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1
서울이란 도시에 안녕(安寧)을 고하고, 전라도 땅 무주 산골에 자리 잡은 지 1년하고도 몇 달이 더 지나갔다. 그 사이 겨울을 두 번 넘겼는데, 내내 농사짓느라 바쁘고, 겨울엔 땔감 장만에 마음을 쓰며 살았다. 이곳에 자리 잡은 뒤 선배, 후배, 지인들이 한사코 묻는 것은, 살만하냐는 것이다. 대답은 물론 살만하다는 것. 그들이 나의 안위(安危)를 걱정하는 것은 따숩고 정다운 일이겠거니와, 나처럼 시골살림을 잘 모르는 처지에 막연히 불편하고 힘들게 살지 않겠는가, 하는 추측에서 안부를 묻는 것이다.
사람 사는 곳엔 늘 따라다니는 것이 있다. 일과 사람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사람은 어디에 살든지 무엇인가를 생산해야 하고, 많든 적든 사람관계에서 떠나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도시에선 책을 만들고 글을 쓰면서 일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 왔다. 필요한 사람은 만나고, 번거로운 사람은 피하면서 말이다. 문을 닫아걸면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되는 집을 근거지로 삼아 필요한 곳에 나들이하며 추상적 사랑에 몰두해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일은 항상 많았지만, 그 일들은 언제나 내가 해야 할 일들이었고, 누가 대신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래서 공과를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만의 자랑이나 나만의 패배감을 안고 살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일과 사람은 넘쳐나지만 좀 외로운 고투(苦鬪)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안녕한 것 같은데, 나만이 그다지 안녕하지 못했다고 생각되던 시간들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곳 무주 산골짜기에 와서 살면서 가장 마음 놓이는 것은 신문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정기구독을 한다 해도 집까지 배달되지 않고, 산 아래 마을 입구에 가서야 받아 볼 수 있다는 번거로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서울을 떠나면서 줄곧 습관적으로 보던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끄달리지 않아도 좋을 복을 누렸다. 가끔 면에 나가는 길에 접하는 뉴스들은 그다지 새로운 소식이 아니었다. 내가 제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듯 이 세상 역시 여전히 제멋대로 굴러가고 있었다.
안 보고 몰라서 세상 일에 마음이 휘둘리지 않는 편안함이란 온전한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이런 식의 안녕이 생애의 어느 한 고비에선 필요하기도 하다는 생각을 지긋이 다지고 있다. 내 마음이 부대끼지 않으려는 안간힘이다. 또 다른 시간이 오면 또 다른 흐름 위에 내 영혼을 얹고 더 기운차게 세상을 향해 전진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 날을 위해 크게 물러나 앉는 것도 필요하다. 그동안 제 영혼을 충분히 정화시키고, 제 몸을 넘치게 보살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시골 생활이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반드시 그럴 필요도 없다. 어쩌면 시골이란 더 밀도 높은 인간관계를 요청하는 공간인지 모른다. 시골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무척 관심이 많다. 그래서 누군가 한 마디 입에서 토설하고 나면 곧 그 근방에선 다 알고 있는 이야기로 여기면 맞다. 그만큼 소문이 빨리 퍼지고, 사람들의 절대 숫자는 적지만 보는 시선은 집요해서, 밭에서 일하느라 안 보는 것 같아도 눈길이 닿는 곳은 어디든 주목의 대상이 된다.
예전에는 이곳에 귀농한 사람들 몇몇이 산에서 우연히 도라지밭을 발견하여 임자 없는 밭인 줄 알고 도라지, 도라지 노래까지 부르며 장단 맞추어 도라지를 캤는데, 누가 이 광경을 보았는지, 도라지밭 주인이 호통을 쳐서 다들 몰려가 무릎 끓고 사과하고 돈으로 변상까지 했다고 한다. 외지에서 굴러온 이들에 대한 마을의 야박한 인심을 탓하기 앞서, 이곳에선 비밀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오히려 이런 곳에서 몇 년 살다가 서울살이를 한다면, 오히려 그 익명성을 즐거워해야 할 지경인지도 모른다. 아니, 이런 곳에서 제대로 인간관계 훈련을 해놓는다면, 다른 어디에 간들 사람들 속에 섞여 사는 데 제법 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산골 생활은 언뜻 안녕한 것 같지만, 그렇게 마음 편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남 이야기 하지 않고 자기 나름 대로 열심히 살면서 힘 닿을 때 남 도와줄 수 있으면 족하다. 좀 소극적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나서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필요에 기꺼이 응해 주는 것이 미덕인 사회다. 그래야 나도 남도 안심한다. 그래야 서로가 마음에 날이 서지 않고 느긋해진다. 그 느긋함에서 참 평화가 온다. 그렇게 복된 일상이 성취된다.
사진출처=Naver 블로그 [안개속의 풍경] 중에서
얼마 전 임길택 시인의 마지막 시집이라는 <똥 누고 가는 새>를 읽다가 앞부분 간지에 본인 글씨로 씌어진 ‘바람 하나’라는 글을 발견 했다. 안에 실린 시편이야 예전에 읽었지만 간지를 뒤적인 것은 그만큼 할일 없는 겨울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단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고, 나는 몇 번을 거듭 읽으며 무릎을 쳤다.
"내 잣대로 이제는 그 무엇이라도 재지 않을 수 있기를. 사람뿐 아니라 조그만 벌레 하나까지도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자의 눈금이 얼마나 불확실한가를 이제야 알 수 있겠다.
햇살은 곧게 나아가다가 막히면 그림자를 만들어 놓는다. 물은 흘러 가다 웅덩이를 만나면 그걸 다 채운 뒤에야 반드시 다음으로 흘러간다. 빛과 물이 가졌던 이 잣대는 세상이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 또 내일 그 어느 날까지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지금 이루고 있는 모습은 바로 내일의 모습일 테니까.
그러나 나는 똑같은 사람을 앞에 두고서도, 서로 다른 잣대를 수도 없이 갖다 대곤 했다. 필요 없는 사람이라 했다가 나에게 조금 이익이 있다 싶으면 난 다른 자로 ‘필요 있다’ 하고. 이제 이런 잣대만 치워진다면 내일이나 아니 바로 오늘 죽는다 해도 기쁘게 그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다. 나는 내가 이제껏 가지고 있던 잣대를 부수는 일을 해나가겠다. 그래서 내 잣대를 결코 갖질 않겠다."
그게 가능할까.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겠다는 것이기도 하고, 제 변화무쌍한 심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확인이기도 하고, 제 필요에 따라서 사람을 판단해 버리는 나쁜 습성을 버리겠다는 다짐이기도 하고, 결국 빛처럼 물처럼 성정(性情)에 따라서 만사를 제 꼴대로 담백하게 봐 줄 수 있는 눈을 얻자는 것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누군들 안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이들에겐 넉넉한 그늘이 있어 깃드는 자가 마음 놓고 쉴 수 있다. 누군가에게 판단 받지 않는다는 안도감은 우리로 하여금 눈치 보지 않고 살게 한다. 좀 실수를 하면 어떤가. 아직 생애가 마감하지 않은 터에, 개선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 개선이 좀 안 되면 어떤가. 이승에서 안 되면 저승에서 하지.
세상에서 가장 질 나쁜 사람은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드는 사람’이다. 이 말 역시 판단이라 말하면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권력이든 돈이든 학력이든 미모든 간에 주변 사람을 공연히 주눅 들게 만드는 사람은 세상을 망가뜨리는 장본인들이다.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을 가릴 것 없이 어떤 이유로든 살아 있는 목숨에게서 생기를 빼앗고 주눅 들게 만드는 사람은 늘 있어 왔고, 지금도 있고, 나 역시 어떤 의미에선 의도와 상관없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임길택의 「꽃나무」라는 시를 보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튼튼하게 제 몫을 살아내는 생명이 있다.
"밟혀 꺾이면
그만이려니 했는데
가지가 꺾이자
얼른 새 가지 내놓고
다른 꽃들 필 무렵에 맞춰
저도 얼른 꽃을 피워댔어요.
꽃나무는
제 이름처럼 살고 있었어요."
잣대를 갖지 않겠다는 것이 타인을 향한 것이라면, 나 자신을 향해서는 뭐라 말해야 옳을까. 제 살림을 제대로 돌보고 선포하고 싶은 빛을 제 몸으로 사는 것이겠지. 어쩔 수 없는 힘에 주눅들지 않을 만큼 자생력을 기르고, 제철따라 꽃 피우는 나무처럼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것이겠지. 눈치 보지 않고 내친 걸음 제가 원하는 자유를 살아내는 것이겠지.
사진출처=pixabay.com
산골에 살기 시작하면서,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만사에 초보인 신세였다. 지금도 경운기를 몰고 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는 후배들이 있는데, 그만큼 이전의 나는 약골이고 책상물림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젠 오토바이로 비포장 산길을 비교적 자유롭게 오르내리고, 화물차도 운전한다. 모든 게 처음 하는 짓인데, 막무가내로 하다 보니 몸에 이력이 붙는다. 인생이란 이렇게 다소 모험적인 구석이 있어야 재미도 있고 지루하지 않은 법인 모양이다.
당연히 농사도 초보다. 어디선가 입농(入農)이란 표현을 썼지만, 작년엔 남의 밭 너머로 훔쳐보며 첫 농사를 지었다. 논에는 멥쌀도 내고 찹쌀도 내고 흑미도 내었다. 밭에는 감자도 심고 고구마도 심고, 콩이며 옥수수, 고추를 키웠다. 그중에 감자와 고추는 제법 수확이 있었고, 벼농사는 흉내만 낸 꼴이 내고 말았다. 논에 찬물이 스며들어 이삭이 크지 못하고 거름도 부족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농사를 지으며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은 내가 남에게 뭔가 줄 것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야 누군가에게 뭔가를 선사하려고 해도 중간에 항상 돈이 끼어들게 마련이다. 현금으로 주거나, 돈으로 값을 지불해야 남에게 줄 선물이 생긴다. 이젠 내가 생산한 것을 돈이 개입할 여지없이 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노릇이고 기쁜 일인지.
요즘은 집 고치는 일에도 재미를 붙이고 있다. 흙집은 농한기를 틈 타 항상 손을 봐야 건사되는 법이고, 먼저 살던 사람이 지어놓은 집이 꼭 제 입맛에 맞는다는 법이 없으므로 이리저리 보완하고 새로 세우는 벽체도 생기게 된다. 처음 이사 와서는 집 뒤편 처마에 잇대어 고방(庫房)을 지었고, 지난 가을에는 마루 앞 토방을 넓히고 기둥과 벽체를 세워 월동 채비를 하였다. 조만간 원두막식 뒷간도 좀 쾌적하게 손을 볼 생각이다. 그리고 텃밭도 가지런히 넓히고, 지난 가을에 국도 변에서 추슬러 두었던 부용화 꽃씨를 봄엔 뜰과 길목 여기저기에 심을 생각이다. 나무를 깎고 파고 잘라서 세우고 끼고 하는 목수일도 서툴지만 하면 못할 게 없는 것 같다. 워낙 초보라서 어지간해선 부끄러 울 게 없다.
겨울엔 땔감 구하는 게 고역인데, 임도(林道) 변에서 지난해 수해로 쓰러진 나무를 베어올 때는 경운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골짜기에서 나무를 할 때는 대개 지게를 써야 한다. 작년엔 지게질이 몹시 서툴러 언덕바지를 내려오다 지게다리에 내가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올해는 두 번째 겨울이라 그런지 지게질도 조금은 이력이 붙는 것 같다. 지게질도 그렇거니와 아궁이에 불 지피는 일도 요령이 필요하고,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면서 두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이 산골에 들어와서, 아이도 얻었다. 딸아이인데, 시골에 와서 자식 농사까지 초보로 짓게 되었으니 지난 1년은 자못 ‘초보대행진’이라 하겠다. 삶이란 연습이 없다. 다만 시행착오가 있을 수는 있겠다. 그러나 시행착오 안에도 은총이 있고, 은총 안에도 함정이 있음을 안다. 그래서 미지수인 미래를 앞에 두고 스스로 말한다. 내키는 대로 그냥 하라, 다만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기만 한다면. 또한 그렇듯이 남이 무엇을 어찌 하든지 그냥 두어라, 그가 그 일로 마음을 놓는다면, 안심한다면.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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