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가고 싶다

까맣게 쓰러지고 싶다

모든 2 2020. 8. 4. 17:52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11

 

 

광대정이란 무주 산골에 들어와 앉은 지 벌써 꽤 세월이 흘렀다. 처음에 경북 상주 모동공소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두고 꼭 백날을 살고, 그 해 추석을 지나고 난 뒤에 이곳에 농가주택과 논을 사서 산골살림을 시작하였다. 도시생활 삽십칠 년 만에 서울을 탈출한 뒤끝이다. 그때만 해도 쉽게 자리를 옮길 수 있었던 것은 결혼 생활이 아홉 해가 되었지만 아직 아이가 없어 몸이 가벼웠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주변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개 아이 교육 문제 때문에 귀농을 주저하거나, 농촌살림에 지레 겁을 먹은 아낙 때문에 발목이 잡힌 가장을 많이 보았다.

처음 광대정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감잎이 붉게 물들고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지금 광대정에도 감이 붉게 익었다. 찬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감잎이 바닥에 떨어진다. 올해는 봄가뭄, 가을가뭄 때문에 밭 작물이 신통치 않았다. 그나마 벼농사라도 엔간히 지었기에 탈곡을 앞두고 있다. 논에 가면 베어놓은 벼이삭 사이에서 새들이 날아오른다. 수렁을 따라 멧돼지 발자국이 낭자하고, 이 근처에 심어놓은 벼는 진창에 처박혀 있다. 여기 와서 살다보니 아이도 생기고, 두 달 뒤면 벌써 첫돌을 맞는다. 산골 와서 자식농사도 겸해서 지으라 는 하느님의 명령 같다. 주시면 고맙게 받고 주지 않으시면 원망 없이 기다리며 마음밭을 극진하게 갈라는 천명으로 알아듣는다.

이번 추석엔 올 초에 구입한 중고 화물차로 인천 어머니댁엘 다녀 왔다. 덜컹거리는 화물차가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어린 아기 데리고 먼 길 가려면 이마저 감지덕지 아닌가. 길이 막힐까 염려하여 새벽 다섯 시에 일찍 산에서 내려왔다. 어느 집은 벌써 불이 켜져 있었고, 아직 창이 컴컴한 집도 여럿 보였다. 불 꺼진 집을 보며, 아내는 “저렇게 불이 꺼져 있는 창을 보면, 거기서 잠들어 있을 사람들을 미워할 수가 없어진다”고 했다. 그만큼 객지 생활은 사람들 때문에 마음을 상하기 쉬웠다.

몇 가구 되지 않는 이웃이기에 숨길 바 없이 생활이 드러나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십상이다. 그야말로 가깝고도 먼 당신이 산골의 이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사람관계에 대한 기대를 접고, 아예 농사짓는 일에 열중하거나 산속에서 채취하면서 자연과 교감하는 데 더 마음을 기울인다. 자연이 인간에게 항상 다정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보다는 덜 변덕스럽고 단순하기 때문이다. 비비꼬인 미로를 찾아 헤매는 것 같은 날카로운 신경줄을 당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연은 인간에게 은총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서글픈 아름다움

초보 운전자인 나는 시내 운전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비교적 한산하다는 명절인데도 인천 시내는 차선마다 자동차들이 바싹 꽁무니를 따라 달리고 있었고, 회전할 때마다 차선을 미리 알아서 바꾸어야 하는 게 힘들었다. 그렇게 집에 와서는 명절이라고 내내 방에서 뒹굴 거리다가 제사를 지내고 처갓집으로 갔다. 예전엔 몰랐지만, 이박삼일을 방에서 뒹굴거리기란 여간 따분한 게 아니었다. 텔레비전만이 진가를 발휘하는 게 도시의 명절인 셈이다. 산책을 하고 싶으나, 밖에 나가 봤자 눈만 피곤하다.

만석동 판자촌 한가운데 있는 처갓집 주변은 휴일에도 쉬지 않고 뿜어 올리는 공장 굴뚝의 연기 탓인지 공기가 탁했다. 아이들은 너나없이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난한 주민들은 집 앞 인도에 텃밭을 일구었다. 화분을 여러 개 갖다 놓고 배추를 심고 고추를 키웠다. 함지박 안에 퍼 담은 흙에서 부추가 자라고 알타리 무가 크고 있었다. 온통 칙칙한 얼룩이 장악한 집과 대조적으로 길가에 꽃과 작물이 어우러져 제 생명을 힘껏 드러내고 있었다. 문득 미국에서 ‘가톨릭일꾼(Catholic Worker)’ 운동을 전개했던 도로시 데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도로시는 고등학교 졸업반 때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이란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아 도서관과 공원의 음악당에서 도시의 가난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틈나는 대로 호수 주변이나 공원의 잔디밭을 걷는 대신에 시카고의 빈민 지역을 동생의 유모차를 끌고 한없이 걷곤 하였다. 끝없는 회색빛 거리, 너무나도 똑같아 보이는 술집이 즐비한 거리를 걸으며 그 궁핍한 곳에서 도로시는 일종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였다.

“손바닥만 한 꽃밭과 채소밭이 있었다. 왜소한 옥수수가 줄지어 달려 있기도 하고 토마토 나무도 있었는데, 채소밭 주변은 온통 가지 각색의 향기를 뿜어내는 전륜화로 둘러져 있었다. 제라늄 잎, 토마토 나무, 전륜화 냄새, 재목과 타르와 커피콩 볶는 냄새, 작은 독일빵집에 서 흘러나오는 빵과 케이크 냄새, 그 아름다움만으로도 나는 만족할 수 있었다.”

도로시는 칙칙한 거리가 그런 냄새로 구원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만석동의 배추밭이나 시카고의 전륜화는 고단한 삶의 질식할 것 같은 순간을 살아내려는 목숨 가진 것들의 안간힘이기에 서글픈 아름다움이다.

도로시는 더 이상 빈민 지역 사람들의 가난이 게으르기 때문이라거나, 가난은 오직 그 사람들 탓이라고만 여기지 않았다. 열다섯 살 때 그 사람들의 거리를 걸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때부터 나의 생활은 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 사람들의 이익이 나의 이익이 되었다. 나는 내 일생의 방향과 일을 얻게 된 것이다.”라고 썼다. 그리고 도로시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교회는 부자에게 친절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가끔 눈물을 흘리지만 가난한 사람을 딛고 서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부자들에게는 웃음을 흘리고 아부를 했다. 누구도 겉옷을 벗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 누구도 잔치를 열어 절름발이와 장님을 초대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잣대는 사랑』, 짐 포리스트, 분도출판사)

도로시 데이에게 가톨릭일꾼 운동에 대한 영감을 주었던 피터 모린의 글을 보면 “부자들이 교회를 저당 잡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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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하나의 우주가 흔들린다

복잡한 교통망, 쿰쿰하고 역한 공기 냄새, 그리고 고층 빌딩 사이로 다투듯이 비죽이 올라간 교회당의 첨탑을 뒤로하고 전북 무주로 되돌아가는 길은 착잡하면서도 나름대로 상쾌하였다. 금산 근처에 도착하니, 이제부터는 고층 빌딩을 볼 수 없었다. 차량도 별로 없고 교회당 첨탑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온통 산뿐이다. 산에, 산에, 산에 간간이 분지처럼 평야가 생기면 황금빛 벼가 출렁거린다. 시골집에선 평상에 나와 앉은 노인네들이 망연한 눈빛을 던지고 있다. 그 비슷하고 단조로운 풍경을 여러 겹 스치고 나면 해발 오백 고지 광대정 우리집이 나온다. 그리고 슬쩍 나만의 도시 탈출이 미안해진다.

환경이 바뀐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우리는 삶이 권태로울 때 방안에 있는 가구의 위치를 뒤바꿔 놓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을 한다. 뭔가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게 느껴질 때 우린 여행을 하거나 주변 환경을 바꾸어 보려고 한다. 마찬 가지로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고대하는 것도 환경 변화를 통하여 좀 더 사람답게 살아 보자는 열망에 다름 아니다.

피터 모린은 하느님 나라란 ‘사람이 착해지기 쉬운 세상’이라고 말했다. 요즘 세상이 ‘사람이 악해지기 쉬운 세상’이라는 말일 것이다. 생태계 위기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아예 사람 살기 어려운 땅으로 망가졌다고 말한다. 사람뿐 아니라 온갖 동식물이 오염된 공기와 물과 흙 때문에 죽어가고 있으며, 그 파국의 속도가 점점 빨라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른바 생태학적 종말론이 이야기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게 ‘환경운동’이다. 오염된 환경을 정화시키고 더 이상 오염되지 않도록 애쓰자는 것이다.

이것은 옛날처럼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 보자는 것이기도 하고, 후손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물려주자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사람을 중심에 놓고 그 주변 환경을 사람이 건강을 유지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단속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학기술에 의지해서 환경 정화에 나섰다. 삼림과 동식물을 보호하고 수질 개선에 정부 예산을 투입한다. 농약과 비료, 제초제 사용을 줄이고 환경 농업을 하자고 권장한다.

그러나 과학기술적 해결책은 양약(洋藥)이 그러하듯이, 한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다른 부위에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그런 사업이 대부분 막대한 자본을 들여야 하는 만큼, 그런 자본을 댈 만한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이뤄지기 때문에 사실상 믿을 수 없다. 모두들 유기농(또는 자연농)을 하자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이해타산이 맞지 않으면 유기농으로 돌아갈 농부가 별로 없다. 실상 환경농업을 주장하는 정부 시책도 국가경쟁력의 차원에서 나온 이야기일 뿐, 생태계의 보존 문제랑 크게 상관없다고 보는 게 정직할 것이다.

그나마 시민운동 차원에서 환경 감시 활동이나, 도농 직거래, 합성세제 안 쓰기 등의 친환경적 생활운동이 이뤄지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이 자연과의 유기적인 삶에 대한 근원적 성찰과 자기반성 없이는 공염불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세상은 어차피 권력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의 논리대로 움직이고, 다양하고 섬세한 방법으로 세뇌당하는 시민들은 일부의 노력과 상관없이 환경 파괴적 삶을 지속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환경 파괴가 인간 중심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자본중심주의라고 말해야 옳다.

거대한 자본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조장하는 소비사회의 관행을 뿌리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환경운동이란 새로운 환경상품에 대한 아이템을 늘리는 것 이상, 결국 무슨 의미가 있는가. 좀 과격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물질적 소비주의 세상, 물과 공기와 흙과 나무와 새들을 상품화시키는 세상에 대적하는 방법은 일차적으로 영적 혁명밖에 없다. 모두가 고르게 가난하게 살면서도 기쁨을 만끽하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나눌 수 있는 영적 인간으로 거듭나는 수밖에 없다.

소박하고 단순한 삶에 대한 영적 의미를 되새기고 현양(顯揚)시킬 수 있는 영성으로 무장하는 수밖에 없다. 이 길은 새로운 길이 아니다. 이미 부처와 예수가 갈파했던 길이며, 간디와 소로, 유영모가 걸었던 길이다. 숱한 은수자들과 아씨시의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모범을 우리는 역사의 갈피에서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환경 문제를 대할 때, 단순히 대기오염도 등 통계수치에 기초 해서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먼저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다시 발견하도록 돕는 게 더 근원적이다. 아스팔트 문화를 어려서부터 경험하고 컴퓨터 등 가상공간에서 활용되는 기계언어에 익숙한 세대가 몸으로 전해오는 자연의 파동을 접할 수 있는 말 그대로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 환경은 물질적 환경 이전에 정서적 환경을 말하는 것이며, 일종의 분위기라 말할 수 있겠다. 그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다면, 가난의 영성이나 질박한 삶이 주는 단순한 기쁨을 체득할 기회도 없어진다.

이를 두고 <녹색평론> 발행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종철 선생은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하려면 먼저 ‘시의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환경 위기가 문제지만, 우리가 인간이 되어야 환경도 지킬 수 있 어요. 나는 꽤 오래 전부터 환경 문제를 생각해 오고 있지만, 환경 문제를 풀기 위해 기술적으로 접근하는 일도 필요하고, 법적 장치나 정책 차원에 서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그러나 나는 이런 외면적인 방법만으로는 결코 환경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내면적 에콜로지예요. 즉 우리가 환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주어진 틀 속에서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우리 각자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환경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거든요. 사람 마음이 만드는 것이죠. 그러니 그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고 이 세상이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 이 마음의 변화에 대하여 가장 민감한 사람이 누구냐, 이게 시인입니다. 시인은 인간의 마음을 창조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나는 인간의 미래가 어두워질수록 시의 장래는 더 밝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김종철, 삼인)

여기서 내면적 에콜로지란 결국 사람의 마음이 우주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풀잎이 바람에 살강거릴 때 우리 마음도 따라서 살강거리며 신산스러워지는가, 아니면 단지 어이 춥다, 라는 단세포적인 진단에 머물고 마는가, 하는 것이다. 이어령 교수가 어느 시에서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하나의 우주가 흔들린다”고 노래할 때 사실상 흔들리는 것은 소우주인 자신이었을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교감이 두터워질 때, 환경문제는 단지 인간을 둘러싼 환경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저들의 환경이기도 한, 저들의 또 다른 분신이기도 한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된다. 이러한 자연과 소통하는 공감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 안에서 생겨나야 사실상 환경운동은 사심 없이 제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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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먼저 시의 마음을 회복해야

환경운동이 권력이나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대중에게 항구한 믿음을 주려면, 그야말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집착하지 않고 투신하려는 근본적 회심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투신은 대의명분이나 현실에 대한 분석적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라기보다, 가슴을 치는 영적 각성에서 나온다. 이런 점에서 이용악 시인의 「두메산골 2」라는 시는 김종철 선생의 맥락에 닿아 있다.

"아히도 어른도
버슷을 만지며 히히 웃는다
돌아 돌아 물곬 따라가면 강에 이른대 영 넘어 여러 영 넘어가면 읍이 보인대
맷돌방아 그늘도 토담 그늘도 희부옇게 엷어지는데
어디서 꽃가루 날러오는 듯 눈 부시는 산머리
온 길 갈 길 죄다 잊어바리고
까맣게 쓰러지고 싶다"

예전에 <녹색평론> 편집장을 하던 장길섭이 “땅에 엎드려 죄짓지 않고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표현한 것을 읽고 마음이 저릿했던 적이 있었다. 실상 ‘사는 게 죄’인 경우가 허다한 것이 사람의 생애다. 이용악 시인처럼 그동안 살아왔던 길, 가야 할 길 모두 털어버리고 눈부신 산머리 바라보며 “까맣게 쓰러지고 싶다”고 진언(眞言)을 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모두가 세상이 강요한 원죄(原罪)라 생각하고, 기존의 자연 착취적 삶을 버리고 흙담 그늘에 앉아 눈물 철철 흘리며 세례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회가 아직도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 시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세상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일 것이다. 세상으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인간이 인간을 넘어 하느님의 피조물 전체를 그분께 온전히 봉헌할 수 있는 자기초월 능력이 있음을 고백하는 것은 교회의 천명이다. 이 말은 곧 교회가 먼저 스스로 시의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교회의 사목 관행이 권력과 자본에 저당 잡힌 것처럼 고압적이고 가난한 이들에게 불친절하지 않은가, 되짚어 보아야 한다. 또한 교회 자체가 가난의 영성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사제들이 강론대나 신학논문 속에서 가난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만, 가난을 글자 그대로 기쁘게 사는 것은 그리 쉬운 노릇이 아니다. 사제들의 경우에도 사목활동과 독신생활을 담보로 누리는 온갖 혜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용기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이는 대의명분이 아니라, 깊으면서 발랄한 영성의 차원에서 수고롭고 불편한 생활양식을 감당할 뜻이 있는지 스스로 묻는 것이다. 세상이 주는 물질적 풍요 앞에서 까맣게 쓰러지고, 갈릴래아의 모래바람을 예수처럼 맨발로 걸어갈 의향이 있는지 되묻는 것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교회가 위기에 처한 환경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대답은 ‘모든 것’이다. 사목자들은 교구별 본당별 지역 차원에서 환경 감시 활동을 조직하거나 동참할 수 있겠고,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신자 대중에게 알리고 친환경적으로 살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다. 유기농산물을 신자들에게 적절히 공급할 수 있는 매장을 설치할 수 있겠고, 교회 자원과 시설을 통하여 귀농운동을 지원할 수도 있겠다. 개별적으로 환경단체를 후원하거나 알뜰매장을 통해 자원 재활용 운동을 벌일 수도 있겠다. 우리밀, 우리콩 살리기 운동을 활성화시킬 수도 있겠다. 시기적절하게 환경문제에 관한 사목서한이나 메시지를 발표하고, 교회 방송이나 신문 잡지를 통하여 환경문제에 대한 홍보활동을 전개할 수도 있겠다. 아예 교회 안에서 환경 전문잡지를 발간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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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삼라만상에 대한 사랑

그러나 한편으로 복음의 전갈을 기억해야 한다. 제 아무리 뜻있는 활동을 많이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말씀이다. 아무리 위대한 공덕도 연민 어린 눈물 한 방울에 비교되지 못함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스스로 학대받는 자연 앞에 연민과 참회, 안타까움으로 발 동동거리며 가슴 치지 않는 환경운동은 끝내 하느님 앞에 수납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변하면 우주가 변한다는 말이 있다. 내 한 몸 어느 날 문득 하느님 대전에 바쳐지면, 이미 나는 없고 우주만 있는 법이다. 그래서 사심 없는 투신이 생기고, 실질적인 결과와 상관없이 인간과 우주는 구원될 것이다. 과학기술이 궁극적으로 환경문제를 해결 할 수 없듯이, 인간 노력만으로 생태계는 구원되지 않는다. 사실상 생태계의 구원과 해방 역시 하느님의 무상적 사랑 안에서 은총처럼 주어질 것을 믿는 게 신앙이다. 다만 우리가 그 은총을 거저 받을 자격이 있는지 물을 수 있을 뿐이다.

그분은 이렇게 우리에게 묻고 계신지 모른다. 부러진 나무를 끌어 안고 언제 한 번 흐느낀 적이 있는지, 한밤중 별을 바라보며 나를 생각해 본 게 언제쯤인지, 공단에서 노동자들이 매연에 콜록거리며 노동할 때 사제관에서 돌리던 공기청정기 소리가 요란하지는 않았는지, 어린 여학생이 차가운 손을 호호 불며 길거리 지나갈 때 나는 승용차에 앉아 한껏 히터 틀어놓고 클래식 음악에 취하지는 않았는지, 골프장에도 꽃이 피고 물고기가 사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환경문제가 결국 하느님의 피조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꼬집는 것이라면, 결국 신학의 문제이고 신앙의 문제로 귀착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문제에 대한 사목적 대안을 마련하기보다 먼저 자신이 하느님이 창조하신 우주 삼라만상을 사랑하는지 점검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성찰이 성심(誠心)으로 이뤄진다면, 그 후론 만사가 환경운동이 될 것이다. 우리가 말하고 걷고 일하는 모든 것이 자연세계로 향한 인간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아울러 자연 또한 여기에 조응해서 생기를 되찾을 것이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