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별까지는 가야한다 / 이기철

모든 2 2018. 5. 12. 13:13




별까지는 가야한다 / 이기철


우리 삶이 먼 여정일지라도
걷고 걸어 마침내 하늘까지는 가야 한다
닳은 신발 끝에 노래를 달고
걷고 걸어 마침내 별까지는 가야 한다

우리가 깃들인 마을엔 잎새들 푸르고
꽃은 칭찬하지 않아도 향기로 핀다
숲과 나무에 깃든 삶들은 아무리 노래해도
목쉬지 않는다
사람의 이름이 가슴으로 들어와 마침내
꽃이 되는 걸 아는 데
나는 쉰 해를 보냈다
미움도 보듬으면 노래가 되는 걸 아는 데
나는 반생을 보냈다

나는 너무 오래 햇볕을 만졌다
이제 햇볕을 뒤로 하고 어둠 속으로 걸어가
별을 만져야 한다
나뭇잎이 짜 늘인 그늘이 넓어
마침내 그것이 천국이 되는 것을
나는 이제 배워야 한다

먼지의 세간들이 일어서는 골목을 지나
성사(聖事)가 치러지는 교회를 지나
빛이 쌓이는 사원을 지나
마침내 어둠을 밝히는 별까지는
나는 걸어서 걸어서 가야 한다

 

- 계간 <문학동네> 1998 여름호 -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때 묻곤 하지.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왜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이 글은 빈센트 반 고흐가 어느날 동생 테호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며, 그는 얼마 후 스스로 별까지 곧장 가는 방법을 택했다.


 이기철 시인은 걸어서 걸어서 세상의 이치 다 깨우쳐가며 별까지 가야한다고 한다. 아무리 별이 천국인들 날아가거나 곧장 갈 의사는 전혀 없어 보인다. 어둠을 밝히는 별로 가기 위해서는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먼지의 세간들이 일어서는 골목을 지나, 성사(聖事)가 치러지는 교회를 지나 빛이 쌓이는 사원을 지나...거쳐야할 곳들도 많다.


 어린왕자는 소혹성 B612호 출신이다. 별을 순례하는 어린왕자에게 지구는 일곱번 째 별이자 맨 마지막 여행지다. 지구로 온 어린왕자가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한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사막에 떨어진 구닥다리 비행기로는 먼 곳을 여행하기 힘들다는 어린왕자의 말에 비추어보면 그런 종류의 대중수단은 아닌 것 같다. 해리포터 등이 낯설지 않다면, 그리고 슬기로운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가르쳐준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을 떠올리면 그 추측 또한 어려울 것은 없겠지만...


 이 우주에는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모래알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별들이 있단다. 몽상가나 시인이 그렇게 추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과학자가 실제로 탐구하여 질량 등을 계산해서 밝혀낸 숫자란다. 우리 은하계만 해도 천억 개 이상의 별이 있고 그런 은하계가 또 천억 개나 된단다. 그래서 사람마다 각자의 별이 있으며, 그의 생각과 행동이 별의 움직임에 반영된다고도 한다.


 시인은 그런 별의 운행과 별의 모습을 잘 아는 듯하다. 그래서 별을 순례하는 어린왕자 같다는 느낌도 든다.

우리가 아는 어린왕자의 복장을 살짝 입혀보면 잘 어울릴 것도 같다. 어떤 이의 표현을 빌자면 일상의 걸음걸이 방식 역시 지상에서 스키를 신고 걷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정말 공감이 가는 표현이다. 별까지 걸어서 갈 요량을 하는 시인의 걸음걸이가 예사로울 수는 없지 않겠는가.


 (오늘 그 이기철 시인의 시를 읽는 ‘시하늘’ 모임이 있다. 상춧잎과 미농지처럼 여리지만 순수함으로 가득한 이기철 시인의 시를 모여서 함께 읽는 일은 트라우마를 수시로 겪는 우리 삶에 작은 위안이 되고 치료제 역할로도 충분히 기능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