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강의

악의 꽃/보들레르

모든 2 2018. 8. 13. 09:26

 

<악의 꽃> - 샤를 보들레르(황현산 역, 민음사)

 

  -만물조응-

 

자연은 하나의 신전, 거기 살아 있는 기둥들은

간혹 혼돈스러운 말을 흘려보내니,

인간은 정다운 눈길로 그를 지켜보는

상징의 숲을 건너 거길 지나간다.

 

밤처럼 날빛처럼 광막한,

어둡고 그윽한 통합 속에

멀리서 뒤섞이는 긴 메아리처럼,

향과 색과 음이 서로 화답한다.

 

어린이 살결처럼 신선한 향기, 오보에처럼

부드러운 향기, 초원처럼 푸른 향기들에

- 썩고, 풍성하고, 진동하는, 또 다른 향기들이 있어.

 

호박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것들의 확산력을 지니고,

정신과 감각의 앙양을 노래한다.

 

 

-이방인-

 

너는 누구를 사랑하느냐? 말해보라,

수수께끼 같은 사람아 아버지냐, 어머니냐, 누이? 아니면 동생이냐? 
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동생도 없소
친구들은? 친구라니 나는 아직 그 말의 뜻도 모르고 있는걸
조국은? 나는 조국이 어느 위도상에 있는지도 몰라
미인은? 미인이야 기꺼이 사랑하겠지. 불멸의 여신이라면
그럼 너는 황금을 사랑하느냐? 나는 황금을 미워해. 당신이 신을 미워하듯이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사랑하는가? 이 괴상한 이방인아
나는 구름을 사랑하지.. 저기 저 흘러 가는.. 구름.. 저 신기한 구름을.

 

 

-저녁의 해조-

 

이제 그 시간이 오네,꽃대 위에서 바들거리며

꽃은 송이송이 향로처럼 피어오르고

소리와 향기 저녁 하늘에 감돌고

우울한 왈츠에 나른한 어질머리!

 

꽃은 송이송이 향로처럼 피어오르고

아픈 마음 하나 떨리듯 바이올린은 흐느끼고

우울한 왈츠에 나른한 어질머리!

하늘은 대제단처럼 슬프고도 아름답네

 

아픈 마음 하나 떨리듯 바이올린은 흐느끼고

막막하고 어두운 허무가 싫어,애절한 마음 하나!

하늘은 대제단처럼 슬프고 아름답네

태양은 얼어붙은 제 피 속에 빠져들고

 

막막하고 어두운 허무가 싫어,애절한 마음 하나

저 빛나는 과거의 자취를 모두 긁어모으네

태양은 얼어붙는 제 피 속에 빠져들고...

그대의 추억이 내 안에서 성광(聖光)처럼 빛나네!

 

 

-넝마주의 술-

 

바람이 불꽃을 때리고 유리 등피를 흔들어 대는

가로등 붉은 불빛 아래,종종 보이는 것은,

폭풍의 누룩처럼 인간들 우글거리는

진창의 미로,낡은 성문밖거리 한복판에,

 

머리 주악거리며,비틀비틀,시인처럼

담벼락에 부딪치며 오는 넝마주이 한 사람,

제 신하 놈일 뿐인 밀정 따윈 아랑곳도 없이

제 온갖 포부를 영광스런 계획으로 털어놓는다.

 

선서를 하고,숭고한 법률을 공포하고,

악인들을 타도하고,희생자를 들어 일으키고,

옥좌에 드리운 닫집 같은 하늘 아래서

제 자신의 찬란한 덕행에 도취한다.

 

 

 

-원수-

 

내 청춘 한갖 캄캄한 뇌우였을 뿐,

여기저기 눈부신 햇살이 뚫고 비쳤네,

천둥과 비가 하도 휘몰아쳐 내 정원에는

빠알간 열매 몇 안 남았네.

 

나 지금 사상의 가을에 닿았으니,

삽과 갈퀴 들고 다시 긁어 모아야지,

홍수가 지나며 묘혈처럼 곳곳이

커다란 웅덩이를 파놓았으니.

 

누가 알리, 내가 꿈꾸는 새로운 꽃들이

모래톱처럼 씻긴 이 흙속에서

활력이 될 신비의 양분을 얻을지를

-------오 괴로워라! 오 괴로워라!<시간>

생명을 파먹고 심장을 갉는 정체모를<원수>

우리 흘리는 피로 자라며 강대해지는구나!

 

 

-취하라-

 

항상 취하라

그것보다 우리에게 더 절실한 것은 없다

시간의 끔찍한 중압이 네 어깨를 짓누르면서

너를 이 지상으로 궤멸시키는 것을 느끼지 않으려거든

끊임없이 취하라.

 

무엇으로 취할 것인가

술로,시로,사랑으로,구름으로,덕으로

네가 원하는 어떤 것으로든 좋다

다만 끊임없이 취하라

 

그러다가 궁전의 계단에서나

도랑의 푸른 물 위에서나

당신만의 음침한 고독 속에서

당신이 깨어나 이미 취기가 덜하거나

가셨거든 물어보라

 

바람에게,물결에게,별에게,새에게,시계에게,

지나가는 모든 것에게,굴러가는 모든 것에게

노래하는 모든 것에게,말하는 모든 것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바람이,물결이,별이,새가

시계가 대답해 줄 것이다.

 

취하라,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항상 취해 있으라

술이건,시건,미덕이건 당신 뜻대로

 

 

-미(美)-

 

나는 아름답다,돌의 꿈처럼,오 덧없는 인간들아!

너희들이 저마다 차례차례 상처를 입는 내 젖가슴은

진료처럼 영원하고 말없는 사랑을

시인에게 하나씩 불어넣도록 만들어진 것.

 

나는 저 알지 못할 스핑크스처럼 창공에 군림하여,

백설의 마음을 백조의 순백에 결합하고,

선을 움직이는 운동을 미워하니,

결코 나는 울지 않고,결코 나는 웃지 않는다.

 

시인들은,오만한 기념물에서 빌린 듯한

내 당당한 자태 앞에서

준엄한 연찬으로 그들의 나날을 소진하리라!

 

이 고분고분한 애인들을 홀리기 위하여,

만물을 더욱 아름답게 보여 주는 순결한 거울,

내 두눈,내 영원한 광채의 거대한 눈을 가졌기 때문에

 

 

-고통의 연금술-

 

어떤이는 제 열정으로 너를 비추고

또 어떤 이는 내 속에서 제 슬픔의 눈물을 놓는다. 자연이여...

어떤 이에게 '묘지여'라고 말하는 것은

다른 이에게는 '생명과 광채여'라고 말하는 것

 

나를 보살피고

언제나 나를 겁나게 하는 수수께기의 헤르메스여

너는 나를 연금술사 중에 가장 슬픈

마이더스와 같게 만드는구나

 

너에 의해 나는 금을 쇠로

천국을 지옥으로 변하게 만든다

흰구름의 수의(상복)속에서

 

사랑하는 이의 주검을 찾아

천국의 기슭 저편에서

난 대석관들을 새우리라

 

 

-알바트로스-

 

뱃사람들은 종종 장난삼아

거대한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지나치는 배들을 시름없는

동행자처럼 뒤쫓는 바다의 새를

 

배의 바닥에 내려놓자 이 창공의 왕자는

어색하고 창피스런 몸짓으로

커다란 흰 날개를 노처럼

슬프고 가련하게 질질 끄는구나

 

이 날개 달린 항해자의 어색함과 나약함이여

한때 그토록 멋지던 그가 얼마나 슬프고 추악한가

어떤 이는 담뱃대로 부리를 쿡쿡 찌르고

어떤 이는 절뚝절뚝 날던 하늘의 불구자를 흉내 낸다

 

시인도 푹풍속으로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

이 구름의 왕자처럼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상에 갇히니

그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되는구나

 

*알바트로스:우리말로 신천옹이라 불리는  이 새는 2m가 넘는 날개를 우아하게 펄친 채 하늘을 나는 새로 유명하다. 하지만 지상에 내려온 앨버트로스는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처럼 위태롭게  뒤뚱거린다. 2m가 넘는 날개가 오히려 거추장스럽다,앨버트로스에게는 평지 도약도 힘겹다. 해안간 절벽 같은 곳에 둥지를 틀고 살면서 기류를 이용해 활강을 하듯 날아오르는 앨버트로스에게 평지에서 이륙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앨버트로스는 이상주의자를 상징하는 의미로 많이 쓰였다.

  

 

 

- 삶 위로 날며,꽃들과 말 없는 것들의 말을

애쓰지 않고 알아듣는 자 복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