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무드는 감정을 방해한다
<여우-아이>의 작가 정인경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등에 지고 태어난다고. 청춘이 지나간 자리에서 자신이 풀어낸 이야기를 돌아보면 살아온 날들이 정말 기적이지요? 살아온 날들의 기적 속에서 살아갈 날들의 기적을 믿으며 두려움 없이 뚜벅뚜벅 걸어갈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삶의 주인공이 아닐까요?
오르세 미술관전에서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저 그림은 살아온 날들이 기적이었던 삶의 주인공, 바로 파르시팔의 이야기입니다. 제목이 ‘꽃밭의 기사’라고 되어 있는데, 신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쉽게 친숙해질 그림입니다. 저 그림은 남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곱씹게 만드는 이야기, 파르시팔 신화를 그린 것입니다.
사내랄 수 있는 남자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칭찬을 듣고 싶은 여자가 곁에 있어야 합니다. 여성은 남성의 영감의 원천이자 행위의 동기니까요. 파르시팔의 영감의 원천은 블랑쉬 플레르(Blanche Fleur)라는 여인입니다. 하얀 꽃이라는 그녀의 이름만으로도 그녀가 파르시팔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지요? 그 하얀 꽃이 살고 있는 성이 적군에게 위협을 받자 하얀 꽃은 파르시팔에게 도와달라고 청합니다. 물론 파르시팔은 목숨을 걸고 침입자를 몰아냅니다. 남성을 싸울 줄 아는 사내로 만드는 것은 여성적인 힘이니까요.
남성의 심장에는 아니마(anima) 즉, 내면의 여성이 집을 짓고 있습니다. 심장에 자리 잡고 있는 내면의 여성이 병이 들면 남성은 사내가 될 수 없습니다. 사내가 되는 길에서 중요한 것이 여성과의 관계인데, 저 꽃밭의 파르시팔은 남성이 여성적인 것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그 모범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습니다.
파르시팔이 마법에 걸린 것처럼 허공을 바라보고 있지요? 아무래도 표정이나 행동이 이상합니다. 상황은 그야말로 꽃밭인데, 파르시팔은 무표정하지요? 유혹에 무감각해서 무표정한 게 아니라 유혹을 견디는 훈련을 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유혹이 목적이라는 듯 남자를 홀리려는 여인들이 오히려 비현실적입니다. 저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겠습니다. 사랑하되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겠지요.
조르주 로슈 그로스 '꽃밭의 기사' 1894. 캔버스에 유채, 235×374㎝, 오르세 미술관
성배의 성에 들어가기 위해 파르시팔이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있습니다. 우선은 싸움입니다. 싸움을 좋아해서도 안 되지만 두려워해서도 안 되고, 잘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적기사와의 싸움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무드에 사로잡히지 않고 사랑할 줄 아는 것입니다. 쉽게 무드에 취하는 남자에겐 여자는 많지만 짝은 없습니다.
저기 저 몽환적 자태의 무수한 요정들은 남자가 빠져들기 쉬운 무드의 상징이겠습니다. 많은 남성들이 실수하고 실패하는 곳이 바로 무드입니다. 쉽게 무드에 사로잡히시나요? 그 심지 없는 성정을 바람처럼 자유롭게 사는 것이라 포장하는 젊음은 호되게 삶의 바람을 맞고 바람처럼 울어야 할 것입니다. 로버트 존슨은 에서 파르시팔의 위대함은 감정이 풍부하면서도 무드에 빠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고 합니다. 감정은 가치를 부여하는 능력이지만, 무드는 진정한 감정을 방해한다는 거지요.
“무드는 진정한 감정을 방해한다. 남성이 무드에 사로잡혀 있을 땐 진정한 감정에 대한 능력은 자동적으로 상실하게 된다. 예로부터 남자가 내면의 여성의 꼬임에 넘어갔다는 표현을 해왔는데 이럴 때 남성은 내면의 여성성을 적절하게 바깥으로 표현할 수 없게 된다. 남성이 무드의 지배를 받을 때는 자기 내면의 집에서 주인이 되지 못한다.”
원래 저런 꽃밭은 무드에 사로잡힌 원기 왕성한 남자들이 원하는 행복의 모습입니다. 로버트 존슨은 경고합니다. 야릇하게 들뜨게 만드는 저런 유혹은 마침내 우울증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고. 그나저나 저런 무드에 빠지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걸까요? 진부하지만 그것은 서로 믿고 의지하며, 서로의 소망을 아끼고 서로의 미래가 되어준다는 것이겠지요. 무드는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갑습니다. 그래서 거기서는 함께 꿀 수 있는 꿈이 자라지를 못합니다. 반면 사랑은 따뜻하고 시원한 것, 온유한 것이어서 함께 꿈꿀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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