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일꾼 CATHOLIC WORKER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2018년 4.5월

모든 2 2018. 4. 16. 20:09




가장 아픈 사랑,예수

부활하다

한상봉




 도 슈사쿠가 지은 <그리스도의 탄생>(1984.홍성사)은 놀랍게도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아니라,그리스도교의 탄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아마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진면목이 재발견됨으로써,그리스도교가 탄생했다는 뜻일 것이다. 이 글에는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배신과 상봉이 짙은 빛깔로 배어 있다. 그들은 어설프게 헤어지고,더 깊은 차원에서 다시 만났다.

  예수님이 체포당하던 그날 밤 모든 게 끝장났다. 정작 성전경비대가 예수님을 연행하러 왔을 때,제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물론 그분에 대한 마음을 아예 접을 수는 없었지만,베드로가 가야파의 저택을 기웃거린 것은 그런 미련때문이었을까. 제자집단의 대변인을 자처하던 베드로의 마음은 곧 제자단 모두의 마음이었다. 그들은 확신이 없고,허약하고,비겁하고,그래서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배신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겁함에 '인간적으로'통곡하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다. 그래서 남은 것은 두려움이었다. 그분이 얼마나 자신들을 원망할지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

 

  당시 처형당하는 자들은 십자가 위에서 구경꾼들에게 넋두리를 늘어놓거나,저주를 하거나 기도를 올리곤 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그 말씀이 분명 자신들을 향하리라 예상했다. 예수님은 오전 9시에 못 박히고,정오부터 어둠이 덮쳐오고,오후 3시에 숨을 거두었다. 그동안 예수님은 있는 힘을 다해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끊길 듯 끊길 듯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을 것이다.

  엔도 슈사쿠는 그 말에 집중한다. 죽기 직전에 예수님이 하신 유명한 그 말씀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마르15,34) '저의 하느님,저의 하느님,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말이다. 이 절망적인 호소에서 "제 목숨을 당신 손에 맡기니,주 진실하신 하느님,당신께서 저를 구원하시리이다."(31,6)까지 이어지는 시편을 외우고 계셨을 것이다.

  더욱이 예수님은 몽롱한 의식 속에서도 "아버지,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하고 말하였다. 이 마지막 남긴 유언을 제자들은 나중에 십자가 아래 모여 있었던 여성 제자들에게 당연히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분이 뭐라고 하셨어?" "...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과 자기를 저버린 제자들을 향한 원한이나 증오의 말을 한 마디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기들에게 하느님의 노여움이 내리는 것도 바라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았다. 벌을 바라기는커녕 제자들의 구원을 위해 스승이 기도했다는 것도 알았다.

  제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사랑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자비란 이런 것이었다. 십자가 위에서,격심한 고통과 혼탁한 의식 속에서도 여전히 자기를 저버린 이들을 사랑하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예수님. 제자들은 이런 사랑을 처음 경험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라는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백인대장은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고 말할 수 있었다.


  엔도 슈사큐는 이때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그분이 평소 말씀하신 게 무슨 뜻인지 알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마을과 호숫가를 떠돌며 함께 지낸 나날들,수수께끼 같았던 이야기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고.그들은 현실에서 무력했던 한 사람에게서 더 영원한 무엇이 있음을 발견했다.

  복음서 어디에서도 부활한 예수님이 제자들을 타박하거나,배신의 이유를 물었다는 말은 들을 수 없다. 예수님은 그들을 만날 때마다 "평화'를 빌어 주었고, 요한 복음서에서는 그분이 빵도 집어 주시고 생선을 집어 주셨다고 전한다. 그래서 엔도 슈사큐는 '예수님은 실제의 부활사건 전에 제자들 가운데서 '부활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명박은 부활하지 못한다


  예수님처럼,기자회견에서 "제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 달라."고 말한 전직 대통령이 있다. 실제로 복음서에서는 예수님만 연행되었을 뿐,다른 제자들은 한 사람도 붙잡혀가거나 처형당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안타깝게도 정작 검찰조사가 시작되자,모든 불법행위를 부인하고,"불법행위가 있었다면 나랑 상관없이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저지른 것"이라 강변했다.

  예수님처럼 이 불행한 대통령의 모든 수하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등을 돌리고,"대통령이 시킨 일"이라고 진술했다. 그러자,이 대통령은 '자기들 죄를 덜려고 거짓말 하는 것"이라고 수하들과 공방을 벌였다. 대선후보 경선에서 상대 후보가 도곡동 땅과 BBK 소유주 논란을 일으키자 '여러분! 이거 다 새빨간 거짓말인 거 아시죠?" 하고 목청을 돋운 것처럼. 그리고는 검찰조사에 응하지 않고 지금도 예수님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 대통령이 복음서를 많이 읽기는 한 모양이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처럼 대한민국이 나를 박해하고 있지만,'나는 그래도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소망교회 장로이며,대단한 신심가이다. 대통령이 되고서도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무릎 꿇고 기도해서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이 대통령에게 마지막 남은 과업은 십자가에 매달리는 일뿐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 그 자리에도 수하들은 없을 텐데,문제는 부활이다.

  예수님은 원하는 마음마저 버리고,'가난한 채'돌아가셨다. 그래서 하느님이 나머지를 모두 채워주실 것이다. 제자들은 그를 다시 기억해내고,그분의 사랑 때문에 흐느끼고,그분처럼 살기로 작심할 것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끝끝내 땅에 묻어 둔 차명재산들이 사방에서 에워싸고 그를 '죄인'이라 고발할 것이다. 한 사람은 세상을 위해 나를 죽였지만,또 한 사람은 나를 위해 나를 팔아먹었다. 그는 스스로 뱃속을 가득 채웠기에,하느님께서 채워주실 복이 없다. 그러니 부활은 언감생심이다.

  사두가이파 대사제의 얼굴을 한 대통령은 예루살렘 성전처럼 그의 재물과 함께 무너져 내릴 뿐이다. 그는 그릇된 종교심의 가장 추악한 얼굴을 보여 주었다.



Saint for the Peace


저 흙속에 저 바람이 성 이시도로 농부

Saint Isidore the Farmer(1070~1130)


브랜든 보트


St.Isidore by Ade Bethune


  나는 평범한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수수한 영웅들을 좋아한다. 문지기,요리사,가정주부,노동자 성인이다. 그들은 영적 갈망과 존엄성을 갖고 자신들의 작은 책임들을 수행하는 데에 만족하고,사람들이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아도 괘념치 않는다.

  그래서 나는 가난하고 겸손한 농부,성 이시도로에게 이끌렸다. 그는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다.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나 성 암브로시오 같은 예리한 지성인들과 나란히 갈수 없다. 그러나 이시도로는 들에서 하는 힘들지만 단순한 노동을 기뻐했다. 그런 시간에 성찰하고 기도할 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농장에서 하느님을 찾았고 땅을 가꾸는 동안 영혼에 필요한 양분을 취하였다.

  나는 특별하게 이시도로에게 매혹되고 있다. 그가 11세기 교회의 몇 안 되는 결혼한 성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마리아 드 라 카베자도 똑같이 신심이 깊어서 남편과 함께 성인품에 올랐다. 이시도로의 단순하고 흙냄새 나는 영성과 결혼생활의 조화는 이시도로를 스페인의 가장 존경받는 성인들 중의 한 사람이 되게 했고,창조물을 보살피는 사람들에게 수호자가 되도록 하였다.


  성경과 자연,하느님이 쓰신 두 권의 책


  이시도로는 1070년 경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가난하지만 독실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는 소작농으로서 부유한 지주 후안 데 바르가스라는 사람을 위하여 일하고 있었다. 이시도로는 가난했지만,그의 가난이 작은 것이라도 다른 이들과 나누더 먹는 행위를 위축시키지 않았다. 그는 정기적으로 동료 소작인들을 먹이기 위하여 자신의 식사를 더 작은 조각으로 쪼갰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농장의 동물들과 강한 유대를 맺었으며,그들을 절대로 폭력적으로 그리고 무시하면서 대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리고 무시하면서 대하지 않았다. 이러한 친근한 관계는 이시도로가 짐승을 키우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가 처음 바르가스를 위하여 일하기 시작했을 때,동물의 수는 꽤 적었다. 그러나 짧은 시간 내에 이시도로는 가축의 수를 엄청나게 증가시켰다.

  이시도로의 초기 삶은 세밀하게 알려져 있지만,사실 어디에서 사실이 끝나고 어디에서 전설이 시작되는지 말하기가 어렵다. 이시도로의 전기는 그가 죽은 지 150년이 지나도록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오랫동안 촉적된 기이한 일화들이 많이 덧붙여졌다. 예를 들면,이시도로는 매일 아침 들판에 나가기 전에 마드리드의 미사에 참석하였고,들에 나가서도 자주 기도 하였다. 시기하는 동료 일꾼들이 주인에게 불평을 하고 기도생활로 이시도로가 늦게 일을 시작한다고 일러바쳤다.

  주인이 이시도로에게 영문을 묻자,단순한 농부는 혐의를 부인하지 않았다. "주인님,다른 일꾼들보다 제가 일을 늦게 시작하는 것이 사실일지 모르지만,저는 기도 때문에 빼앗긴 몇 분을 따라잡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일합니다. 저는 주인님이 다른 사람들의 일과 제 일을 비교해 보시길 바랍니다. 만일 제가 조금이라도 주인님 것을 속여서 가졌다면,거꺼이 저의 개인 창고에서 가져다가 당신에게 갚을 것입니다." 믿지 못한 주인은 어느 날 아침에 숨어서 지켜보았는데,과연 이시도로가 늦게 나나났다. 주인은 그를 혼내려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주인은 멀리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눈처럼 하얀 황소 떼가 이시도로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천사 같은 존재들에 이끌려 밭을 일구고 있었다.

  언젠가 주인이 들판을 내다보니,이시도로의 양쪽에서 천사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밭을 갈아엎고 있었다. 주인은 그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따. 그날 이시도로의 소출을 따져보니,통상 세 명의 일꾼들이 일한 양과 똑같다.

  이런 전설 같은 이야기들은 이시도로가 노동과 기도,자연을 통합시키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그의 영적 삶은 창조와 깊이 연결되었다. 어느 하나가 무시되다면 다른 하나도 살아 남을 수 없다. 신학자들은 자주 하느님이 두 책을 썼다고 제안한다. 하느는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의 책이다. 이시도로처럼 우리도, 두 책을 다 읽어야 영적으로 성장 할 수 있다.


  흙의 영성


  이시도로는 노동을 기도의 기회로 삼았다. 밭을 돌보면서 자주 하느님께 말을 건네고,성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농장은 하느님께서 주신 자연의 선물을 관리하는 것이고,갖는 것이라고 여겼다. 땅은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졌지만,단지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땅이라고 이시도르는 참으로 믿었다.

  땅과 맺은 특별한 관계는 더 많은 기적으로 강조되었고,이시도로의 삶에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예를 들면,눈 오는 어느 날,그는 동료 일꾼들과 함께 엄청난 양의 옥수수를 가루로 빻으려고 방앗간에 갔다. 가는 길에 보니,한 떼의 비둘기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얼어붙은 땅바닥을 쪼고 있었다. 불쌍한 생각이 들자,이시도로는 몸을 굽혀 옥수수 부대의 절반을 땅에 쏟아 부었따. 동료들은 즉시 그를 조롱하고 꾸짖었다. 그러나 방앗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시도로의 옥수수부대가 완전히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게다가 이시도로가 옥수수를 빻았을 때,그 양은 보통 나오는 가루보다 두 배나 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든,이 이상한 에피소드는 로버트 배론 신부가 말하는 것처럼,"은총의 고리"를 보여준다. 너무나 풍요롭게 거저 주어지고 배가 되는 은총이다. 우리가 피조물을 적절하게 돌보면,하느님이 창조하신 땅은 실제로 그리고 상징적으로,넘치는 열매로 응답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흙의 영성을 알려준다. 전승에 따르면,한번은 그의 주인이 몹시 갈증을 느껴 이시도로에게 물을 청했다. 그때는 한창 여름이러서 땅이 몹시 말라 있었다. 가장 가까운 강도 몇 마일은 가야 있었다. 이때 이시도로는 땅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는데,거의 즉각적으로 땅에서 샘이 신선한 물을 뿜어내기 시작했고,그는 주인을 위해 물한 컵을 채울 수 있었다.

  이시도로는 1130년에 죽었다. 거의 500년이 지난 1622년 3월 12일. 교종 그레고리오 15세는 교회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시성식을 거행하였다. 이때에 네 명의 영적 거인들이 시성된 것이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아빌라의 성녀 데레사,그리고 성 필립보 네리였다. 그렇지만 교종은 이런 성인들과 함께 단순하고 열심한 농부 이시도로도 함께 성인품에 올렸다. 그 바람에 이시도로 성인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오늘날 이시도로는 농민과 소작인들,벽돌공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스페인의 마드리드,레온 그리고 사라고사를 포함한 여러 도시들에서 이시도로는 수호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보살피고,보호하며,선을 요구하는 일


  이시도로는 거룩한 농부였으며,피조물에 대한 보살핌에 관하여 교훈을 남겼다. 이시도로는 자연환경과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다. 환경재해가 발생하며,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태풍과 쓰나미로 기름이 흘러나오고,삼림이 파괴되는 등 자연세계가 손상을 입으면,가난한 가족들은 그들의 집과 식량 혹은 수입의 출처까지도 잃어버리게 된다.

  교회는 끊임없이 피조물에 대한 보살핌을 '정의의 문제'라고 말해 왔다. 사회교리에서는 이렇게 언급한다. '환경보호는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의무이며,공동선을 존중하는 문제이다."이시도로는 땅을 경작할 때나,곡물을 빻을 때,그것이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알았다. 그의 주인과 자기 자신,또한 식량을 마련할 아무런 수단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위한 것임을 알았다. 이처럼 모든 피조물은 그에게 관리해야 할 선물이고 공동선을 위한 것이었다.


출처-<참사람되어>20147년 8월호,브랜든 보트의 <성인들과 사회정의-세상을 변화시키는 길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