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운명의 꼭두각시인가 아니면 개척자인가…"그리스 비극 작품은 '운명'의 근원을 추적하죠"
귀스타브 모로(1826~1898)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1864, 유화, 206.4㎝×104.8㎝).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인간은 운명의 꼭두각시인가? 아니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자인가. 인간에게 운명이 있다면 그 운명은 신, 자연, 혹은 공동체와 같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알게 모르게 만든 습관인가. 기원전 6세기 소아시아에서 활동한 철학자 헤라클리토스는 “습관은 인간에게 운명이다”는 말을 남겼다. 모든 것을 환경 탓하는 인간에게 자신의 몸에 알게 모르게 쌓인 습관이 운명을 결정한다. 생각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며, 행동의 반복이 나의 환경이며, 환경이 굳어지면 운명이 되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오이디푸스 왕》은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운명’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추적하는 작품이다. 소포클레스의《오이디푸스 왕》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를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지난 2500년 동안 관객과 독자의 눈과 귀, 그리고 상상력을 확장시켜 왔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이 비극 작품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인간의 보편적인 성향을 발견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육체적이며 심리적인 성장의 주춧돌은 아버지를 제거하고 어머니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한다.
19세기 유럽인들은 산업혁명을 통해 물질의 풍요를 얻은 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정신적인 틀인 인간 심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소포클레스 비극 공연들이 1880~1890년대 파리와 빈에서 대성공을 거둔 이유다. 프로이트는 이 공연을 인상 깊게 감상한 한 관객이었다. 그는 1899년 출간한《꿈의 해석》에서 오이디푸스의 비극적인 행위는 모든 인간의 마음속 깊이 내재된 인간 욕망의 발현이라고 주장했다. 이 욕망은 무의식 속에 잠재된 죄책감의 원인이다. 프로이트는 이 욕망을 인간이 유인원에서 진화할 때부터 수백만 년 동안 유전적으로 전달된 인간의 특질로 봤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왕’ 공연과 자신의 어린 시절을 면밀하게 상기해 분석했다. 그는 이런 감정은 시대를 초월해 보편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명명한다. 인간의 본성은 백지 상태에서 스스로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이미 조작돼 있다는 그의 주장은 파격적이었다. 프로이트는 찰스 다윈을 통해 ‘진화’라는 개념을 배웠고 카를 마르크스를 통해 인간을 거대한 집단을 구성하는 한 매개체로 봤다.
프로이트 vs 성 어거스틴
프로이트의 주장은 성 어거스틴의 원죄 해석과 일치한다. 어거스틴은 로마가 몰락한 이유를 보편적인 인간의 심성에서 찾았다. 그는 로마 몰락의 원인을 군사력이나 경제력과 같은 외적인 환경에서 찾을 수 없었다. ‘객관적인 기준’에서 평가하면 로마제국은 북쪽에서 몰려오는 고트족이나 떠돌이 집시들보다 월등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플라톤철학과 당시 로마군대에 유행하고 있던 마니교 교리를 원용했지만 로마 멸망의 원인을 찾는 데 실패했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욕망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그는 어릴 적 친구들과 과수원을 지나가다 주인 몰래 과일을 서리한 자신을 뚜렷이 기억했다. 어거스틴은 그런 욕망을 창세기에 등장한 소위 ‘선악과’에서 찾았다. 모든 인간은 유전적으로 이런 욕망을 부모의 성교를 통해 전달받았다. 그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근간인 ‘원죄’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어거스틴의 《고백론》은 《꿈의 해석》의 얼개와 내용을 제공했다. 인간은 자신이 원인을 제공하지 않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인간에게 ‘운명’이란 무엇인가.
운명
오이디푸스가 태어나기 전에 그의 아버지 라이오스는 신탁을 받는다. 신탁의 내용은 이렇다. 그는 아들을 하나 얻을 것이고 그 아들 손에 자신이 죽을 것이다. 라이오스와 그의 아내 이오카스테는 그들 사이에서 갓 태어난 아이를 볼 때 이 신탁을 떠올렸다. 아이가 태어난 지 3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하인을 시켜 험한 산에 내다 버렸다.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는 아이가 혹시나 생존할까 봐 두 발을 끈으로 묶었다. 길을 가던 양치기가 우연히 두 발이 묶인 채 울고 있는 아이를 불쌍히 여겨 데려가 키웠고, 마침 자식이 없었던 코린토스의 왕 폴뤼부스와 왕비 메로페에게 그 아이를 선사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모른 채 코린토스에서 유복하게 자라났다.
오이디푸스는 어릴 때 델피에서 ‘그를 낳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자신의 어머니 침대를 더럽힐’ 운명을 타고났다는 신탁을 받는다. 그는 양부모가 자신의 생부모인 줄 알고 코린토스를 떠난다. 신탁이 내린 가혹한 운명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그가 무심코 길을 가다 자신의 길을 막는 무례한 마차 일행과 삼거리에서 만난다. 오이디푸스는 마부와 그 마차의 주인을 살해한다. 오이디푸스는 그 주인이 생부 라이오스라는 사실을 알 리 없었다. 그가 진입하려는 도시 테베엔 전염병이 돌고 있었다. 역병은 도시의 성문을 지키고 다른 도시와 자유로운 소통을 가로막는 스핑크스 때문이었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베의 역병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테베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해 테베의 왕이 됐다. 그는 이오카스테가 자신의 생모인지 몰랐다. 하지만 결국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 아내가 어머니란 사실을 알게 된다.
■기억해주세요
모든 것을 환경 탓하는 인간에게 자신의 몸에 알게 모르게 쌓인 습관이 운명을 결정한다. 생각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며, 행동의 반복이 나의 환경이며, 환경이 굳어지면 운명이 되기 때문이다.《오이디푸스 왕》은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운명’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추적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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