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가고 싶다

봄날, 처럼 따뜻하게 나를 봄

모든 2 2020. 9. 30. 20:52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17

사진출처=pixabay.com

 


사람이 살 곳을 정한다는 게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닐 성싶다. 이번에 자리를 잡으면 얼마나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잠깐 거쳐 가는 공간이라도 집을 보고 마음으로 화답하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집이 마음에 들면 주변 환경이 영 내키지 않고, 고즈넉한 자리엔 대대적으로 손을 봐야 들어가 살 수 있겠다, 하는 집들뿐이었다. 당장에 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듯 하고, 나중 에 집을 짓더라도 일단 경주에 뿌리내리고 이 땅에 낯을 익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데 생각을 모았다.

생각을 정하고 나자, 경주에 안착하기 위해 가장 안전한 길을 택했다. 아파트 전세를 얻는 것이다. 수리 없이 입주하고 편안하게 지내다 간단없이 짐을 옮길 수 있는 곳이다. 시내에 있는 저층 아파트를 둘러보았지만, 그날로 구두 계약을 맺은 곳은 불국사 앞자락에 있는 저층 아파트 2층 방이었다. 베란다에 나가 보면 바로 코앞에 어린이놀이터가 있고, 아파트 주변은 온통 빈터라서 주민들이 이곳에 돌을 골라내가며 텃밭을 일구어 먹는다고 했다. 잔돌이 많아서 그렇지 우리가 괭이질을 해도 좋을 남은 터도 충분한 것 같았다. 공기도 비교적 맑은 편이고, 가까이 있는 불국사 근처로 약수를 뜨러 가며 산책하고, 토함산에 올라가 석굴암도 자주 찾아가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바다가 보고 싶으면, 이삼십 분 자동차로 달려가 감포 바닷가를 구 경하고, 더불어 문무대왕릉도 찾아볼 수 있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니, 꽤 괜찮은 곳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아파트 생활이란 살아 봐야 알 수 있겠다. 10여 년 전에 인천에서 영구임대아파트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 집은 승강기 옆에 붙어 있어서 밤새 오르락내리락 하는 소리에 잠을 설치곤 했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고, 낮에도 집에 붙어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야채를 팔러 가거나, 부부가 뭐든 해야 먹고 살 수 있었을 테니까.

저녁 무렵 그래도 집이라고 사람들이 들어와 있을 때 주차장을 바라보면 봉고와 화물차가 단연히 승용차보다 많아 보였다. 다양한 내력을 안고 있는 자동차들을 보면서 그네들의 삶이 그렇게 술렁거리고 있음을 보았다. 적어도 그들은 짜인 틀 속에 서 쳇바퀴를 돌듯이 직장에 출퇴근하는 사람들보다 더 다채롭게 살고 있을 것이다. 다만 산동네와는 달리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서로 의사소통하지 않는다. 옆집에 살아도 찾아볼 겨를도 짬도 없다. 막힌 회로와 같은 아파트 공간에서 삶은 더욱 각박해지고, 그들은 거리에서 만나는 손님들과 의사소통하는 데 더 바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 계약한 경주 불국사 초입에 자리한 이 아파트는 생존의 난투극에서 벗어나 난생 처음 산뜻한 기분으로 입주하는 살림 공간이 될 것이다.

앞으로 한 달여 시간이 남았다. 아파트 계약이야 진작 하였지만, 무주에서 맡고 있던 공부방 아이들의 예술심리치료 임상이 남아 있기에,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고서 이사할 예정이다. 김해와 경주 등지를 한참 쏘다닐 때에 그곳엔 한창 벚꽃이 난무하더니, 무주 산골 광대정엔 이제야 봄소식이 무르익었다. 마당에 심어놓은 살구꽃이 화사하게 피어나고, 가끔 바람이 불면 꽃잎을 날린다. 앵두나무도 꽃을 피웠고, 작약이 진보랏빛 줄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광대나물이며 고사리가 올라오고, 노랑 양지꽃이 화관처럼 길가에 돋아나 있다. 그리고 비닐하우스에선 고추 모종이 한 뼘씩 클 만큼 컸고, 사람들은 고추밭을 일구고, 못자리를 만들었다. 이른바 농사철이다. 내가 이 집을 떠난다 해도, 광대정 산골은 여전할 것이고 사람들은 부지런히 농사를 지을 것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앞산 숲 위로 보름달이 떠오르고, 요즘은 소쩍새가 한창 이 산 저 산 옮겨가며 울고 있다. 저승새도 휘익휘익 불어대고, 목탁새 소리도 간간이 들린다. 경주 그 아파트에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이 산에 살던 새 소리가 저 산에서도 들리는가. 이 모든 풍경과 소리를 담아가고 싶은 것은 당연히 사람의 욕심일 것이다. 밭으로 난 산길을 오르니 앞산이 첩첩이 다른 산들을 머리에 이고 앉아 있다. 참 깊은 골이다. 작년 가을에 미처 뽑아내지 못한 고추말목이 그대로 밭이랑에 꽂혀 있다. 올해는 농사가 없기에 막바지에 가서야 그나마 수습을 하겠지,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게으른 농부의 흔적을 남기는가 싶었다.

어제는 우리 광대정에 고사리를 끊으러 왔던 능길 사는 선희 누나, 아랫집 길수네 식구들, 그리고 이른바 일삼이네 식구가 우리집에서 밥을 먹었다. 일삼이는 마을 아랫길 삼거리에서 사는 털보아저씨인데, ‘일’인칭 나, ‘삼’인칭 그, ‘이’인칭 너를 대충 발음하여 조합한 이름이다. 오랜 세월을 지리산에서 산장지기로 일하다가 내려온 사람이라는데, 힘이 장사여서 웬만한 돌덩이들은 계곡에서 끌어내려 직접 지게에 지고 와 집을 꾸몄다. 성격이 괴팍하여 동네에선 별로 왕래가 없는 차에 어찌하다 보니, 우리집 식구들과 연분이 생겨 이렇게 한솥밥을 먹게도 되었다.

우리가 경주로 이사 간다고 하니, 언제 한 번 밥이나 함께 먹자고 먼저 제안한 사람이 그였다. 지난 5년여 세월 동안 그 집 식구들과 밥을 먹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이는 나무에 관해서도 제법 통달한 부분이 있어서 한여름에 산에서 나무를 캐어 마당에 심어도 죽이지 않고 잘 키우는 편이다. 그 집에서 얼마 전에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시는데, 이사할 때 밥데기 나무도 가져가라 하고, 수선화도 캐어 줄 테니 화분에 잘 키워 보라고 한다. 그리고 밥 먹으러 오는 길에 잘 숙성된 포도주 한 병을 들고 왔다. 사람이 아무리 모질고 괴팍해 보여도, 돌아보면 사람이란 다 속이 있는 법인가 보다.

그 사람을 보면서 생각한다. 사람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정(情)이고, 솔직하고 담백한 마음이 결국 두 사람을 이어 주는 끈이 된다고 믿게 된다. 떠나는 뒤끝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은 누구나 품을 만한 생각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뒤끝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앞으로 남아 있는 한 달 동안 많은 것들을 수습해야 할 것이다. 이삿짐에 묶어 가기 힘든 물건은 적당한 임자에게 넘겨주어야 하고, 갚지 못한 빚이 있다면 말끔하게 청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남는 것은 그동안 정분을 나누었던 사람들과 미련 없이, 그러나 따뜻하게 악수하는 일일 것이다.

최근에 내 별칭을 내 맘대로 바꾸었다. 그동안 ‘봄돌’이라 입에 붙였는데, ‘봄똘’이라는 뒷발음이 세서 듣기에 거북하고, 달리 봄돌이라 불러 주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하여 바꾸었는데, 새기는 뜻이야 고만고만 하지만 ‘봄날’이라 지었다. 부르기에 부드럽고, 부드러운 만큼 발음이 주는 느낌이 따뜻해서였다.

기운이 바뀌면 사람들은 가구 위치를 이리저리 옮겨 보거나, 머리모양을 바꾼다고 들었다. 경주로 이사를 하면 어차피 집도 바뀌고 아예 주변 환경이 달라지겠지만, 이참에 별칭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으면 새 이름이 하나 더 생기고, 수도자들이 서원을 할 적에 새로 제 이름을 짓기도 한다. 그처럼 이번에 경주로 떠나는 것은 새로운 흐름 위에 나 자신을 얹어 놓는 행위이기에, 별칭이라도 바꿔 보는 것이다.

‘봄날’은 그야말로 연둣빛 고운 숲속으로 들어 가고 싶은 마음이고, 새로운 창조의 기운에 몸을 맡기자는 것이다. 그리고 봄날을 거꾸로 쓰면 ‘날봄’이 된다. ‘나(self)’를 보자는 것이다. 예 술심리치료사가 스스로 자기를 보지 못하고서야 어찌 다른 이들의 흩어진 자아를 모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