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하게 죽고 싶지 않다”는 외침은 불복종의 정신…스스로 최적의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는 게 참 인간
미국 조각가 윌리엄 헨리 라인하트 (1825~1874)의 1870년작
‘폴리네이케스의 시체에 헌주하는 안티고네’(대리석, 178.4×61×100.3㎝).
미국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미술관 소장.
개인의 숙고를 통해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표현할 수 없을 때, 그 개인들은 자신의 불안감을 ‘대중(大衆)’이라는 거대한 가면에 씌워 힘을 규합하고 팽창한다. 깊은 생각을 연습하지 않고 육신의 편안함과 자극에 탐닉하는 대중의 힘을 정확하게 파악한 독재자는 미디어를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며 개인의 소수 의견을 다수결 원칙에 따라 무시하거나 묵살한다. 정보기술(IT) 세계에선 그런 조작이 더욱 용이하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행위는 거룩하다. 그 의견은 국가권력과 미디어가 원하는, 양 떼와 같이 순응하는 대중을 일깨우는 총성이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위한 최적의 해결책을 찾으려 고군분투할 때 비로소 인간이다.
대중(大衆)
역사는 명료한 정신과 그 정신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의지를 실현하려는 용감한 개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전진한다. 자주적이며 독립적이고 특정 이념에 편향되지 않은 공평한 인간이 선진적인 문명과 문화의 기둥이다. 만일 한 사회가 그런 개인들을 찾을 수 없다면 그 사회는 머지않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력을 잃고 소멸할 것이다.
한 사회의 의미심장한 변화는 항상 개인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의 청원이나 다수결을 통한 결정이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그 결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편견이나 욕심에 근거해 서로 용납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로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대중으로부터 혹은 대중의 힘을 얻은 권력에 의존하는 행위는 개인이 지닌 고유한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는 직무유기다. 한 국가의 수준은 개인의 수준이다. 국가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다. 한 개인의 사사로운 태도가 국가의 좌표를 제시하고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 등장하는 두 자매 중 이스메네는 대중에 대한 은유이고, 안티고네는 개인에 대한 은유다.
“나는 오빠를 매장할 거야.”
동생 이스메네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오빠 폴리네케스의 매장을 반대한다. 하지만 언니 안티고네는 이스메네의 말을 듣고 더 이상 설득하지 않는다. 아무리 설득한다고 해도 이스메네의 마음과 세계관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티고네는 퉁명스럽게 말한다. “너는 너 좋을 대로 생각해. 나는 그분(폴리네이케스)을 매장할 거야.” 안티고네는 자신의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실천한다.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그것은 탁상공론이자 거짓이다. 생각이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면, 그것은 역사가 되고 진실이 된다. 안티고네는 테베에서 그런 자신의 행위를 이해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유일하게 남은 핏줄인 이스메네조차 자신의 제안을 두려워하며 거절했기 때문이다.
안티고네의 말은 종말론적이다. 그녀의 말은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진다. 그런 말과 행동은 죽음조차 초월한다. 안티고네는 말한다. “그렇게 한 후, 내가 죽는다면 얼마나 훌륭하냐?” 여기서 ‘훌륭하다’는 ‘칼론(kalon)’이란 그리스어의 번역이다. 칼론은 좁은 의미로는 ‘숭고한’ ‘훌륭한’이란 뜻이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탁월한 인간을 표현하기 위해 자주 등장하는 문구가 ‘칼로스 카아가쏘스(kalos k’agathos)’다. 카아가쏘스는 ‘카이 아가쏘스’의 축약으로 ‘그리고’를 의미하는 접속사 ‘카이’와 모음으로 시작하는 형용사 ‘아가쏘스’가 합쳐진 단어다. ‘칼로스 카아가쏘스’의 의미는 ‘탁월하며 정직한’이란 의미다.
칼론은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명사로도 사용되지만 윤리적으로 또는 미적으로 섬세하고 탁월한 상태를 표현하는 형용사로도 쓰인다. 멋진 의상과 현악사중주도 칼론이며, 그 옷을 적절한 상황에서 입고 행동하고, 현악사중주의 연주가 감동적으로 표현되는 과정 또한 칼론이다. 안티고네는 오빠를 매장하는 행위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에 죽음도 두렵지 않다. 그런 자신의 행위는 ‘거룩한 범행’으로 세상의 어떤 권력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불복종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849년 '정부에 대한 저항 (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이란 에세이를 썼다. 소로는 이 에세이 내용을 1866년에 강연한 후 제목을 ‘시민 불복종’으로 수정했다. 이 글은 미국 정부와 정책, 특히 당시 미국의 행태인 노예제와 멕시코 침략전쟁을 다뤘다. 그는 정부가 대중으로부터 권력을 보장받는다고 주장한다. 대중이 가장 합법적이고 정당한 해법을 제시해서가 아니라 가장 강력한 힘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소로는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개인의 권리를 ‘불복종’이라는 주제를 통해 주장했다. 기원전 5세기 안티고네는 인간 누구에게나 부여된 ‘양심’을 불복종의 원칙으로 제시했다. 이스메네는 자신이 여자로서 ‘도시’의 뜻을 거역할 힘이 없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반면 안티고네는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아무리 괴로운 일을 당하더라도 비열하게 죽고 싶지는 않아.” (96~97행)
■기억해주세요
역사는 명료한 정신과 그 정신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의지를 실현하려는 용감한 개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전진한다. 자주적이며 독립적이고 특정 이념에 편향되지 않은 공평한 인간이 선진적인 문명과 문화의 기둥이다. 만일 한 사회가 그런 개인들을 찾을 수 없다면 그 사회는 머지않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력을 잃고 소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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