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6년 주보

사순 제 1주일 2016년 2월 14일(다해)

모든 2 2016. 2. 14. 22:00

 천안 성정동 성당(천안 서부지구)

본당 설립:1993.8.10/주보성인:성 정하상 바오로

 

  +  루카복음. 4,1-13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유혹을 받으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사십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 시장하셨다. 그런데 악마가 그분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한순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며,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 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하고 대답하셨다.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말씀의 향기>

 

기도로 유혹을 이겨냅시다. -황선영 라우렌시오 유천동 주임

 

  우리는 많은 유혹을 받고 사는데, 그중 가장 무서운 것은 하느님께서 정말 계시는가 하는 의심입니다. 기도를 해도 헤어나지 못하는 절망 속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게 됩니다. 이런 의심은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기도하려는 의지조차 꺾어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해야 할 것입니다

 

오른 제1독서는 신명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 앞에서 자기들이 신앙을 고백하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집트로 내려가 이방인으로 살다가 학대를 받고 하느님께 부르짖었는데,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전하는 신앙은 온갖 유혹 속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정말 많은 유혹을 겪었습니다. 그중 가장 큰 유혹은 정말 하느님께서 계시느냐는 그분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 하느님을 믿지 않는 남의 나라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그 나라 사라들로부터 하느님이 어디 있냐는 모욕을 받았을 때, 정말 하느님께서 자기들 가운데 계시는지 의심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하느님을 원망하고 그분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렇지만 결코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을 원망하고 그분께 부르짖었다는 것은 적어도 그분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어려움 때문에 하느님의 존재가 의심스러운 적이 많이 있었지만, 그런 유혹을 이겨내고 끝까지 그분을 믿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악마가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악마는 이렇게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말로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든 바람이 항 상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정말 하느님의 아드님이신지, 또 하느님께서는 정말 계시는지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악마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이라고 한 말은, 악마의 유혹을 받는 우리가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우리의 바람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유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조차도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때문에 유혹이 항상 도처에 있음을 알고 빠지지 않도록 우리의 믿음을 하느님께 두도록 합시다. 특히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것처럼 사순시기를 지내는 우리는 평소보다 더 많은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많이 유혹을 받는 만큼 그것을 이겨냈을 때 우리의 믿음이 더욱 자랄 것입니다. 그러니 많은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또 유혹에 넘어갔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합시다.

 

 

<고해성사 다시 보기(2)>

 

손 씻는 빌라도, 죄의식 없는 이 시대의 자화상

 

  사형수 예수님과 유대 지도자들 사이에서 폭동이 일이 날까 두려워하던 빌라도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한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의 일이오."(마태 27,24 참조)

 

  세상 곳곳에서 발생하는 비참함과 불의와 아픔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아파하며 눈물도 흘린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러한 상황을 야기한 원인들과 해결책에 집중한다. 하지만 진정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이내 전가할 뿐이다. "남들도 다 한 던데..", "상사의 지시를 따른 것뿐입니다.", "저는 모르고 한 일입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이러한 모습들은 진리와 책임으로부터 달아나려 했던 시대의 죄인들, 곧 빌라도의 그림자는 아닐까?

 

  "금세기의 대표적인 죄는 죄에 대한 감각의 상실에 있습니다."라고 교황 비오 12세가 지적한 것처럼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제와 죄의 상황들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죄 많은 인간들이 있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죄에 대한 의식에 대한 경계와 성찰을 게을리하거나 그 상황에 대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올바로 회개하지 않는 한, 아무리 외적인 법이나 구조와 제도를 바꾼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불완전하여 늘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화해와 참회 16항 참조)

 

  오늘날 죄에 대한 감각(죄의식)이 흐려진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하느님께 대한 감각'이 흐려진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교회는 지적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인간의 가장 은밀한 안방이요, 인간이 자기 혼자서 하느님과 같이 있는 지성소"(사목헌장 16항)라고 규정한 바 있는 인간의 양심은 인간의 자유와는 절대로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양심이 둔화되면 하느님께 대한 감각도 흐려지게 되고 따라서 죄에 대한 감각도 소멸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죄에 대한 건전하고도 합당한 감각을 회복하는 일은 현대인을 위협하는 심각한 정신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진다는 것이요,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바라보되 변명하거나 부인하지 않고 그 잘못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결정이었음을 인정하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 중 하나이다.

 

  오늘날 고해성사의 위기를 말하면서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기피한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위기의 핵심은 죄의식의 부재(不在), 곧 죄의식을 갖지 않는 내적 태도이다. 매 미사 때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내 탓이오"를 외치는 신앙인이라면, 고해성사 역시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1 요한 1,8)

 

-송인찬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신학원 전례 담당 겸 전례 꽃꽂이 교육원장)-

 

 

 <이충 무이 행복 나침반 (97)>

 

2월이 짧은 이유

마음 치장이 행복준비

 

  한 시간이 60분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숫자에 불과할 뿐, 모든 사람이 한 시간을 60분으로 똑같이 느끼지는 않습니다. 시간은 우리 마음 상태에 따라 때로는 길게 혹은 짧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간을'심리적'시간이라고 부릅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있을 때의 1시간은 1분과도 같지만 불편한 사람과 함께하면 10시간처럼 지루해집니다. 신나는 공연은 50분이 5분처럼 짧게 지나가지만, 수업이 막 끝나가는 무렵의 5분은 50분처럼 느리게 지나가기 마련이죠.

 

  일 년 열두 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어떤 달은 너무 분주하게 지나가는 것 같고, 어떤 달은 지루하지 짝이 없습니다. 5월에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은 5월이 가장 짧게 느껴지고, 11월에 직장을 잃은 사람은 11월이 가장 길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2월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다른 달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시간이 참으로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왜 2월은 우리에게 일 년 중 가장 느린 달로 다가오는 걸까요?

 

  그것은 아마도 2월이'준비의 달'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새 봄, 새 학년, 새 친구, 학교를 졸업하고 만나는 새로운 사회생활을 준비해야 하는 2월.. 익숙했던 공간에서 벗어나 생소한 미지의 공간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는 시간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완전히 멈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확실하게 달릴 수도 없는 상태에서는 어정쩡한 걷기만 계속될 뿐입니다. 추위도 똑같은 추위임에도 겨울의 끝자락이라 더 견디기 힘들고, 따뜻함도 아직 완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기쁨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어수선함 속에서 우리가 쉽게 지쳐 버릴까 봐 하느님은 2월에서 이틀이라는 시간을 줄여주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봄날을 좀 더 편안하고 화사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배려하셨으니, 이제 우리가 서둘러야 할 때입니다. 겨울 내내 웅크렸던 마음의 근육을 풀고, 봄을 닮은 미소로 입술을 치장하며 새로운 이웃들을 만나야 할 때입니다.

 

  항상 길고 무겁게만 느껴졌던 2월의 시간.. 올해 2월은 이틀이 아니라 이십일이 줄어든 것 같은 느낌으로 달려 보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부담스러운 준비가 아니라, 나를 아는 사람들이 새로운 나를 보게 되는 그런 설렘의 준비를 하면서 말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고통보다 큰

참음에서 피는 꽃

 

주님의 말씀이 저희를

자유롭게 하여

 

우리가 우리를

용서하게 하소서.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재의 수요일 아침에 -이해인-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

 

이마에 재를 얹어 주는 사제의 목소리도

잿빛으로 가라앉은 재의 수요일 아침

꽃 한 송이 없는 제단 앞에서 눈을 감으면

삶은 하나의 시장기임이 문득 새롭습니다.

 

죽어 가는 이들을 가까이 지켜보면서도

자기의 죽음은 너무 멀리 있다고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 나도 숨어 있습니다.

 

아름다움의 발견에 차츰 무디어 가는

내 마음을 위해서도

오늘은 맑게 울어야겠습니다.

 

먼지 낀 마음의 유리창을

오랜만에 닦아 내며 하늘을 바라보는 겸허한 아침

하늘을 자주 바라봄으로써

땅도 사람도 가까워질 수 있음을

새롭게 배웁니다.

 

사랑 없으면 더욱 짐이 되는 일상의 무게와

나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조차

담담히 받아들이는 일

이 또한 기도의 시작임을 깨닫는

재의 수요일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