 데려올 생각만 하며 살았습니다. 백만 원 정도 나가는 낡은 중고차를 몰며 가족을 위해 좀 더 크고 안전한 차로 바꿀 생각만 하며 살았습니다. 회사나 집에서 늘 온 힘을 다해 중요한 것만 바라보며 뛰었습니다. 그러나 이리 허망하게도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달라져야 했습니다. 아내 말처럼 중요한 것보다 소중한 것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내면 저 깊은 곳에서 잊었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젊은 이십대 어느 날, IMF 시대에 대학 졸업을 일단 미루고 영어라도 배워보려고 미국으로 건너가 건물청소를 하며 지냈습니다. 그때 아내를 처음 만났습니다. 제가 청소하던 건물의 옆 건물 청소부가 아내였습니다.
돈은 없지만 아내와 라면국물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며 밤이 새도록 철학과 문학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약속했습니다. 나중에 결혼하더라도 지금처럼 새벽이 밝아오도록 예술과 문학과 시와 철학을 이야기하며 살자고 말입니다. 이런 소중한 약속을 지금껏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출퇴근 전철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블로그에 일기를 썼습니다.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전철을 탈 때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떠올리며 글을 썼습니다. 집안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주로 인문고전을 읽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반쯤 홀린 사람’처럼 읽고 또 읽었습니다.
다행히 파업은 해를 넘기지 않고 끝났습니다. 2012년 7월에 시작한 파업은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전 직원 고용안정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얻어내며 끝났습니다. 파업기간에 받지 못했던 월급도 대부분 받아냈습니다.
지난 날 저는 늘 중요한 것만 바라보며 달렸습니다. 서울에서 맞벌이를 하며 대전과 밀양 양쪽 부모님 집에 두 딸을 맡겨 놓고 살다가, 일곱 살과 세 살이 돼서야 데려왔습니다. 좀 더 큰 집을 마련해 아이들을 데려올 생각만 하며 살았습니다. 백만 원 정도 나가는 낡은 중고차를 몰며 가족을 위해 좀 더 크고 안전한 차로 바꿀 생각만 하며 살았습니다. 회사나 집에서 늘 온 힘을 다해 중요한 것만 바라보며 뛰었습니다. 그러나 이리 허망하게도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달라져야 했습니다. 아내 말처럼 중요한 것보다 소중한 것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내면 저 깊은 곳에서 잊었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젊은 이십대 어느 날, IMF 시대에 대학 졸업을 일단 미루고 영어라도 배워보려고 미국으로 건너가 건물청소를 하며 지냈습니다. 그때 아내를 처음 만났습니다. 제가 청소하던 건물의 옆 건물 청소부가 아내였습니다.
돈은 없지만 아내와 라면국물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며 밤이 새도록 철학과 문학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약속했습니다. 나중에 결혼하더라도 지금처럼 새벽이 밝아오도록 예술과 문학과 시와 철학을 이야기하며 살자고 말입니다. 이런 소중한 약속을 지금껏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출퇴근 전철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블로그에 일기를 썼습니다.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전철을 탈 때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떠올리며 글을 썼습니다. 집안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주로 인문고전을 읽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반쯤 홀린 사람’처럼 읽고 또 읽었습니다.
다행히 파업은 해를 넘기지 않고 끝났습니다. 2012년 7월에 시작한 파업은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전 직원 고용안정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얻어내며 끝났습니다. 파업기간에 받지 못했던 월급도 대부분 받아냈습니다.
사진.pixabay.com
영혼이 소중하다 일러주는 공부
파업은 끝나고 일상의 평화가 다시 찾아왔지만 저는 분명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한 공부를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세상이 중요하다고 가리키는 공부가 아니라 제 영혼이 소중하다고 일러주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파업하던 해 가을부터 참으로 신나게 공부했습니다.
2013년에는 책 읽고 글 쓰는 모임을 찾았습니다. 인문고전을 매주 1권 씩 읽고 20페이지 이상 리뷰와 1편의 칼럼을 매주 적었습니다. 이렇게 일 년 동안 50권 인문고전을 읽고 칼럼을 쓰는 제 모습이 보기 좋았던지 아내도 2014년 동일한 과정을 밟았습니다. 2015년 한 해 동안 준비하여 아내와 제가 함께 쓴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책이 2016년 1월에 나왔습니다.
책 출간이 계기가 되어 아내는 전업 작가이자 강사로 전국을 다니고 있습니다. 저도 종종 강의도 하고 <가톨릭일꾼>을 비롯한 몇 군데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의정부교구 주보에 ‘가톨릭인에게 권하는 신앙서적’ 시리즈를 쓰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와 제 가족에게 들이닥친 고난 덕분에 저와 제 가족 삶이 바뀌었습니다. 이 글을 적으며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보다 소중한 것을 찾는 삶을 살겠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지침을 알려 준 고난과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출처 : 위클리서울(http://www.weeklyseoul.net)
파업은 끝나고 일상의 평화가 다시 찾아왔지만 저는 분명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한 공부를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세상이 중요하다고 가리키는 공부가 아니라 제 영혼이 소중하다고 일러주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파업하던 해 가을부터 참으로 신나게 공부했습니다.
2013년에는 책 읽고 글 쓰는 모임을 찾았습니다. 인문고전을 매주 1권 씩 읽고 20페이지 이상 리뷰와 1편의 칼럼을 매주 적었습니다. 이렇게 일 년 동안 50권 인문고전을 읽고 칼럼을 쓰는 제 모습이 보기 좋았던지 아내도 2014년 동일한 과정을 밟았습니다. 2015년 한 해 동안 준비하여 아내와 제가 함께 쓴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책이 2016년 1월에 나왔습니다.
책 출간이 계기가 되어 아내는 전업 작가이자 강사로 전국을 다니고 있습니다. 저도 종종 강의도 하고 <가톨릭일꾼>을 비롯한 몇 군데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의정부교구 주보에 ‘가톨릭인에게 권하는 신앙서적’ 시리즈를 쓰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와 제 가족에게 들이닥친 고난 덕분에 저와 제 가족 삶이 바뀌었습니다. 이 글을 적으며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보다 소중한 것을 찾는 삶을 살겠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지침을 알려 준 고난과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출처 : 위클리서울(http://www.weeklyseou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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