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여든셋 시인의 ‘창조적 긴장’ 그래서 웃을 수 있다 한국문학은

모든 2 2023. 1. 28. 11:44

[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14>영원한 예술인 황동규

 

며칠 몰아쳤던 한파가 그치고 제법 포근해진 겨울날, 서울 사당동의 한 음식점에서 선생을 만났다. 선생은 1938년생, 올해 여든셋이다. 195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64년 동안의 시력(詩歷)을 균질하게 쌓아 온 한국의 대표 시인으로서 선생은 언제나 시단에 새로운 충격과 미학적 지평을 일관되게 부여해 온 ‘젊은 시인’이다. 이제는 노경의 삶을 은은하게 이루어 가면서 그만의 언어적 연금술을 균질적이고 지속적으로 쌓아 가고 있다.“벌써 그렇게 됐네요. 아마 서정시를 60년 이상 써 온 실례는 저 말고는 참 드물 거예요.” 한국 시사(詩史)에서, 아니 세계적으로도 그것은 선생이 거의 유일한 케이스일 것이다. 

 

▲ 최근 한파가 다소 누그러진 겨울날에 만난 황동규 시인은 그가 추구해 온 극성과 서사를 장착한 ‘극서정시’에, 세월이 흐르면서 녹아든 지혜를 담은 그의 시세계를 들려주었다.

그동안 선생이 취해 온 방법론적 긴장과 심미적 꿈은 ‘20세기 후반 한국의 시사’(김주연)라는 평가를 가져왔다. 이때 우리는 선생의 시를 빼고 1960년대 이후 한국 시를 설명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만큼 선생은 한국 시의 여러 차원들 가령 전통과 현대, 개인과 공동체, 내면과 외계, 삶과 죽음, 침잠과 융기 같은 모든 운동적 대립점들을 자신만의 웅숭깊은 사유와 방법으로 섬세하게 탐구해 온 것이다.

 

▲ 황동규 시인의 시집. 그의 작품을 빼고 1960년대 이후 한국 시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실존적 고독과 거듭남의 세계

황동규의 시는 어떤 것이었을까? 내가 읽은 바로 그의 초기 시는 내면이라는 상상적 공간에서 피어올라 왔다. 독자들에게는 ‘즐거운 편지’라는 작품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만의 서정적 실감을 담은 수많은 명편들이 그를 한국 시단의 전혀 새로운 시인으로 출발하게끔 해 주었다. 선생은 1970년대 즈음에는 현실을 온몸으로 껴안으면서 실존적 고독과 삶의 비극성을 일관되게 들려주었다. ‘태평가’와 ‘열하일기’를 지나 ‘삼남에 내리는 눈’의 세계는 이러한 차원을 명징하게 들려준 성취였다. 낭만적 초월과 내밀한 기억으로의 잠입을 통해 현실에 접근해 간 문학사 초유의 사건일 것이다. “초기에 강렬한 영향을 주었던 미당은 어느새 극복의 대상으로 바뀌었고, 나는 현실의 소리에 정열적으로 귀 기울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선불교를 만나게 됐고 극(劇)서정시를 생각하면서 현실과 내면의 통합을 통한 거듭남의 세계를 설계해 보았지요.”

황동규 선생은 초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극서정시’라는 그만의 기율을 실천해 왔다.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을 넘어 극서정시의 실험과 여행 모티프의 강렬한 방법론적 확장을 꾸준히 실현해 간 것이다. 극서정시는 시 안에서 극적 요소를 구조적으로 제시한 것인데, 일상을 벗어나 삶의 충동을 깨달음의 경지까지 이끌고 가는 세계가 그 안에 충일하게 녹아 있다. “극서정시는 극시와는 달라요. 우리 시의 전통이 처음과 끝의 정황이 같은데 저는 조그만 ‘거듭남’을 통해 시인과 독자가 짊어지고 가는 삶의 짐을 별빛 무게만큼이라도 덜어 주자고 생각한 것이지요.” 서정시에 극성을 결합하고 깨달음의 서사를 장착한 ‘극서정시’는 형식과 내용 모두를 새롭게 개진하려는 재충전 욕구에 바탕을 둔 미학적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 선생은 ‘겨울밤 0시 5분’과 ‘사는 기쁨’에 이르는 제2의 절정을 구가한다. 더욱 심혈을 기울인 서정과 인식의 세계로 진입해 간 것이다. 이때 우리는 선생의 시를 ‘예술가로서의 실존적 고독’과 ‘근원적 통찰을 통한 거듭남’의 세계로 집약하게 된다. 그리고 그 정점에 이번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가 위치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2010년 가을 경기 양평 황순원문학원 소나기마을에서 열린 황순원 선생 10주기 추모식에서 황동규(오른쪽 다섯 번째) 선생이 지인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의자에 앉은 이가 어머니다.

 

●불빛의 온기·조도로, 점점 단순해지는 지혜로

 

작년에 나온 ‘오늘 하루만이라도’는 그의 열일곱 번째 시집이다.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선생의 끊이지 않는 창조적 긴장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시집 처음에 실린 ‘불빛 한 점’에서 선생은 ‘시’가 한때 눈부시게 앞길을 밝혀 준 ‘횃불’이었지만 이제는 안개로 출항 못하는 조그만 배의 ‘불빛’으로 몸을 바꾸었으며, 그러나 여전히 스스로를 밝히고 세상을 비추는 희미한 불빛의 연쇄가 ‘시인 황동규’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고 고백한다. “세월이 흐르듯 삶의 모양새가 변하면 시인도 변해야지요. 다만 주어진 조건 속에서 그저 최선을 다해야지요.” 그러고 보니 선생의 시는 여전히 ‘불빛’이라는 온기와 조도(照度)를 동시에 갖춘 충일한 세계도 다가온다.

 

▲ 황동규 시인

 

그러다가 선생은 자신에게 많은 것이 사라지고 없다고 단호하게 써 간다. “군더더기가 없다.”(‘화양계곡의 아침’), “적막 같은 건 없다.”(‘나의 마지막 가을’), “더 이상 산속이 없다.”(‘홍천 구룡령 길’), “아무리 찾아봐도 그 건물이 없다.”(‘한밤중에 깨어’), “없다. 말끔히 걷힌 늦가을 안개처럼 없다.”(‘날 테면 날아보게’), “이곳엔 외딴집이 없다는 것,/ 홀로 사는 사람도 없다는 것,(‘새로 만난 오솔길’) 등을 곳곳에 적어 놓았다. 이렇게 ‘군더더기·적막·산속·건물·안개·외딴집·사람’의 한결같은 부재는 삶의 소진과 죽음으로의 열림을 예비하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는 삶과 죽음의 역동적 교차가 자신의 인생이었음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이번 시집에서는 더욱 경험적 실감을 견지하면서 “좀 단순해지자.”(‘산 것의 노래’)는 지혜로 수렴되어간 것이 아닐까 한다.

선생은 “과거의 나에게 문학은 험한 산지였고, 지금은 막막한 들판, 미래는 노을 한 자락이 묻은 채 저무는 바다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문학적 예감은 하나하나 현실이 되어갔지만 스스로 베토벤의 음악을 두고 “계속 물리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곡이 있다는 사실”을 기뻐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물리지 않고 읽을 수 있는 그만의 시를 남겨 준 것이다. 평론가 하응백은 이러한 세계를 두고 “한국문학은 황동규의 시가 있어 행복했다. 82세의 나이에 낸 시집으로 이런 수준의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건 전 세계적으로도 황동규 시인이 거의 유일하다.”라고 썼다.

특별히 선생은 여행을 즐겨했는데, 순간순간 마주치는 삶의 사물의 신비를 그때마다 느꼈다고 한다. 2018년 7월 임자도로 갔을 때 경험을 “언젠가 이 세상 두고 나갈 때/ 최근에 불새가 불 속에서 불씨를 쪼듯/ 잊지 못할 민어회 맛 한번 진하게 쪼은 신안군 임자도를/ 모르는 척 놔두고 갈 순 없겠지.”(‘선운사 동백’)라고 새겨 놓기도 했다. “여건이 어려웠지만 최근에 강화도 한번 다녀왔어요. 참 좋더군요. 여행을 속 시원히 못해 많이 아쉽지요.”

 

▲ 3년 전 작품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황동규 시인과 유성호 교수.

 

●노경의 삶, 영원한 예술인으로

이번 시집에는 자연인으로서 육신의 쇠잔을 고백하는 장면이 많아졌다. 그것은 “안과/황반변성/보청기/임플란트/혈압약” 등으로 이어져 간다. 물론 이는 “죽음이 없다면/세상의 모든 꽃들이 가화가 되는”(‘죽음아 너 어딨어?’) 진실을 알게끔 해 준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는 ‘불빛’으로의 이행 과정을 수납하는 순간을 보여 주는 사례일 텐데 이러한 존재론적 고투는 선생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의지로 한없이 이어져 간다.

“노년에 처하고 보니 이길까보다는 어떻게 견딜까를 생각합니다. 지금 순간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 가운데 좋은 일을 할 때 보상을 바라지 말라, 좋은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충분한 보상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깁니다.” 그리고 선생은 자신의 시가 긴장이 떨어지면 그날로 끝내는 것이라고 몇 번을 강조한다. “이번 시집은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썼어요. ‘죽음의 자리와 삶의 자리’에서 “그 어디서고 삶의 감각 일깨워주는 자”라고 썼는데 그게 바로 ‘시인’이라고 생각해요. 그 역할이 끝나면 시인으로서의 생애도 마감하는 거지요.”

나아가 선생은 “이번 시집을 엮으면서 우연을 사랑하게 되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원이 타원의 특수한 형태이듯 필연도 우연의 특수 형태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불교나 스피노자나 니체나 결국 우연을 사랑하자는 화두가 아니겠습니까?”라는 견해를 들려주었다. 파스칼은 명상록에서 영생이 설사 없더라도 영생이 있다고 생각하고 살면 손해 볼 것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선생은 “우연을 사랑하다 보면 영생이 비록 있더라도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 사는 맛을 제대로 보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멋진 의미론적 반전이요, 자유로운 예술인으로서의 자기 발견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번 시집에 실린 ‘오늘은 날이 갰다’라는 작품에서 선생은 “그래 웃자./ 오늘은 날이 갰고 우린 만났다./ 어쩌다 저세상 가서도 서로 연락이 닿으면/ 오늘처럼 비늘구름 환하게 뜬 날 만나자”라고 썼다. 꼭 60년 전 펴낸 첫 시집 ‘어떤 개인 날’(1961)에서 그때 활짝 갰던 어느 날이 다시 “오늘처럼 비늘구름 환하게 뜬 날”이 되어 ‘시인 황동규’의 삶을 이끌어 가고 있다. 그 점에서 그의 대표작은 아직 쓰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두 시간 대화가 짧게 느껴졌다. 일일이 세목을 다 쓰지 못해 아쉽다. 선생이 들려준 것은 시인으로서의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시’에 대한 스스로의 비전을 담은 것이었기 때문에 내게는 여전한 현재형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선생은 자유롭고 지성적인 영원한 예술인이고 한국문학에 찾아온 드문 행복이었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2021-01-25 22면 서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